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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Mar 21. 2023

농부, 아티스트, 시민들이 국립극장에 모인 이유

'아트 인 마르쉐'에 다녀왔습니다.

학창 시절은 산촌 무주에서 보냈고 성인이 되어서는 대전과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생활했다. 산촌과 도시의 삶은 여러 차이가 있는데 특히 채소나 과일을 구매할 때 체감한다. 가을이 되면 마트에 붉은 사과가 놓인다. 사과를 구매할 때마다 돈을 지불하면서 도시민이 되었다는 기분을 다시금 확인한다. 무주에 살 때만 하더라도 장을 보지 않더라도 집에는 사과가 넘쳤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이발소 앞에 선 트럭 과일장수에게 사 온 사과나 농부 친구에게 거저 받은 사과가 넘쳤기 때문이다.


사과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과일만큼은 풍족하게 즐겼다. 그래서였을까. 사과가 어떻게 재배되는지, 얼마인지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 내 손과 입까지 다다르는지 호기심도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도시로 온 이후 돈을 지불하고 사 먹는 채소와 과일 값이 왜 이리 비싼지 궁금했다. 포장값 때문일까. 시골에서 서울까지 유통하기 위한 유류비 때문일까. 아니면 해외에서 물 건너오기 때문일까. 그렇지도 않다면 중간에 유통하고 판매하는 기업이 폭리를 취하기 때문일까. 땀 흘려 노동하여 먹거리를 생산한 농부들의 손에는 얼마나 쥐어질까. 사과 하나를 판매하면 한 조각만큼이라도 가져가는 걸까.


채소와 과일을 생산하는 농부들이 판매가의 극히 일부만을 소득으로 가져간다는 기사들을 접한 적도 있다. 매일 부지런하게 도시민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부의 노동에 제값을 쳐주지 않는 이 구조가 불평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대안은 없었다. 그나마 도시에서 찾은 대안은 중고등학교 동창이 운영하는 복숭아 농장에서 구매하고 그 외 먹거리는 되도록이면 생협에서 구매하는 것이다. 


국립극장에서 열린 '아트 인 마르쉐'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3월 18일(토) 국립극장에서 마르쉐 채소시장이 열렸다.

지난 3월 18일(토) 서울시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농부시장 '마르쉐'에 다녀왔다. 우리 부부는 종종 마르쉐에 간다. 물론 장 보러 간다는 마음으로 마르쉐에 가기도 하지만 문화생활하듯 나들이 가는 마음으로 찾았다. 


버스에서 내려 국립극장 언덕을 올라갔다. 완연한 봄을 연주하는 듯한 산뜻한 음악 소리가 들린다. 국립극장 입구에 들어서자 공공공간에 둥그렇게 장터가 조성되었다. 하얀색과 노란색의 파라솔 아래에서 생산자들이 농산물과 상품을 진열되어 판매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구매할 식재료와 각종 가공품을 둘러보면서 생산자이자 판매자인 농부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채소와 과일, 그리고 가공품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상세히 들을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식도 가능하고 상추를 사면 제철 나물을 덤으로 주기도 한다. 


포스터로 직접 채소봉투를 만들었다


우리 부부도 송화버섯, 당근김치, 사과주스를 구매하고 재활용 종이를 활용해 채소 봉투를 만들기도 했다. 송화버섯을 구매하며 생산자와 대화도 나누었다. 송화버섯은 10도 정도 환경에서 재배된다. 식감은 단단하고 쫄깃하다. 부드러운 표고버섯과는 식감에서 차이가 있고 소나무가 있어야만 자랄 수 있는 송이버섯과는 재배방법에서 차이가 있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후추를 판매하는 매대. 후추를 구매하진 않았지만 정말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후추하면 생각날 것 같은 경험을 안고 돌아왔다
울퉁불퉁. 농산물로 다양한 식료품을 만든다. 당근김치, 마멀레이드, 치트니, 마요 등이 있다. 모두 비건이다.

대화하는 시장 마르쉐


서울 도심지 한복판에 장터를 연 이들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은가. 마르쉐는 장터, 시장이라는 뜻의 프랑스어(marché)에서 차용한 단어다. 생산자와 대면할 수 있는 도심 속 시장이다. 


