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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Jan 17. 2024

생각이 복잡하다.

하늘 정원

 "문화센터라고?"

  권새록 팀장의 첫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성원은 정상무로부터 받은 미션과 김 부장의 코멘트를 설명했지만 권팀장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항상 부러운 태도였다. 한 단계 앞서가는 빠른 전환, 적절한 대안 제시. 거칠 것 없는 생각의 확장뒤에 어떤 배경이 있는지 궁금했다.

  "일단 회원수에 목표를 둔다면 강의를 쪼개요"

  "그게 무슨 말인지. 저는 문화센터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냥 시간 많은 여사님들 모여서 노래 부르고,

   어린아이들 데리고 다니면서 엄마들끼리 떠드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문화센터 안 다녀봤죠?'

  "예"

  "가서 기타라도 배워봐요. 생각이 달라질 걸요"

  "웬 기타. 제가 악기라면 담을 쌓고 사는데. 어릴 때 피아노도 배우다 말고."

  "피아노 어디까지 해 봤는데요. 민대리 목소리 들으면 노래도 잘할 것 같은데. 다 같이 노래방 한번 갈까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권팀장의 눈동자는 문화센터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질문에 답하면서도 성원은 그녀의 솔루션을 고대했다. 내일 이침까지 무엇이라도 보고해야 한다는 압박이 스스로의 생각을 멈추게 했다.

  

"일단 강좌와 회원 현황 자료는 문화센터에 부탁했는데 정리할 직원이 없다고해서 시스템 접속 방법을 배워서

 데이터를 직접 뽑아야 합니다. 정말 시간이 없어요. 팀장님의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성원의 절박함에 비해 권팀장은 평온했다. 항상 있는 일이라는 듯 팔짱을 끼고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너무 많이 알면 머리만 복잡하고 피곤하니까. 그냥 회원 현황은 알아서 하라 그러구 자기 미션만 생각해요.

  혹시 발레나 댄스는 안 해봤어요?"

 "아주 어릴 때, 엄마 등쌀에 발레 잠깐. 하는 둥 마는 둥."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거 해서, 민대리의 훌륭한 몸매가 만들어졌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아주 어릴 때라 기억은 안 나지만, 바른 자세로 서는 것 정도는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엄마는 이것저것 많이 시켰다. 피아노, 미술, 발레, 태권도, 거기에 바둑 교실까지. 하지만 어떤 것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강습을 받는 것보다는 들로 쏘다니고 아빠의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이 더 좋았다.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 바쁜 어린이였다. 무엇이든 처음에는 열심히 했다. 선생님의 칭찬이 즐거웠다. 초급 단계가 지나면 시들해졌다. 머리로 이해하는 단계를 지나 연습과 노력 시간이 필요한 단계가 되면 싫증 났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하나도 잘한다 말할 수 없었다.


 "요가나 필라테스는?. 그건 우리 모두 다 하는 거니까. 당연히 해봤겠죠." 

 "아니요. 일하기 바빠서 시간도 없고. 퇴근하면 잠자기도 부족한데."

 "우리 민대리님. 문화센터 대책 세우기보단 자기 생활의 대책이 필요하겠네요.  혹시 재테크에 열심인가.

  모.. 코인이나 부동산 그런 거 투자합니까. 그렇다고 연애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무슨 돈이 있다고 투자를 해요. 물론 경기 흐름이나 경제 전망 같은 기사 정도는 봅니다. 백화점 실적과

  연관이 크니까요. 제 사주에 돈이 없데요. 그래서 재테크 포기. 남자가 없어서 연애도 포기"

  "하하. 오로지 일만 생각하는 민대리님. 그래도 사주나 MBTI 그런 것은 관심 있나 봐요. 혹시 MBTI가?"

  "저 몰라요. 해본 적 없어요." 

   권팀장도 약간 지쳤다. 우리나라 30대 여성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니. 영업과 관련된 정보를 모으고 트렌드에도 민감해 보이는 민성원 대리를 헌 꺼풀 벗기니 개인 생활은 아무것도 없었다. 취미도 즐거움도 없는 생활이 답답하면서도 측은한 마음이었다. 엄마 말 잘 듣는 모범생으로 살아 온 아이.


   "그럼 쉬는 날은 모해요. 아 참. 어제 쉬었다면서 모 했어요?"

  문화센터 회원수를 늘리기 위한 질문이 여기까지 흘러오자 성원은 어리둥절했다.회사 생활이라는 것을 하는 동안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회사에서 일로 만난 사람과 사적인 이야기를 하다니. 상사의 질문이니 대답을 해야 하나. 평소 같으면 대충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겠지만 웬지 권팀장의 질문은 제대로 대답해야할 것 같았고 다행히 어제는 한일이 있었다.


"스카이 다이빙 했습니다. 송안 호수 주변에서"

"와우! 민대리가 그런 취미가 있었어요. 그렇게 액티비티를 즐기니까 요가 같은 것은 양에 안 차지."

