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이 김영하 작가의『여행의 이유』를 읽고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의미의 ‘여행’은 그렇다. 넉넉한 돈을 가지고 혼자, 또는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멀리 떠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오는 것, 그게 내가 여태껏 정의해온 ‘여행’이다.
어렸을 적 자주 갔던 가족여행은 ‘행복한 시간’은 아니었다. 주말마다 가족들과 함께 밖을 나가면 서로 싸우다 오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출근도장 찍듯이 꼬박 꼬박 여행을 갔다. 그때 나는 부모님이 여행을 정말 좋아해서 계속 가는 걸로 생각했지만, 아마 맞벌이 때문에 어렸을 적 나와 동생과의 함께하는 시간이 적었던 게 마음에 걸리셨던 것 같다.
가족여행 이외에도 여행 경험은 전무하다. 나 혼자 여행을 가기에는 외로울 것 같아 가보지 못했고, 친구들과 함께 가자니 넉넉한 돈이 없었다. 이 생각이 계속되자 여행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행위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여행을 갈 시간과 비용으로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그대로 나는 성장하고 대학을 다니다 군대에 입대할 시간이 다가왔다. 입대 전 여행보다는 작품을 하나 만들어 미련 없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사치가 되었다. 내게 남은 시간을 의미있게 쓰는 방법은 밤새도록 카페 구석에 앉아 작품을 마무리하는 일 뿐이었다.
입대를 했다.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채로. 미련 없이 가기 위해 만들었던 작품은 오히려 나를 미련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었다. 결국 신병위로휴가를 나왔을 때도 쉬지 않고 작업만 계속했다. 그러나 여전히 의미있는 진전이 나오질 않았다.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후회는 되지않았다. 다만 의문이 하나 들었다. 사 람들은 왜 여행을 가는 걸까.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작년에 첫 대학생활 일 년을 마치고, 겨울방학동안 친구 한 명과 연락을 나눴다.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친구였다. 한 해에도 몇 번씩 해외로 떠나는 것 같았다.
하루는 그가 게임기를 사고 싶다고 말했다. 조금 당황했다. 게임기는 해외여행에 드는 비용에 비하면 절반도 채 되지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여행보다 훨씬 오랜시간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갖고 싶은 게임기도 뒤로 미룰만큼 매력적인 무언가가 여행에는 있는 걸까. 왜 사람들은 시간과 돈을 그렇게 아끼면서도 여행은 가는 걸까. 『여행의 이유』를 발견한 건 그때였다. ‘여행 갈 이유’가 아닌 ‘가지 않을 이유’만 찾고 있던 나를 사로잡은 매력적인 제목이었다. 실제 내용도 그랬다.
‘내가 생각하는 의미의 여행’만 벗어난다면, 그러니까 갔을 때 기분이 좋지 않더라도 낯선 곳에 가는 게 곧 여행이라면 군입대 또한 여행이라 볼 수 있겠다. 군대와 여행. 각자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두 단어가 만나니 묘한 기분이 든다.
훈련소 안으로 발을 딛는 순간 자신이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여행의 이유』에서는 『오디세이아』와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언급된다. 트로이 전쟁에서 오디세우스는 큰 공을 세우고 말 그대로 ‘영웅’이 되었다. 그는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정박한 섬에서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를 만난다. 오디세우스를 모르는 키클롭스에게 자신을 영웅이라 소개하며 자랑을 했지만, 그에 관심없는 거인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처하자 ‘아무도 아니’라고 자신을 낮추어 소개하며 위기를 모면한다.
자신이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받던 영웅이었든, 그렇지 않았든, 모두가 아무도 아닌 사람, ‘노바디(Nobody)’가 되어 군생활을 시작한다. 이때는 같이 생활할 모두가 ‘노바디’이기 때문에 특별한 인간관계의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다.
문제는 훈련소가 끝나고 자대로 떠날 때 발생한다. 자대에서의 신병은 그곳 주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노바디’가 아닌 특별한 존재 ‘섬바디(Somebody)’ 가 된다. 반대로 신병은 TV와 같은 매체에서 봐왔던 군선임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으로 그들을 볼 것이다. 신병은 섬바디가 됐지만 선임들은 신병을 바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림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서 악마에게 그림자를 판 대신 무엇이든 꺼낼 수 있는 ‘행운의 자루’를 받게된 사나이는 사람들에게 섬바디지만,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경원시 받게 된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게 없는 것이다. 그림자는 어쩌면 사람을 사람답게 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신뢰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신병에게는 그게 없다. 때문에 환대를 받으면서도 일원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재밌는 현상이 일어난다. 주민들과의 교류가 상당히 활발해 그들의 경계는 빠르게 누그러지지만 말이다.
군대에서는 가만히 앉아 과거 회상을 하기 좋다. 시간이 멈춰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민간인에서 노바디가 되는 순간 사회에서의 시곗바늘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선다. 군대 밖의 어느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어 사회에서의 새로운 ‘시간‘을 쌓을 수 없다. 단지 그동안 쌓아놨던 기억들만 되감아 곱씹을 수 있을 뿐이다. 그 사이 약 20년 동안 멈춰있던 국방부 시계가 삐걱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았기에 시계 돌아가는 속도가 오락가락한다. 그래도 가만히 앉아 보고 있으면 꾸준히 돌아는 간다.