2012년 10월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처음 열렸다. 돈과 물건의 교환만 이루어지는 시장이 아닌 사람, 관계, 대화가 있는 시장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실 전통시장에 가더라도 우리는 상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요즘 왜 바나나가 비싼지, 애호박은 통 보이지 않는지 상인들에게 전해 들을 수 있다. 보통 상인들은 생산자가 아닌 유통을 하는 이들이다. 


반면 마르쉐에 농산물을 판매하는 이들은 전부 생산자이자 판매자다. 누구보다 농산물에 관해 잘 아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종종 방문하다 보니 마르쉐만의 분위기와 가치를 체감한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눈과 귀 그리고 손과 발로 느껴진다. 신조어로 표현하자면 '마르쉐 바이브'가 느껴진달까. 


종이 봉투를 재활용하는 다시살림부스. 다시살림이라는 말이 뭔가 몽글몽글.


먼저 마르쉐는 불필요한 포장을 하지 않는다.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을 지양하고 종이 혹은 신문지를 재활용하여 포장을 최소화한다. 장바구니가 없는 방문객을 위해 수거해 둔 종이가방을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 마르쉐에 방문하는 이들도 이런 문화에 익숙한 듯 장바구니와 다회용기 그리고 텀블러를 가지고 다닌다. 


공연과 체험을 곁들인 문화장터 



둘째, 마르쉐는 장보기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팝업스토어나 축제 장소처럼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팝업 공간이기도 하다. 음악 공연과 체험 공간 그리고 워크숍 등이 열린다. 문화장터인 셈이다. 


특히 마르쉐 측은 올해 3~5월은 '아트 인 마르쉐' 봄 시즌을 기획했다. 국립극장에서 열린 문화시장이 아트 인 마르쉐의 첫 시작이다. 덕분에 채소와 음악을 통해 눈과 귀로 봄 내음을 만끽하고 올 수 있었다. 마르쉐 한가운데 임시 무대를 조성하여 연주자들이 세계의 낯선 악기들로 산뜻한 음악을 연주한다. 여행 온 기분마저 든다. 시민들은 돗자리와 우유팩 플라스틱으로 설치된 임시 의자에 앉아 공연을 즐기거나 편하게 휴식을 즐긴다.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먹는 이들도 있다. 


이번 마르쉐에서는 포스터와 신문지를 재활용하여 채소 봉투를 만드는 체험 공간도 있었다. 어린이들을 비롯한 성인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는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만들어진 종이봉투는 미처 다회용기를 가져오지 못한 소비자나 우연히 들른 방문객에게도 유용하다. 


포스터와 신문지를 재활용하여 채소 봉투 만드는 체험 공간이 있다.


잠자고 쉬는 공공공간의 적극적 활용


셋째, 도심 내 공공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도시계획과 도시설계의 최고 미덕은 밀도를 높여 공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대표 사례가 고층 건축물이다. 고층 건축물은 토지 면적 대비 사용 공간 면적이 증가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증가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빈 공간이 늘어난다면 반드시 효율성이 늘어난다고 볼 수도 없다.


프랑스 시스템 과학자 카를로스 모레노는 '15분 도시 개념'을 창안했다. 그는 도시에서 시간의 개념을 도시계획에 통합시킬 필요성을 주장했다. 필자가 이해한 바로는 지금까지는 도시는 3차원적으로 면적 대비 공간(부피)으로 효율을 계산했다면, 기존의 개념에 시간 개념을 더한 4차원적으로 도시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것이다.


우리가 도시를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도시의 형태는 달라질 수 있다. 기존의 기반설비를 최적화하려면 통상적으로 단일 용도의 건물에 여러 기능을 부여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다. 가령 학교를 방과 후엔 사회 활동이나 문화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는 식이다. 이럴 때를 우리는 ‘크로노피아(chronotopia)’로 말할 수 있다. 
- <도시에서 살 권리>, 133p


어쩌면 마르쉐가 서울 도심지에서 크로노피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주체가 아닐까? 마르쉐는 도심지 내에서 가로 공간과 공공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혜화 마로니에 공원, 문화비축기지, 성수 언더스탠드에비뉴, 성수낙낙, 중구 국립극장 등이 예다. 이외에도 카페와 같은 상업시설이나 명동성당과 같은 종교시설과도 연계하여 장터를 연다. 


