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無人)시대’다. 아무런 대화도, 표정도 없이 검지 손가락만으로 원하는 상품이나 식품을 주문하고 받을 수 있다. 무인카페, 무인슈퍼, 무인라면식당, 무인옷가게, 무인뻥튀기과자점까지. 일 년 뒤에는 어떤 무인매장이 눈앞에 나타날까. 기술 발달 속도가 놀라울 뿐이다.
기술이 발달하면 부작용이 발생하곤 한다. 우리는 무인시대에 두 가지 큰 문제를 당면하고 있다. 첫째, 디지털약자 문제다. 카페나 식당에 무인단말기(키오스크)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디지털약자 문제가 뉴스나 기사를 통해 대두된 바 있다.
무인단말기를 사용하기 어려운 이들
디지털약자는 디지털 기술이나 정보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계층을 뜻한다. 주로 고령층이나 장애인이 해당한다. 실제로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무인단말기 앞에서 서성이는 어르신을 자주 목격했고 몇 차례 이용에 도움을 드린 적도 있다.
최근에는 능숙하게 사용하는 어르신을 자주 보게 된다. 기술 발달 속도가 빠르지만 기술 발달에 적응한 어르신도 많아진 것이다. 2023년 서울시민디지털역량조사에 따르면 무인단말기 경험률이 지난 2021년에 비해 상승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65세~74세 연령대는 21.0%p 증가한 50.4%, 75세 이상 연령대는 5.3%p 증가한 19.1%를 기록했다.
노인복지관이나 사회복지관에서 어르신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무인단말기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롯데리아와 같은 대기업도 정부와 적극적으로 연계하여 ‘디지털 마실’과 같은 무인단말기 실전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디지털 약자 접근성은 개선될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전망해도 괜찮을까.
그럼에도 고령층의 59.6%, 장애인 중 60.9%는 불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주목할 건 불편 경험의 원인이다. 고령층의 경우 ‘뒷사람 눈치가 보여서’(53.6%)가 가장 높았고 장애인은 ‘사용 중 도움을 요청할 방법이 없어서’(63.6%)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는 단순히 교육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디지털약자가 불편을 겪을 상황을 예상하고 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매장 내 인력 배치도 필요하지만, 무인단말기를 함께 사용하는 동료 시민들의 기다림과 배려도 필요하다는 걸 뜻한다.
무인단말기의 물리적인 형태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일단 단말기 화면 높이가 눈에 띈다. 어린이, 휠체어 사용자가 사용할 수 없는 높이의 무인단말기가 꽤 보인다. 높이 조정이 가능하거나 어린이, 휠체어 이용자의 높이에 맞춘 무인단말기를 도입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서울 시청역에 설치된 스마트도서관의 무인단말기는 휠체어, 어린이 높이에 맞춘 사례다.
마지막으로 시각장애인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아직 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점자패드가 부착되거나 위치 조절이 되는 배리어프리 무인단말기도 개발되었다고 한다. 기술은 충분하지만 돈이 문제다. 기기값 때문인지 현장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로봇에게 빼앗기는 인간의 일자리
디지털 약자 문제도 개선되어야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땐 노동 대체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기계를 넘어 로봇이 등장하여 사람이 있던 자리를 차지한다. 집안일을 알아서 해주는 로봇청소기는 반갑지만 일자리를 빼앗는 로봇은 달갑지 않은 게 솔직한 감정이다. 이는 우리의 생계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시외버스터미널만 가도 매표직원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무인단말기가 매표 직원을 대신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5년 전 결혼기념일에 호텔에 다녀왔다. 체크인 후에 객실로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였다. 키는 초등학생 저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로봇이 내 옆에 섰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사람과 부딪히지 않고 탑승하는 것 아닌가. 객실에 도착하여 룸서비스를 신청하자 맥주와 과자를 실은 로봇이 도착했다. 아까 그 녀석이었다.
업체, 기기, 약정 기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계 두 대를 사용하는 비용이 한 사람의 인건비보다 저렴하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시간에 따라 임금 부담이 높아지는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보다 한없이 일하면서도 각종 수당, 세금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로봇을 사용하는 게 이익이다.
더욱 큰 문제는 로봇으로 대체된 실업자가 사회적 약자 계층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미국 사회에서는 농업 기술과 산업 기술의 발달 시기에 흑인 실업률이 높아졌다. 농업 기술 발달 시기에는 노예에서 갓 해방된 흑인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후 자동차, 제철, 고무, 화학, 포장육 산업에서 제한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지만 자동화가 제조업에 자리 잡으면서 흑인 실업률은 다시 상승했다.
