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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카피 Oct 15. 2023

미디어를 읽는 일

카피라이터와 미디어 리터러시

   

 이쯤에서 ‘카피라이터의 일’을 본질적 차원에서 살피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앞서 나는 카피라이팅을 말할 때, 기본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제품’과 ‘이점’을 구분했다. 이 때 ‘생산자-제품’, ‘소비자-이점’을 묶어서 다루며 이 두 묶음을 나누는 기준은 ‘관점’이다. 즉, 카피라이터가 하는 일의 핵심은 ‘하고 싶은 말-생산자 관점’과 ‘듣고 싶은 말-소비자 관점’을 구분하고 이를 ‘쓰기’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말’을 ‘입말’과 ‘글말’로 나누고 입말을 듣기, 말하기, 글말을 읽기와 쓰기로 구분할 때, 듣기-읽기는 인식의 영역이며, 말하기-쓰기는 표현의 영역이다. 카피라이터는 표층에서 보면 표현의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인식의 영역을 필요에 따라 규정짓고 선별한다는 점에서 ‘말’에 대한 능력, 즉 ‘언어 능력’을 골고루 사용한다. 카피라이터는 이러한 언어 능력을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소통’을 위한 기획을 하고 이를 명확한 문장으로 표현하여 전달하는 일을 한다.     


 요즘 ‘리터러시(literacy)’라는 표현을 많이 듣게 되는데, 리터러시란 한 마디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뜻한다. 네이버 <Basic 고교생을 위한 국어 용어사전>에서는 리터러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리터러시는 일차적으로 시대적으로 혹은 그 사회 혹은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커뮤니케이션 코드인 ‘언어’에 의해서 규정되어진다. 리터러시는 복잡한 사회적 환경과 상황 속에서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한 개념이다. 이제 리터러시는 단지 언어를 읽고 쓰는 능력에서 더 나아가 변화하는 사회에서의 적응 및 대처하는 능력으로 그 개념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다양한 매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며, 다양한 형태의 메시지에 접근하여 메시지를 분석하고 평가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미디어 리터러시가 있는 사람은 인쇄매체와 방송매체를 해석하고, 평가하고 분석하고 생산할 수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단순히 어떠한 기술의 습득이 아니며, 미디어 산업이나 일반적인 미디어 내용의 패턴, 그리고 매체 효과와 관련된 지식구조의 습득이다.”     


 카피라이터의 일이 활용 가능한 매체를 이용하여 각 매체에 최적화된 ‘쓰기’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카피라이터와 리터러시, 나아가 미디어 리터러시는 본질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가령, 동일한 아파트 광고임에도 신문에 실릴 카피와 전단에 실릴 카피는 달라야 한다. 카탈로그에 들어가는 카피는 또 다르며, 라디오나 TV 광고의 카피라이팅은 역시 다르다. 그 다름의 기준은 ‘매체의 특성’이다. “매체를 해석하고, 평가하여 분석하여 생산”을 해야하므로 카피라이터는 “미디어 내용의 패턴, 그리고 매체 효과와 관련된 지식구조를 습득”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즉 미디어 문해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매체는 과학기술 발달에 따라 새롭게 생겨나며 카피라이팅도 매체에 맞게 변화한다. 카피라이터는 일의 특성상 시대의 변화와 트렌드를 발 빠르게 인식하고 이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대중의 욕구를 파악해야 하며 이를 활용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요컨대, 미디어 리터러시가 향상되어야 하며, 향상될 수밖에 없는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나 역시 전단, 신문, 잡지, 라디오, 영상, SNS 등의 대중 매체에 대해 학문적으로 배운 바는 없으나, 카피라이팅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촉을 세워 매체를 접하고, 읽고, 분석하고 생산하기에 몰두한다.     

 그런데 오늘날 미디어 리터러시가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이유는 따로 있다. ChatGPT가 등장하면서 미디어 리터러시는 매체에 대한 해석, 평가, 분석, 생산뿐만 아니라, 정보의 진위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자료 및 정보 활용 역량과 비판적, 창의적 사고 역량까지를 포함하게 되었고 이런 관점에서 카피라이터뿐 아니라 모든 현대인들에게 미디어 리터러시가 요구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일의 특성상 미디어 리터러시를 갈고 닦아온 카피라이터가 좀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카피라이터의 기획력, 핵심 메시지를 도출하는 컨셉화 능력, 그 컨셉을 창의적으로 전달하는 표현력을 기르는 일에 폭넓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이유다.


 카피라이팅을 배우려는 수강생들의 포지션 변화를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업의 본질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점점 더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카피라이터 실무에 관한 수업을 듣기를 원하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할수록 ‘창의성’과 ‘독창성’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는 사회 현실의 방증이다. 즉, 모든 분야의 업에서 독창적이면서 창의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인력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퇴직 후 치킨집을 하더라도 컨셉이 명확한 치킨집을 해야 승산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십여 년 전부터 마케팅 분야에서 공공연하게 회자되던 말이다. 다만, 그때는 그것이 유리한 선택지로서 언급되었다면, 지금은 유일한 선택지가 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무인 치킨집이 성황리에 영업중이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기름의 온도와 최적의 레시피 비율을 맞춰서 AI가 닭을 튀긴다. 맛이 없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그 맛을 뛰어넘는 차별화된 맛의 창조 혹은 맛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서비스 또는 이제까지 없던 창의적인 커뮤니티의 형성이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작동시켜 AI가 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지점을 찾아내고, 건드려서 이전에 없던 포지셔닝을 해야 할 때이다. 이 지점에서 카피라이터는 더 이상 이전의 카피라이터가 아니다. 그는 미디어 리터러시 전문가로, 업의 본질을 꿰뚫는 존재로 아무리 발달된 AI가 나타난다 해도 결코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말 그대로 독창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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