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다 좋은데 매력이 없어"

연애조언의 무용성

by 뚜벅초

이 브런치북은 (의도한 건 전혀 아니지만)

저의 결혼준비기를 담은 예전 브런치북 [흙수저 부부의 현실 결혼준비기]

의 프리퀄 같은 느낌으로 읽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ㅎㅎ





나는 (한국 나이)기준 서른 살 늦가을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연애를 시작했다.

연애 대상은 현재 우리 남편이다.

그리고 남편도 나를 만난 서른 한 살 늦가을이 사실상 제대로 된 첫 연애였다.


우리가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 각자의 연애 경력은 나의 경우 한 달이 채 안 됐고, 남편도 한두 달짜리 단기 만남이 전부였다.

어찌저찌 고백해서 "우리 사귀자!"는 했는데, 생각해 보니 영 아닌 것 같아서 이별통보를 받는 그런 식이었다.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한 번 있는 나 좋다는 사람은 그 와중에도 도저히 마음이 동하지 않아서 거절하고.

그렇게 솔로 크리스마스, 솔로 발렌타인데이, 솔로 화이트데이, 등등을 30여번 보내고

서로를 만나서 결혼기간 포함 햇수로 9년째 함께하고 있다.


요즘이야 비혼주의, 비연애주의 같은 개념도 많이 대중화될 정도고(물론 나는...마흔이 목전인 준 꼰대라서 진짜 요즘 젊은이들의 풍속도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나) 연애를 하지 않는 상태 자체를 그리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러나 '라떼'만 해도 20대 청춘을 연애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그것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온갖 사람들의 훈계와 무시의 대상이 됐다.


남편이 나를 만나기 전의 사정은 정확하게 알지 못하니 일단은 내 이야기를 하겠다.

남편의 경우 학창시절에는 거의 짝사랑 전문이었고, 서른이 다 돼 취업을 하고 나서 거의 매주말마다 소개팅을 나갔고 그 중에 몇 번은 연애시작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얼마 안 가 그냥 흐지부지됐다고 한다.

나의 경우에도 20대 초반까진 짝사랑만 몇 번 하다가 정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억지로 주변을 졸라서 소개팅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어쩌면 하나같이 억지로 끌려온 듯한 모습들인지...주선자들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아니면 초면부터 이 분은 평균 편차에서 아주 벗어난 사람임을 알 수 있는 수준이거나.

나처럼 학창시절을 범생이로 살던 친구들도 대학을 가니 대부분 남자친구가 생겼고 그들의 연애사를 들으면서 간접경험밖에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나는 연애가 안 되는 걸까?

자기 외모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평가란 애초에 어렵다지만, 당시 기준으로 나는 그다지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보통 몸매에 보통 얼굴이었다. 나름의 이상형은 있었지만 꼭 그런 사람만 고집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지금 생각해보면 20대 초반까지는 가끔 길에서 연락처를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경계심 많은 성격 탓에 연락처를 준 적은 없지만(물론 사이비 교인이나 다단계였을수도 있다). 모임에 나가면 누군가는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 오기도 했는데 연애라는 게 도대체 어떻게 시작되는지도 알 수가 없던 나의 미숙함 탓이었는지 항상 흐지부지 상대방의 '페이드 아웃'으로 끝났다.


대학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신입생 때 같은 과 선배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서로 별 관심 없이 지냈고 의례적인 연락처만 받았다. 얼마 후에 그 선배가 군대를 갔다는 소식을 들었고 나는 그러려니 했다. 사실..지금은 정확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그 선배가 휴가를 나왔나 전역을 했나 해서 한 번 보자고 해서 만났는데 꾸밀 줄 몰랐던 1학년 때와 달리 나름 여성스러운(?) 옷을 입고 다녀서 깜짝 놀랐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서로 블로그니(물론 그때 블로그는 지금은 폭파돼서 없고 다른 블로그를 운영중이다) PC 메신저(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등으로 소통하고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몇 번 단둘이 만나 영화를 보거나 밥을 먹었다.


대여섯 번 만나더니 집에 가는 길에 고백을 받았다. 내가 보기에 그 분은 겉보기엔 멀쩡해 보였고 말도 잘 통하는 것 같아서 그러자고 했다. 나도 이제 모솔 탈출인가! 23살의 겨울이었다.