국내 서비스업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높지 않다. 카페, 음식점, 마트, 편의점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 머무른다. 기술 발달은 미국에서 그랬듯 사회적 약자의 일자리를 빼앗고 삶을 흔들 것이다. 로봇뿐만이 아니라 인공지능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이미 ChatGPT와 같은 프로그램이 사무직을 위협하고 있다. 마치 과거에 CAD 프로그램과 회계 프로그램이 수많은 일자리를 대체한 것처럼 말이다.
AI, 로봇 산업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하여
늘어난 AI 산업과 로봇 산업 관련 일자리가 실업자를 대체할 수 있다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과연 그 수가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부문 산업의 일자리를 온전하게 대체할 수 있을까?
책 <노동의 종말>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연구하며 저술 활동을 펼치는 제러미 리프킨의 책이다. 저자는 기술 발전에 따라 생산량은 증가하지만 노동력은 줄어드는 현상을 여러 사례를 통해 귀납적으로 설명한다. 먼저 농업 사회에서 도구와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줄어들었지만 생산량은 증가했다. 다행히도 산업 부문에서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농업 인구가 산업 인구로 이전되었다.
이 흐름은 산업 부문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기계를 비롯한 생산기술의 발달로 생산량이 증가하지만, 제조업에 종사하는 블루칼라는 감소한다. 대신 서비스업 부문이 일자리를 잃은 블루칼라를 흡수했다.
과거에는 신기술이 특정 부문의 노동자들을 대체하면, 대체된 노동력을 흡수하는 새로운 부문이 항상 출현해 왔다. 오늘날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이라는 경제의 전 부문이 기술 대체를 경험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을 실업자의 대열로 몰아내고 있다.
<노동의 종말>, 49p
그런데 이제 서비스업 부문에서도 생산성 향상과 노무비 절감을 위해 기계가 도입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무인기계와 서빙로봇 등이 우리 현실에 등장한 것이다. 기계의 시대를 넘어 로봇의 시대를 살고 있다. 소매점과 호텔과 같은 서비스업 현장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는 어디로 가야 할까?
제러미 리프킨은 '제3부문(국내에서는 제3섹터로 알려져 있다) 활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국가도 시장도 아닌 경제 영역을 뜻한다. 책 <노동의 종말>에서 제3부문은 사회적, 문화적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활동을 포함한다. 사회 서비스에서부터 건강, 교육, 연구, 예술, 스포츠, 여가 활동, 종교, 사회 참여 활동에 이르는 영역이 포함된다. 공공과 민간 중간에 위치한 공기업이나 사회적 기업 등의 사업 영역이 대표적으로 해당한다.
제3부문을 활성화하면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제3부문은 화폐를 통해 교환이 이뤄지는 상업 중심 사회에서 약해진 사회적 자본을 창출한다. 사회적 자본은 쉽게 말해 사람들 사이의 관계나 네트워크를 뜻한다. 결과적으로 제3부문은 서로 돕고 친밀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로봇세 도입
제3부문 활성화의 문제는 돈이다. 서비스 수수료에서 수익이 창출되기도 하지만 제3부문 재원의 대부분은 정부의 예산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프킨은 '세금 전가(tax shift)' 정책을 주장한다. 예를 들면 환경 관련 세금이 세금 전가의 대표적인 예다. 기업은 세금을 줄이고 핵심 자원을 보존하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경쟁력 있는 생산 체계를 조성한다.
여기저기서 이미 인간의 일자리는 로봇에게 빼앗기고 있다. 바로 지금이 로봇세(robot tax) 논의를 진지하고 활발하게 진행해야 할 시기 아닐까. 로봇세는 로봇을 사용해 이익을 얻는 기업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사실 무한 동력 로봇의 수익은 로봇이 가져가는 게 아니다. 로봇 개발업체나 투자자들이 가져간다. 전문가들은 로봇을 소유한 자(자본가)와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자(노동자) 간 소득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에 대체적으로 합의한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로봇 개발은 모든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불평등을 완화하고 대다수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3부문 활성화가 필요하다. 이 재원은 로봇세를 통해 확보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제3부문 활성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세금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AI와 로봇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위해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다가오는 로봇과 AI 자본가 시대의 위협과 극심한 불평등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 마련도 필요하다.
경제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소비량과 소비 속도가 생산량과 생산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해 왔다. 인간의 노동력이 로봇으로 대체된다면, 소비 인구는 자연스레 줄어들지 않을까. 소비 인구가 없는 시대에 로봇의 무한 동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참고문헌
- 홍범교, 2018, 로봇세: 현재, 미래 그리고 그 이후
- 제러미 리프킨, 2005, 노동의 종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