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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우경 Jan 12. 2019

그게 꼭 나이키일 것까지야

- 낙원장목욕탕 예찬

날이 추울수록 몸을 지지고 싶은 건 중년의 특징. 마음 같아선 농막 아랫목이 벌겋도록 군불을 때고 팥죽 같은 땀을 흘리고 싶지만 현실은 온수매트 처지.  

 
궁여지책이 사우나인데 연희동보다 인구가 적은 지자체에 목욕탕이 있다는 것만도 감지덕지. 각각 30년 20년 10년의 연식을 자랑하는 목욕탕이 읍내에만 3개인데 시설수준은 연식에 반비례. 그나마 번듯한 10년짜리 목욕탕에 다니면서 드는 생각. '30년 된 낙원장목욕탕에는 누가 다니지?' 
 
물론 내가 다녔지. 30년 전에. 그리고 20년 전 크고 넓은 창운목욕탕이 생기면서는 그리로 다녔고 10년 전에 더 크고 넓은 세현목욕탕이 섰을 때는 당연히 옮겨 다녔지.  
 
넓기는 딱 서울시 2배인데 사람은 장날에나 겨우 보는 동네에 목욕탕 3개는 너무 많으니 낙원장목욕탕은 당연히 문을 닫았어야 정상인데 거참, 30년 동안이나 굴뚝에 연기가 오르더란 말이지. 
 
어깨가 아파 사우나가 간절하던 아침. 문득 세현목욕탕의 물이 탁하더란 생각이 들어 낙원장으로 목욕 갔다. 20년 만에. 영감 대신 아들로 보이는 젊은이가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는 것만 빼면 카운터 풍경은 그대로. 좁고 옹색한 신발장도 그대로. 커튼을 젖혀야 나오는 탈의실도 여전하고 탈의실 구석 이발의자도 어쩜 그대로. 
 
그런데 이상하지. 마음이 풀풀 몸보다 먼저 옷을 벗더라. 거기 평상에 놓여있는 조선일보도 여전하고 브라운관 TV도 그때 본 듯한데 허참, 낡고 오래된 것들이 주는 이 헐겁고 미지근한 느슨함이라니. 
 
굳이 자르지 않아도 될 머리를 맡기면서 초로의 이발사에게 물었지.
- 이 시간에 손님이 많네요.
- 많기는요. 맨날 오는 사람만 오지요 뭐. 
 
맨날 오는 사람이라고 세현이나 창운에 안갔으랴만 그래도 다시 오게 만드는 이유를 탕에 들어간 뒤 알겠더라. 의젓하달까. 어른 셋이면 꽉 차는 좁고 작은 탕인데 물이 적당히 뜨겁고 맑다. 탕이 작으니 매일 물을 갈고 청소하기에 부담이 없을 터. 기실 목욕이야 내 몸 하나 덥힐 물이면 족하지. 허브탕이니 히노끼탕이니 이름만 아름답고 바닥은 온통 미끄덩 미생물밭인 대다수 사우나보다 타일이야 좀 떨어졌더라도 뭐 어때. 물 맑고 깨끗한 게 최고지.  
 
목욕은 맑은 물에 내 몸을 씻는 일. 그 외는 다 허섭스레기 악세사리. 더 크고 더 넓은 목욕탕일수록 청소는 힘들고 물은 탁하기 마련. 사는 일도 그렇지 않을까. 눈 내린 들판을 건너자면 필요한 건 마른 장화 한 켤레. 그게 꼭 나이키일 것까지야. 
 
느긋하게 맑은 탕 속에서 어깨를 지지는데 뜬금없는 위잉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아이쿠야 20년 전 저 기계가 아직도 있구나. 달라진 거라면 그때는 썼으나 지금은 절대 쓰고 싶지 않다는 점 정도. 오는 영감님들마다 기계앞에 앉는 걸 보면 저 등미는 기계야말로 이 낡은 목욕탕의 알토란같은 영업비결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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