그런데 그는 놀랍게도 사귀자고 한 직후로 갑자기 연락이 뜸해지더니 아예 연락두절이 되기 시작했다. 답답해진 내가 따져 묻자 자신은 아직 전 여자친구를 못 잊었으며, 너에게 고백한 것도 신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아무튼 이래저래 변명을 했다. 그렇게 내 첫 연애(?)는 일주일도 안 돼서 끝이 났다. 애초에 시작도 안 됐던 것 같지만...


그 이후에도 이런 식의 만남만 두어 번 있었다. 이런 얘기를 주변에 털어놓으면 피드백은 비슷비슷했다.


"너는 다 좋은데 뭔가 매력이 없어."


매력? 그놈의 매력이 뭘까? 학교에서는 당연히 안 배우고 서점을 가도 매력을 키우는 방법은 없다. 그리고 애초에 사람마다 느끼는 매력포인트는 다 제각각 아닌가?

외모가 별로면 애초에 연애가 성립조차 안 됐을텐데 다른 매력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자칭 '연애 박사' 들이 온갖 이야기들을 하고 있지만 딱히 와닿는 건 없었다. 그냥 나를 사랑하고 좋은 사람이 되면 알아서 좋은 사람이 찾아오고...같은, 지금 생각해보면 개나소나 할 수 있는 의미 없는 말들 뿐이었다.


심지어는 장기 모솔에, 연애 무능력자에, 인기 없는 여자애인 내게 이런 조언을 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무쌍인 친구가)쌍커풀 수술 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수술할 생각 없어?"

"음..(내 몸을 훑어보며) 살은 크게 안 빼도 될 거 같은데 가슴이 작은 거 같애. 가슴수술 해야겠다."

나이 스무 살에 들은 가슴수술 조언은 마흔이 다 된 지금 생각해도 다소 충격적이긴 하다. 이 조언을 한 당사자는 후일 남편을 만나게 한 주선자이자, 지금은 여러가지 이유로 안 보게 됐다.


그리고 가장 많이 들은,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조언.

"너 그렇게 한참 좋을 때 연애도 안하고 살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 진짜 이상한 남자 만나서 고생해.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봐야 성숙해져서 좋은 사람 만나지."

아니 그래서, 그렇게 연애하려고 난리를 치는데 잘 되지도 않는 것도 억울한데, 심지어 안목도 없어서 나중에 이상한 놈 만나서 인생까지 망한다는 소린가?


사실 나는 연애 자체에 대한 욕구보다도 저 말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에 쫓기며 어떻게든 연애라는 것을 해 봐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20대를 보냈다.

그러나 많은 세상의 조언들이 그렇듯이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는 평범하게 나에게 맞는 사람을 만나서 평범하게 그럭저럭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가끔 초중학교 때부터 연애를 쉬지 않고 했다고 나에게 자랑하던 지인들이, 이상한 배우자 때문에 고통받거나, 심지어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인생이란 얼마나 알 수 없는 어려운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한편 남자 모솔인 우리 남편도 만만치 않게 이상한 조언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을 소개하자면 "그렇게 여자 경험 없이 살다가 나이 먹고 나중에 진짜 좋아하는 여자 만나면, (성)경험이 너무 부족해서 여자가 실망해서 떠날거다. 그러니 얼른 업소라도 가서 '경험치'부터 쌓아라."라고.

남편에 의하면 이 조언을 따르진 않았다고 한다. 다행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실망이고 자시고 서로 다 처음이라서 누가 누구한테 서툴다고 실망하거나 질책할 것도 없었다.


연애는 가볍지만 성인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하는 것처럼 강요되는 사회에서 하지 않는(못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별 것 아닐 수는 없다. 그 사회에서 나는 30여년간 명백한 소수자로 지냈다(그딴 게 무슨 소수자냐고 따져 물을 분도 계시겠지만, 내가 주관적으로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다. 우선 저런 말들을 듣고도 반박할 수 없다는 게 그랬다). 아무튼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던 30여년을 지냈다.



참고로 쌍커풀은, 무쌍인 내 눈이 좋아서 결국 수술하지 않았지만

30대 후반이 되니 눈 지방이 빠지면서 쌍커풀이 자동으로 생기고 말았다. 좀 아쉽다. 원래 내 눈이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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