그렇게 곱씹고 있자니 책에 잠시 언급된 뉴욕에 지내면서도 여행을 가자는 김영하 작가 아내분의 말도 처음에는 놀랐지만 곧 이해가 됐다. 고등학교 3학년, 한창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때였다. 당시 나는 영화과에 가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실기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학원에 다녀야 했다. 내가 살던 광주에는 영화과 입시 학원이 없어 마음맞는 친구와 함께 서울에 있는 학원을 찾아다녔다.
학원을 알아보기 위해 친구와 처음 서울로 올라갔을 때는 신기했다. 그전에도 서울은 몇 번 가봤지만, 택시로 이동하며 할 일만 끝내고 오느라 여기가 서울인지 느낄 새도 없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울 곳곳에 있는 학원들을 찾아다녀야 했으므로 도보와 지하철 이용이 필수적이었다. 서울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이틀에 거쳐 학원 열 곳 정도를 둘러보았다. 도보, 지하철, 버스 모두 이용해 돌아다니니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입시 준비를 위해 주말마다 올라갔던 서울은, 지금 생각해보면 늘 여행이었던 것 같다. 같이 학원을 알아보던 친구와 함께 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기도 하고, 그 친구가 늦잠을 자는 날에는 나 혼자 갈 때도 있었다. 다른 학원에 다니던 친구들과 올라가기도 했고, 예매할 때 자리가 하나씩 밖에 남지 않아 친구와 함께 앉지 못하는 날에는 내 옆자리에 누가 앉을지 괜히 설레기도 했었다.
시간이 남는 날이면 뚝섬이나 남산 타워, 명동을 둘러보았다. 난생처음 가보는 이곳들은 서울을 자주 들락날락하면서 길은 익숙해졌지만, 기분은 늘 새로웠다.
그때 당시에는 매주 당연하다는듯이 가기도 했고, 입시에 대한 압박으로 이게 여행인줄 잘 몰랐다. 어쩌면 좋지않은 기억도 많았기 때문에 이때의 시간을 머릿 속에서 통째로 지우려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주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서울행 버스를 올라탔던 그때는,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소중한 여행이었다. 내가 평소 여행을 잘 가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자주 여행을 간 걸지도 모르겠다.
당시 -지금도 마찬가지만-에는 서점에 가는 걸 상당히 좋아했다. 특히 영화이론과 같은 비교적 비인기 부류의 책들도 잘 마련돼있는 대형서점을 좋아했다.
매주 학원을 가기 위해, 또 학원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을 들렀기 때문에 유스퀘어, 센트럴시티 터미널에 있는 서점을 자주 들렀다.
그때 책을 고를 때에는 내 감에 의존했다. 책 제목과 표지를 슥 보고 맘에 든다 싶으면 내용을 대강 흩어본 뒤 구매를 결정하는 식이다. 그러나 내 감이 좋지 못한 편인지 이렇게 고른 책은 질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리뷰, 추천에 의지해 책을 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여행을 간접적으로 가는 ‘비여행’, 혹은 ‘탈여행’처럼 책을 미리 간접경험하고 산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사전조사도 없이 떠나는 ‘무계획 여행’도 충분히 매력 있지만, 먼저 가본 사람들의 말을 듣고 갈 곳이라도 미리 정하고 떠나는 여행이 평범한 관광객들 입장에서는 만족스러울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학원을 알아보기 위해 친구와 서울로 올라갔을 때도 나는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철저히 학원들과 위치, 이동 경로들을 조사해 계획을 세웠다. 친구는 너무 오버하는 게 아니냐고 했지만, 이게 마음 편했다. 더군다나 다른 곳도 아니고 교통이 복잡하기로 유명한 서울 아닌가. 덕분에 둘다 처음 가보는 서울이었음에도 헤매지 않고 잘 갔다 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무래도 변수를 철저히 제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성격인 것 같다.
책을 읽는 행위도 여행이라 볼 수 있을 거다. 당장 이 『여행의 이유』만 보아도 그렇다. 내가 ‘여행을 가지 않을 이유’ 수십 가지를 물리칠 수 있는 ‘여행을 갈 이유’를 찾기 위해 이 책을 펼쳤지만, 그곳에는 ‘여행을 가지 않을 이유’를 물리쳐줄 논리 같은 건 나와있지 않았다. 다만 시간과 비용을 들여 먼 길을 떠나지 않고도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책에 몰입하며 잠시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을 뿐이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작가 김영하와 함께 잠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을 뿐이다.
그 덕분에 머릿 속 깊숙히 파묻으려 했던 날들을 다시 하나둘 밝혀 조금 더 빛나는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됐다.
결국 이 책을 고를 때 의도했던 목표는 이루지 못하고 예기치 못한 교훈만 얻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더 기억에 잘 남는다고, 이 책이 준 교훈도 더 깊이 내게 다가왔다. 코로나19가 진정되고 전역을 하고 나면 나도 책 한 권을 챙겨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지금은 전역했습니다 ヽ( ᐛ )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