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나는 잘 그리고 싶어.
내가 만약 그림을 잘 그리게 된다면 말이야.
뭘 그리고 싶은지 아니?
난.
초상. 인간의 얼굴을 그릴 거야.
반쪽은 꼼꼼하게 있는 그대로. 세밀하게.
생겨먹은 대로 그리고
나머지 반쪽의 얼굴은 뭉그러뜨릴 거야.
나는 얼굴이라는 게
네모난 상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하나의 틀이라고 생각해.
‘인간’은 자꾸 자신이 안전하다 믿는 상자 안으로 기어들어가 조심스레 눈알을 굴리는 거야. 자꾸 기어들어가려는 인간. 그들을 보다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그걸 보게 됐어.
미처 틀에 가두지 못한 마음.
자꾸만 새어 나오는 것.
그게 흔한 말로는 영혼이라는 걸까.
그래 그렇다면 나는 나머지 반쪽엔 그것. 내가 본 그것.
그걸 그릴래. 생각하게 됐지.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그 인간의 영혼을 말이야.
저마다 생겨먹은 게 다른. 초상. 그걸 그리고 싶어지더라까.
인간의 얼굴이 언제부턴가 반쪽으로 나뉘어 보여. 그런지 좀 됐어. 이렇게 말하면 어처구니없게 볼 걸 알아. 또 헛소리 한다는 듯. 그 지겨운 표정도 알겠어.
그런데 어쩌지. 난 이제 그런 게 상관이 없어. 누가 어떻든 뭐라든… 이젠 타인의 말조차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아. 듣기 싫은 소리는 점점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은데 이것도 내 의지일까.
그렇다면 역시 인간은 굉장하지 않니. 의지. 나는 그게 또 정말 궁금해.
아무튼 또 말이 다른 길로 빠지지.
안타깝게도 내게는 능력이 없어.
누군가 표현해 준다면 좋을 텐데.
인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생김.
저마다 다른 생김. 나는 초상을 그리고 싶어.
그 얘길 하고 싶었어.
.
.
오늘 아침에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떠오른 생김새. 초상. 얼굴. 틀. 눈동자. 종일 따라붙는 말들을 어디 내려둘 데가 없더라.
- 22년 어느날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