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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Oct 22. 2023

전세사기 특별법, 피해자 두 번 죽이려 하나

[현장] 전세사기 피해자 집회에 다녀오며

지난 2022년 여름이었다. 집주인은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을 연장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전전긍긍하며 6개월 이전부터 천천히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창 매매가와 함께 전세가가 오른 시기여서 비슷한 규모와 구조 그리고 교통 인프라가 있는 전셋집을 구하기 어려웠다.


수많은 집을 둘러봤다. 한 번은 계약일이었는데, 다음 임차인을 구해야만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우리는 고민 끝에 계약하지 않았다. 이후로도 집을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퇴근 후와 주말마다 서울 곳곳을 누볐다.


또 한 번은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동네인 망원동의 신축 빌라를 계약하기로 했다. 가진 돈과 대출 금액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계약을 위해 부동산에 연락했지만, 공인중개사는 법인 명의의 현재 집을 매입할 임대인을 구해야 한다며 일주일을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때까지도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연락을 기다리던 중 낮이 아닌 저녁에 방문했다. 우리가 앞으로 살 집이니까. 그런데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빌라 내 한 세대로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불길한 기운을 직감했다. 이후로 공인중개사도 우리도 별다른 연락을 하지 않았다.


2022년 말 수많은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른바 전세사기 사건이다. 어쩌면 나도 전세사기의 피해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전세사기는 빌라라는 주택 유형에서 다수 벌어졌기 때문이다.


아무렴 피해자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을쏘냐. 그런데 남 일 같지 않았다. 투룸 빌라, 오피스텔, 아파트까지. 2018년 부부가 된 이후로 지금까지 전셋집을 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을 위해 모인 피해자 집회


14일(토) 전세사기 관련 집회에 다녀왔다. 이 날 집회는 세계 주거의 날(10월 첫째 주 월요일)과 빈곤 철폐의 날(10월 17일)을 맞이한 집회였다. 전세사기특별법을 바꾸기 위해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피해자들이 보신각터에 모였다. 비가 쏟아지는 날임에도 전국 각지에서 많은 국민들이 모였다.



실제 피해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한 피해자는 "특별법이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비 오는 날에 전국에서 많이들 모였을까요?"라며 억울함과 분노를 표했다. 언론으로 보도된 숫자로만 접했던 피해 인원이나 규모가 한 명 한 명의 얼굴로 다가왔다.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피해자들은 전세보증금을 되돌려 받지도 못하고 대출 금액마저 갚아야 한다. 애먼 피해자가 가해자의 빚마저 갚아야 하는 신세가 돼버린 마당이다. 대구에서 온 피해자는 내년에 결혼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집도, 돈도 없는 신세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미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전세사기로 인해 많은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집회에 참석한 피해자도 두 번의 자살 시도를 했다고 발언했다.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위로를 드리고자 발언을 하게 되었다며 집회 현장에 나올 수 조차 없는 피해자들을 걱정하며 격려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최지수 씨는 곧 빚을 갚기 위해 선박회사에 취업하여 1년 동안 원양어선을 탄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그는 그동안의 억울함과 분노를 글로 쏟아내어 삶을 간신히 버틸 수 있었고 이 글은 책 <전세지옥>으로 출간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전세사기가 벌어진 근본적인 이유


전세사기라는 끔찍한 사태, 도대체 왜 벌어졌을까.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근원은 전세 제도 때문이다. '희년함께(토지정의 시민단체)'에서 발행한 토지정의 리포트 '저층주거지 깡통전세 형성 요인과 대책'에서는 전세사기의 원인과 대책을 살펴볼 수 있다.


이 보고서에서 전세사기꾼들이 활개 칠 수 있었던 토양을 '깡통전세'로 지적한다. 깡통전세는 전세보증금이 매매가격과 비슷하거나 높다. 따라서 전세를 끼면 소액 혹은 비용 없이 집 한 채를 구매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매매가가 2억 원, 전세보증금이 1억 8천만 원인 집이 있다. 그러면 집을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은 전세 세입자를 구해서 1억 8천만 원을 마련하고 자기 돈 2천만 원만 들여서 집을 매수할 수 있게 된다. 때로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집을 매수할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갭투기'다.


깡통전세는 전세가율이 높은 아파트보다는 빌라라고 부르는 다세대주택이나 다가구주택에서 발생한다. 아파트 전세가율이 하락하는데도 다세대주택의 전세가율은 떨어지지 않았다. 부동산 시장이 활황기에 접어들어도 아파트는 매수 수요로 전환되지만, 다세대주택은 임차 수요로 여전히 머물기 때문이다.