시민들이 돗자리와 우유팩으로 만든 의자에 앉아 공연을 즐기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마르쉐 활동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가족 단위로 나와 나들이처럼 즐기는 이들도 있고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을 나온 이들도 있었다. 근처에 남산 산책로가 있기 때문인지 트레킹 차림새로 온 이들도 많았다.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행인이 만나 대화를 나눈다. 음악이 흐르고 왁자지껄 대화가 오간다. 여남노소뿐만 아니라 반려동물도 함께 만나는 만남의 장이 형성된다. 내게는 국립극장 앞에 펼쳐진 작은 도시 전시 같았다. 의도한 바인지 모르겠지만, 이를 기획한 마르쉐 친구들(마르쉐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이들)이 훌륭한 도시계획가 혹은 도시설계가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마르쉐 문화를 만들어가는 핵심 주체 '농부와 마르쉐 친구들'


마르쉐에서 장 본 송화버섯, 당근김치, 사과주스. 왼쪽 사진은 장 본 걸로 먹은 점심 밥상 사진


마르쉐 운영의 비결은 지속 가능기금과 마르쉐 친구들로 보인다. 마르쉐 친구들 김단비님은 지속가능기금을 "장터를 열기 위한 종잣돈"이라고 표현했다. 기금은 시설물 설치비, 전기료, 스탭 인건비 등 장터를 열기 위한 제반비용으로 사용한다. 그는 "장터에 참여하는 생산자이자 판매자인 농부가 지속가능기금을 지급"하며 월 회비처럼 납부하는 것이 아닌 "열리는 장터에 참여하는 농부들에 한해서만 기금을 내고 그 기금으로 운영"된다고 말했다.


국립극장 마르쉐에 참여한 혜미농원 김미선 공동대표는 "가치에 동의하는 이들이 마르쉐에 참여하고 기타 제반비용이 들기 때문에 지속가능기금을 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판매만 하는 온오프라인 마트와 같은 판매 플랫폼과는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김미선 대표는 마르쉐 장터에 나오는 목적을 "한 군데라도 나가서 피드백을 받고 싶다. 마르쉐에 나오는 목적은 상품을 홍보하고 소비자의 피드백을 직접적으로 받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하며 "직접 만나서 듣는 게 가장 정확하다. 우려했던 부분이나 우리 상품의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을 눈과 귀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다른 플랫폼에 비해 수수료가 저렴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마르쉐는 생산자이자 판매자인 농부, 그리고 매번 마르쉐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마르쉐 친구들이 만들어간다. 농부가 생산한 채소와 과일, 그리고 그 위에 마르쉐 친구들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덧입힌 덕분이다. 마르쉐의 활동은 차디찬 도시에 숨을 불어넣는 도시 예술 행위 같기도 하다. 이렇게 판매와 만남의 장이 열리면 도시민들이 찾아와 꽃을 피운다. 시민 참여가 화룡점정이 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멋진 공간이나 상품이 아닌 운영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우리 동네에 마르쉐 같은 장터가 열린다면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터가 열릴만한 공간이 없는지 둘러봤다. 차도에는 오가는 차량으로 가득했고 골목은 주차된 차량뿐이며 침묵 가운데 오가는 행인들뿐이었다. 우리 동네에도 마르쉐 같은 장터가 매주 열리면 어떨까? 잠자고 있는 주차된 자동차들을 전부 치워버리고 농부, 요리사, 수공예가들과 거니는 동네 주민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 


특히 자동차들에게 빼앗긴 도로가 장터로 변하는 상상을 하면 가슴이 뛴다.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서울시 강동구 상일동 어울마당에서 '재활용 프리마켓'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당시 차선 하나를 점용해서 사용했다. 현실적으로 차도를 점용하는 게 어렵다면 주말에 쉬는 주민센터나 구청 그리고 학교 잔디 운동장도 좋겠다. 공공공간을 비롯해 상업시설들이 이 참신하고 즐거운 장터를 도심 곳곳에서 열도록 공간을 내어주었으면 좋겠다.


농부시장 '마르쉐'가 봄을 알린다. 장바구니, 다회용기, 텀블러 들고서 나들이를 가보는 건 어떨까. 전국 각지 농부, 요리사, 수공예가 등 자연에서 나는 재료를 소재로 하는 예술가들을 만나고 대화할 기회를 놓치지 마시라. 


덧붙이는 글

오는 25일(토) 서울시 중구 을지트윈타워에서 마르쉐가 열린다. 이후 일정과 정보에 관해서는 마르쉐 홈페이지, 카카오톡 채널, 인스타그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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