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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량음료 Jan 30. 2023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책이 많았다. 그 당시에는 책 좀 읽는 집이라 하면 목돈을 들여 시커멓고 두꺼운 표지로 된 전집을 몇 십 권씩 책장에 꽂아놓는 것이 대세였다. 겉표지만 봐서는 조금도 읽고 싶지 않을 법한, 심지어는 세로줄로 쓰인 깨알 같은 글씨의 책들이었지만 기특한 나는 그 책에 관심을 가졌다. 아주 어렸을 땐 엄마가 사 주신 디즈니 명작 동화 전집을 겉표지가 찢어질 때까지 보았고, 그 외에도 소년소녀명작동화집, 성경동화전집, 한국의 전래동화 전집 등 집에 있는 모든 어린이책들을 수없이 반복해서 읽었는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린이책들이 우리 집에서 사라져 간 후 나의 관심은 부모님의 시커먼 전집에 쏠렸다. 그중에서는 박경리 씨의 ‘토지’가 있었다. 덕분에 박경리 씨의 토지를 중학교 2학년 때 2번 반복해서 읽었다. 그 당시는 그 책이 완간이 되지 않았을 때라 전체가 16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 이런저런 글쓰기에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고 있는데, 현재 읽고 있는 책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다. 난 유시민 씨, 조승연 씨와 같이 박학다식하고 입담이 좋고 논리 정연한 사람을 좋아한다. 특별히 유시민 씨는 부모님의 서가에 그의 첫 번째 저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꽂혀있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내 기억에 따르면 그 책을 꽤나 재밌게 읽었었고, 그런 이유로 더욱 친근감을 가지고 있다.

여러 직업을 거쳐 현재는 작가라는 직업에만 전념하고 있는 그가 언제부터 글을 잘 썼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는 어렸을 때는 크게 글쓰기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그가 자신도 모르게 글쓰기 훈련을 아주 혹독하게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대학시절, 학생운동 단체에서였다고 한다. 이른바 지하대학에서 온갖 종류의 도서들을 섭렵했는데, 정치, 경제, 사회, 문학, 교육, 종교, 철학 등 모든 분야를 아울렀다고 했다. 그 책들을 정독하고 자신이 맡은 파트를 발췌요약하고, 다른 이들 앞에서 발표하고, 단체 선후배들과 토론하고. 그러면서 자신은 글을 잘 쓰기 위한 가장 기본이 되는 ‘많이 읽기’와 그 책의 가장 중심이 되는 내용을 ‘발췌’하고, 잘 ‘요약’하고, 말해보는 훈련이 저절로 되었다고 했다. 그러다 감옥을 갔고, 독방에서 할 일이 없어 읽었던 박경리 씨의 토지 1부 4권과 2부 5권을 다섯 번씩 읽은 후 일필휘지로 ‘항소이유서’를 써 내려가면서 자신의 글쓰기가 달라졌음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독자들에게 박경리 씨의 토지를 읽기를 권한다. ‘우리말 어휘와 문장의 보물창고’와 같아서 아무리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책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나의 글쓰기에도 박경리의 ‘토지’가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집에 있었던 세로줄 깨알글씨 16권의 책도 두어 번, 결혼 후 내돈내산 토지 전집 21권도 두 번, 책의 분량을 생각해 보았을 때 결코 적게 읽은 건 아닌 것 같다. 기특했던 어린 내가 그저 스토리가 재미있는 것 같아서 그 책을 반복해 보았을 때, 유시민 씨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어떤 단어나 문장이 맘에 든다고 외우려 애쓴 적이 한 번도 없었음에도, 박경리 선생이 쓴 단어들끼리의 어울림, 문장끼리의 연결 등이 내 뇌리에 남아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 집 책장에 꽂혀있는 토지를 다시 한번 슬슬 꺼내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한국학교의 글짓기반 친구들과도 이 책의 아름다운 부분을 발췌하여 함께 읽어보고 싶다는 바람도 생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유시민 씨가 권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모든 분야의 책을 골고루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이나 소설만 읽을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 문화, 역사, 생명, 자연, 우주를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지식을 담은 책들을 균형 있게 읽어야 실력이 향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의 다독 경험을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우리 집에 소설, 수필 등 문학작품만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 동화와 소설을 쓰셨던 아빠가 다른 작가들의 글을 참고하기 위해 그런 종류의 책만 사시거나 도서관에서 빌리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인문사회과학 소설을 잘 읽지 못한다. 스토리가 없는 글은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자꾸만 제자리에서 맴을 돈다. 지금 우리 집에는 남편이 사놓은 꽤 많은 양의 수준 높은 인문사회과학 도서들이 있는데  거의 읽지 않았다. 몇 번 도전을 했다가 결국 포기하였다. 그런 내가 너무나 안타깝다. 독서편식쟁이가 된 이유가 어렸을 때 편향된 독서를 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원래 인문사회과학책을 잘 읽지 못하는 뇌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이유가 어찌 됐건 글을 잘 쓰고 싶은 나는 ‘책을 골고루 읽기’ 산을 넘어야 한다. 아마 굽이굽이 쉽지는 않은 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재미있는 문학책만 는다면  글쓰기에 있어 한계가 분명한 사람이 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번 한 달간 도전하였던 ‘매일블로그 쓰기’ 프로그램에서도 내가 적은 독서감상문은 99프로가 문학작품, 1프로가 글쓰기 책이다. 지나간 독서기록을 보면서 문제의식을 느꼈다. 이제는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보는데 도전해야겠다. 유시민 씨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토지’만큼 추천한다. 두 권 모두 우리 집에 있는 만큼 한 권씩 읽어내어 보아야겠다.