"취미는 아니고 그냥 한 번 해 볼 기회가  생겨서 어제 처음 했습니다."

"그래도 표정을 보니 싫진 않았던 것 같은데 좀 자세히 말해줘요. 낙하산 무겁지 않아요. 뛰어내릴 때 무슨 느낌이어요. 진짜 못 띈다고 비행기 문짝잡고 버티는 사람 있나요. 나도 해보고 싶은데 다음엔 같이 가요. 정말 집들이 성냥갑만하게 보이나요"

 권팀장의 질문은 어제의 아찔한 순간을 떠오르게 했다. 비행기에서 나올 때의 상쾌한 기분과 발 밑으로 펼쳐졌던 풍경, 그리고 성원을 버티던 그의 단단한 팔뚝까지.


"예. 다시 가게 된다면 같이 가시죠."

 자신 없게 대답했다. 세안과 다음 약속을 하지 않았기에 다시 할 수 있을지 몰랐다. 권팀장과 같이한다면 세안을 어떻게 소개할지도 미리 걱정했다. 권팀장은 대화를 할 때마다 마음을 가져가는 사람이었다. 함께 스카이다이빙을 하는것도 좋겠지만 문화센터에 대한 대답은 언제 들을 수 있을까. 권팀장 뒷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며 초조했다. 대화를 원위치로 돌리기 위해 자세를 살짝 고쳐 잡았다.


"팀장님. 혹시 바쁘신데 제가 불쑥 찾아와서 시간 뺏은 게 아닌지"

"아니어요. 파티 준비도 거의 마무리했고 본사 업무 월마감과 정산도 끝나고 쉬고 있었어요. 문화센터 생각

 해보기 좋은 타이밍이었어요."

"그럼 다행이고요. 혹시 문화센터 지원받으려면 본사에 누구랑 얘기하는 게 좋을까요?"

" 아. 김 부장님이 전화하셔서 문화센터 운영팀 박팀장님이 내일 오기로 했어요.미팅 때 나도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박팀장이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준비 하자고요."

"그게 몬데요."

"여태까지 얘기했잖아요. 음악, 발레, 요가 필라테스,재테크 인기 강사를 무조건 데려 온다. 기존 강좌들 강의를 쪼갠다. 예를 들면 노래교실을 3개월에 7만원 받던 것을 1개월에 2만원하는 거예요. 그러면 가만있어도 연회원은 3배 느는 것이고 실제로 수강료 내려가니까 수강생은 늘어서 선생님도 손해는 없죠. 그렇게 진입장벽을 낮추면서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은 시간을 만들어준다. 다음에 다시 오고 싶게 한다. 그런 이야기들"

 

  성원은 흠칫했다. 지금까지의 대화를 정리하면 그렇게 된다고. 아닌것 같은데 답은 나온것도 같고권팀장이 우기고 있다. 대화하는 내내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해 낸 것이면서 덜렁 갖다 붙이는 것일 뿐. 배우고 싶은 능력이다. 눈을 크게 뜨고 이해의 눈빛을 발사했다. 잠시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권팀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점심이나 먹으러 가죠. 라면집 좋은데 있다면서요."

"도대체 그 라면집 소문은 어던 경로로 퍼지는지 궁굼하네요. 점심은 황인아와 먹기로 했습니다."

"그럼 불러서 같이 가죠 뭐. 황주임도 그 라면집 좋아하더구먼요."


  이번엔 약간 두려웠다. 라면집까지. 드림백화점 사람들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걸까. 처음 깁부장과 우연히 들른 라면집 정보가 권차장을 거쳐 여기까지 퍼지다니.거기다 황인아가 넘긴 정보의 끝은 어디인지.  김 부장에게 잠깐 보고하고 바로 권팀장을 찾아왔는데 이미 본사 문화센터 운영팀과 미팅까지 잡아 놓다니. 어쩜 정사무에게 문화센터를 성원에게 맡기라고 한 사람이 김 부장이 아닐까. 그래서 정상무가 성원에게 문화센터를 떠밀었다. 의심이 뭉게구름처럼 피어났다. 본사로 돌아간 권차장까지 포함하여 네 사람이 만든 그물에 걸린

느낌이었다. 그렇지 각각은 허술해 보이는 사람들이 서로 짜고 성원을 부려먹고 있다. 두렵지만 재미있고 유쾌한 상상이었다. 그들의 조직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내 능력을 인정하니까 되는 일 아니겠어.


   복도에서 인아를 만난 성원은 앞장서서 라면집 '리플리'로 향했다. 물색없는 인아는 참지 못하고 김세안과의 스카이 데이트는 즐거웠냐는 질문을 던지며 성원에게 들러붙었다. 한 걸음뒤에 권새록 팀장이 처음 보는 시장 골목을 두리번거리며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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