 (출처: 희년함께 / 원자료: KB부동산)


현재 특별법은 실질적 도움 받기 어렵다


전세사기의 피해자들의 점유 형태는 전세, 주택 유형은 빌라라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소득이 높은 편은 아닐 테다. 집회 현장에서 발언한 이들 모두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피해자들은 사기꾼들이 벌인 사태로 인해 전세보증금으로 묶였던 돈도 돌려받지 못하고 대출이자도 갚아야 한다.


이차적인 피해도 있다. 전세로 살던 집은 집대로 피해를 보고, 새롭게 분양받은 집이 있다면 잔금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계약금을 반환하고 추가 금액도 내야 한다. 한 피해자가 이차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며 성토했다. 정부는 피해자들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을까?


2023년 6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시행되었다. 하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집회 참석 현장에서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는 "현재 특별법은 (피해자로) 인정받기도 어렵고, 인정받는다 해도 실질적 도움을 받기 어렵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실제로 특별법에 의해 6,063건이 피해자로 결정되었다. 이중 지원 건수는 경・공매 유예・정지 협조요청 709건, HUG 경・공매 서비스 신청 203건, 신용정보 등록유예 107건 등에 그친다. 지금의 특별법은 마치 전세 제도처럼 사각지대가 많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원 신청하는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셈인 것이다.


특별법 개정 시 선구제 후회수 구체적인 방안 마련해야


국토교통부는 전수조사조차 실시하지 않고 있다. 대책을 마련하려면 피해 규모와 원인을 파악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실태조사와 대책 방안 연구를 시민단체와 민간연구기관에서 먼저 시행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상황이다.


(사)한국도시연구소, 주거권네트워크에서 발간한 보고서에서는 '선구제 후회수' 방안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선구제 후회수는 정부가 먼저 피해자에게 보상하고 이후에 전세사기 주택을 경·공매하여 매입비용을 회수하는 것을 뜻한다.


해당 보고서 내 설문조사에서도 피해자 가구 1,550 가구 중 78.3%가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집회에서도 여러 피해자들의 입을 통해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특별법 개정 내용의 핵심이라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집회에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이 참여했다. 정치인도 참여했다. 더불어민주당 허종식 국회의원,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 기본소득당 오준호 공동대표, 녹색당 김혜미 부대표가 참석하여 발언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을 위로하면서 반드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몰라서 혹은 실수해서 당했을까, 정부의 책임은 없는가


'전세사기, 그거 잘 알아보지 않아서 사기당한 거 아냐?'라는 의문을 갖는 이들도 있을 테다. 나 또한 그 자리에 참석하기 전에는 그런 의문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한 피해자는 "저희도 제도권 안에서 정당한 계약을 한 것뿐입니다"라며 "지금의 전세 사기는 국가의 관리 부실로 생긴 재난입니다. 개인 간의 거래로 생긴 사기가 아니라고요"라고 외쳤다.


반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 아니며 모든 사기피해는 평등하다"라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정말 정부는 책임이 없을까?


전세사기는 개인 간 사기가 아닌 '사회적 재난'이다. 명백히 정부에 책임이 있다. 먼저 갭투기를 마음껏 하도록 만든 제도적 토대를 만든 정부에 어찌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심지어 부동산 계약에는 '공인'중개사가 관여한다. 국가 공인 자격증을 소지한 자가 관여하는 계약에 한두 건이 아닌 사기가 벌어졌다. 대출은 어떠한가. 행정부처가 은행과 연계한 대출제도를 이용한다. 임차인을 심사하기도 하지만, 집도 심사한다. 어찌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책임이 없다고 말하며 발 뺄 생각만 하고 있는가.


희년함께 리포트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에 전세가격지수가 정점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2년 계약이 만료되는 2024년 상반기 전후 시점에 극심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조심스럽게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전세사기 규모와 피해자 수 등에 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대책을 강구해야만 한다. 정부가 팔짱 끼고 바라볼 사태가 인다.


참고자료

- (사)한국도시연구소, 주거권네트워크, 2023년 10월,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 가구 실태조사 및 피해 회복 및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방안

- 희년함께, 2023-01호 토지정의 리포트, 저층주거지 깡통전세 형성 요인과 대책


(오마이뉴스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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