이번에 글쓰기책을 구입하기 위해 검색해 보다가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놀랐다. 그만큼 많은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는 뜻을 것이다.

도대체 책이 뭐길래 온 나라가 책에 대해 이렇게 지대한 관심을 가질까. 또 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에 합당한 성과를 거두지 못할까.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책을 읽어주는 어린이들도 많고, 좀 자라서는 독서 논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어린이들도 많다. 학교에서 발행되어 나오는 각 학년의 필독도서목록은 해당 도서를 발 빠른 어머니들이 도서관에서 이미 대출해 가신 탓에  빌리기가 하늘에 별따기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의 독서비율은 많이 낮은 편이며 독서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어른들이 대부분일까. 어린 시절에 책 좀 읽었다 하는 어린이들은 왜 책 좀 읽는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할까.

많은 분들도 동의하시겠지만 우리나라의 과도한 입시 경쟁과 입시를 준비하는 방법에 있어 한국만이 가지는 특이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국어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문제를 빠르게 이해하고 풀어내기 위해 독서가 필요하고, 수능 논술에 고득점을 받기 위해 독서를 해야 하고, 우리가 배우는 교과목들은 그 평가가 문제 풀기 이므로 책 한 권을 깊이 읽고 그 안에 담긴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 아니라, 빠른 속도로 지문을 읽어 1분 안에 올바른 문장 하나를 찾아내어야 하므로 글을 즐길 여유가 없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다행히 어렸을 때 글자를 읽으며 머릿속으로 책 속의 세계를 상상하고 여행하는 순수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독서의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껴본 적이 있었기에 나 또한 오랜 입시 공부를 하면서 잃어버렸던 독서에 대한 애정을 세월이 많이 지났어도 되찾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바위로 계란 치기 같은 말이긴 하지만, 난 진심으로 우리나라의 국어교육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있다는 것만 배우지 말고 ‘난중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이순신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인상 깊었던 장면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방대한 얕은 지식도 좋지만 때로는 한 우물을 깊이 팔 수 있는 수업시간도 있었으면 좋겠다. 독서에 흥미를 잃은 어른이 되어가도록 학교가 방치할 뿐 아니라 앞장서기까지 하지 말고, 책 속에는 정말 파내어도 끝없이 나오는 보화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교육이 바뀌려면 3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릴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 세대에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한 교육전문가의 말을 들으며 절망을 느낀 적이 있다. 학교 교육에서 당장 그렇게 하기 힘들다면 학교 바깥에서라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어린이들이 좋은 글을 골고루 읽고, 발췌 요약해 보고, 토론해 보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교양 있는 어른들로 자라날 수 있도록 나도 뭔가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아직 완독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정도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이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문사회과학책에 도전해 보리라는 결심이 강하게 선다. 그것만 해도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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