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영화를 보러 갔다. 건너편에서 백 명이 훌쩍 넘는 외국인들이 하나의 목적지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들어가는 건물로 함께 들어가는 것 아닌가.
엘레베이터의 층별 안내판을 보고 알았다. 지하3층에 찜질방이 있었다. 알고 보니 내부가 한옥 스타일이어서 외국인이 많이 찾는 찜질방이었던 것이다. 인터넷으로 내부 사진을 보니 마치 그야말로 찜질방의 '한옥화'였다. 한옥의 내부 모습을 재현했다. 낮엔 궁의 정취를 느끼고 저녁에는 경복궁에 들어온 것만 같은 공간에서 피로를 푼다? 이만원이 안되는 가격에 이만한 관광이 어딨겠는가. 다시금 K-문화의 힘을 느꼈다.
외국인뿐만이 아니다. 국내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사우나, 온천 문화가 유행이라고 한다. '젊은 세대'이라는 단어에서 이미 유추했을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어느덧 아저씨 대열에 합류한 삼십 대 중후반이다. 이 글에서 필자 나이를 기준으로 젊은 세대는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를 뜻한다.
SNS에 찜질방이라는 단어로 검색해 보니 정말 많은 게시물이 보인다. 이색 찜질방 모음이라는 게시물도 많다. 한옥 스타일의 찜질방뿐만 아니라 동남아풍 인테리어로 꾸민 찜질방, 캡슐 수면룸이 있는 찜질방까지. 찜질방은 외형적으로만 진화한 게 아니다. 안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달라졌다. 바비큐도 가능하고 치킨, 맥주도 즐길 수 있는 찜질방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문 닫은 찜질방이 많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왜 다시 사우나, 온천 문화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가 된 걸까? 젊은 세대가 온천과 사우나를 새로운 체험 콘텐츠로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찜질방이라는 한 공간에서 먹고, 마시고, 쉬고, 즐기는 것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기 때문이다. 가성비가 좋다는 해석도 있다.
목욕탕과 찜질방은 익숙한 공간이다. 요즘 찜질방의 풍경이 진화한 건 사실이지만,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기능한 건 10~20년 전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삼십 대 후반이 어려서부터 경험한 목욕탕과 찜질방 이야기 한번 들어보겠는가?
아버지와 함께 가던 목욕탕에 친구들과 가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부터였을 것이다. 일요일이면 아빠는 나와 남동생을 데리고 동네 목욕탕에 데리고 갔다. 이 때는 청결을 위해 목욕탕에 갔다.
지금은 때를 미는 게 오히려 피부에 좋지 않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청결을 위해 때를 반드시 밀어야 한다는 게 진리였다. 나와 내 동생은 아버지에게 등을 맡겼고 나는 아빠의 등을 맡았다. 때가 많이 나오기라도 하면 갖은 비유를 들어서 엄마에게 서로를 일러바치기도 했다.
목욕이 다 끝나면 항상 토마토주스나 초코 음료 제키를 사 먹었다. 필자가 목욕탕을 특별히 좋아했던 건 아니다. 아이들이라면 흔히 할만한 탕 안에서의 물놀이조차도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빠를 잘 따라다녔던 데에는 목욕 이후에 마시던 음료수가 한몫하지 않았을까? 그 맛은 그냥 슈퍼에서 마시는 음료수랑은 차원이 다른 맛이었으니까.
중학생 때부터였나. 목욕탕 멤버가 달라졌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 일요일에 교회의 모든 공식 일정을 마치면 축구나 농구를 하는 게 루틴이었다. 운동을 마친 후에는 가끔 목욕탕으로 향했다.
그러다 보면 이른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목욕탕은 목욕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여느 중고등학생, 대학생이 그렇듯 가벼운 농담과 실없는 웃음이 연장되는 공간이었다.
게다가 목욕탕이라는 공간은 친하지 않고서는 가기 어려운 공간이기도 하다. 비밀 이야기를 나누면 친한 친구가 되는 것처럼, 서로 알몸을 보여주며 목욕하면 자연스레 친밀도가 올라간다.
우리들의 '아지트'가 된 찜질방
찜질방은 목욕탕과는 다른 공간이었다. 1년에 한두 번 정도였는데 형, 친구, 동생들이 모여 찜질방에 갔다. 우리의 찜질방 문화에서는 하루 자고 오는 게 핵심이었다. 당시 특별한 파티 문화와도 같다. 찜질방에서 먹을 수 있는 구운 계란과 식혜는 그야말로 성인들의 술과 안주와 같은 것이다.
부모님의 허락만 받으면 집 밖에서도 당당히 잘 수 있는 날이었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워 잠자는 시간을 미뤘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친구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평소 하지 못했던 깊은 이야기가 오간다. 비밀 이야기도 오간다. 찜질은 거들뿐, 우리에겐 대화를 나눌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도 여전히 가끔 목욕탕과 사우나에 찾곤 한다. 운동을 마치고 몸이 유난히 뻐근하거나 근육 뭉침이 있는 경우에 찾는다. 온찜질은 뭉친 근육을 이완시키는 데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찜질하는 도중 쉴 때는 찜질방 내에 있는 만화책을 보거나 가져온 책을 읽으며 쉰다. 이때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식혜나 미숫가루다. 흠뻑 땀을 흘린 후에 마셨기 때문일까. 아직까지 찜질방에서는 식혜나 미숫가루 맛은 실패 사례가 없다.
가끔 친한 친구와 등산 후에는 찜질방이나 목욕탕을 가기도 한다. 뭔가 고된 운동 후에는 온탕이나 사우나에서 몸을 지져야 '다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냥 씻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나이가 된 것일까? 지지는 것이 좋아지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라는데 진정 아재의 길로 들어선 걸까?
편안한 놀이공간으로서 찜질방을 찾는 이들
요즘 유행하는 온천/사우나 문화는 내가 경험한 목욕탕이나 찜질방 문화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내부 환경이 바뀌었을뿐더러 온천과 찜질방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이 더욱 다채로워진 것은 사실이니까.
저마다 찜질방을 가는 이유도 다를 것이다. 술 마시는 모임보다는 건강하게 땀을 빼고 이야기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다. '갓생'을 살기 위해 부지런하게 살면서 자기관리하는 것이 트렌드이기도 하니까. 다만 친구와 함께 와서 우리처럼 비밀 이야기를 하다가 새벽에 잠들기라도 하면 낭패가 될 수 있다.
지금 젊은 세대와 10~20년 전 우리 또래 찜질방 문화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혼자 오지 않는 것이다. 동네 찜질방에 갈 때도 젊은 세대 무리를 만나곤 한다. 여전히 젊은 세대가 찜질방과 온천을 새로운 '놀이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과거나 지금이나 젊은 세대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찜질방은 먹거리, 마실거리, 경험거리가 가득하다. 가성비도 좋다.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눕고 싶을 땐 누워서 자도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찜질방만큼 타인과 함께 있으면서도 몸과 마음이 느슨해지고 편안해지는 공간이 또 있을까. 게다가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필자도 조만간 아내와 한옥 스타일 찜질방이나 가서 몸이나 지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