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수요독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선생 Jan 19. 2022

지금 여기의 사이보그가 사는 방법을 기록해 일깨우다

김초엽 김원영의 <사이보그가 되다> 리뷰


2021년을 책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각종 언론 매체와 대형 서점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중 네 권을 골라 같이 읽어보는 시간이죠. 각종 일간지 선정 ‘올해의 책’ 최다 선정작에 빛나는 책, 경향신문 문화일보 시사인 한겨레 한국일보 5개 언론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책, SF적 상상력은 있지만 SF는 전혀 아닌 아주 진지한 사회비평 에세이, 김초엽 김원영의 사이보그가 되다 입니다.



‘기계와 결합된 인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나이대가 조금 있는 청취자 여러분이라면 아마 어렸을 때 봤던 로보캅의 이미지가 선명할 것 같고, 학생 청취자 여러분이라면 마블 시리즈의 아이언맨이나 윈터솔저같은 캐릭터가 떠오를 수도 있을 겁니다. 탈착이 가능하든 아니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든, 이렇게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존재를 사이보그라고 부릅니다.

이 책에 따르면, 정말 말 그대로 기계와 유기체가 결합한 존재가 사이보그라면, 우리 주변에 사이보그는 이미 정말 많이 존재합니다. 바로 각종 보조기구를 사용해 세상을 살아가는 장애인들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이 사이보그들은, 사이보그에게 친절하지 않은 세계에서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물리적 불편함을 안고 살아갑니다. 음성지원을 하지 않는 키오스크에서부터 경사로가 없는 건물에 이르기까지 한둘이 아니죠. 현실의 사이보그들에게, 비장애인들이 그려내는 사이보그의 이미지는 어쩌면 환상이나 거짓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진짜 사이보그들과 공존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관점을 바꿔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김초엽과 김원영이 같이 쓴 이 책이 여러분에게 그 길잡이가 돼드릴 것입니다.



이 책의 제목은 사이보그가 되다 지만 실제로 다루는 내용은 최근 여러 학문 분야로 발을 넓히고 있는 장애학의 연구 성과입니다. 인문 사회 과학 등 여러 분야를 장애인의 관점에서 재해석해보는, 최근 부각된 학문분야인데요. 장애학을 통해 우리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 관점을 전환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죠. 이 책의 저자인 김원영은 1급 지체장애인 당사자로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깊게 연구해 온 변호사입니다. 우리 수요독서에서도 소개한 적 있는 소설가 김초엽은, 더 이상 소개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을 소개할 때 말씀드리지 않았던 정보를 하나 덧붙이자면, 김초엽 작가도 청각장애인이라고 합니다.

장애학은 관점, 이른바 비장애인중심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보니 다루는 분야의 폭이 매우 넓고, 이 책도 그 모든 분야를 망라하려는 노력을 보여줍니다. 그 가운데 제 눈에 띈 관점은 향상과 전환이라는 문제의식인데요. 비장애인중심주의에서 장애인을 바라볼 때 치료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것이죠. 그 장애인의 상태를 비장애인과 비교해보고, 뒤떨어지는 부분을 집어내 그걸 정상의 수준으로 올려놓으려 기능을 향상하려는 노력, 이게 바로 치료죠. 여기엔 대단히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달성하기도 어려운 목표고, 장애인 당사자에게도 어려운 과정을 소화하라고 강요합니다.

하지만 정상인의 상태로 ‘향상’되는 것이 지금 현재 장애인의 삶을 개선하는 데 얼마큼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당사자인 김원영과 김초엽 모두 이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변합니다. 대신 정상인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다른 신체기관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오히려 그 부분을 지원해주는 것이 지금 당장의 삶을 개선하는 데 훨씬 낫다는 취지죠. 또 이런 기술은, 꼭 장애인을 돕기 위한 용도로 쓰이지 않고 있더라도, 이미 우리가 아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김초엽 작가는 전환이라고 부릅니다.

추상적으로 말하니 아리송한데, 이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김초엽 작가가 대학에 다닐 때 음성을 진행되는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게 매우 힘들었고, 비싼 보청기로도 그다지 많은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학교 측에 지원을 요청했더니 속기사를 붙여주는 서비스가 있는 걸 알게 됐다고 하네요. 그래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속기사를 이용했는데, 속기사는 현재 있는 직업이고 그다지 어렵지 않은 기술일 뿐 아니라 비용 측면에서도 보청기보다 훨씬 저렴했다고 해요. 이렇게 속기사라는 기술을 통해, 청각장애인인 김초엽 작가는 음성 언어를 시각으로 전환하면서 삶의 질을 끌어올린 것입니다.

이렇게 전환을 통해서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결국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입법 사법 행정부에 더 많이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요구가 반영된다면, 조금 더 다양한 형태의 신체와 정신을 가진 사람을 소화할 수 있는, 이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책에서 그런 통찰을 얻어가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제가 추천드리는 책은 이 책의 저자인 김원영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입니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우리 사회의 대표적 소수자군에 속한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비장애인중심적으로 구성돼 있는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에세이입니다. 2018년 출간된 이래 많은 독서인들이 꾸준히 찾고 있는 책이니, 한 번쯤 눈여겨보고 학부모 청취자와 학생 청취자 모두 간단한 독서록을 만들어보시는 것은 어떨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역사의 상처를 내면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