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서민 당사자가 말하는 서민이라서 좋은 이유
얼마전 온라인에서 눈에 띄는 글을 하나 봤다.
제목은 <현실적인 서민의 삶>.
내용을 보니 정말 온라인에서 흔히 말하는 '평균 올려치기'가 없는 진짜 찐 리얼 현실적인 경제상황이 쓰여 있었다.
댓글 반응을 보니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종종 "어떻게 부모 지원이 없이 결혼이 가능하냐. 말도 안 된다"부터 "결혼 적령기인데 모은 돈이 5천밖에 안되다니 비현실적이다", "저 예산으로 10평대 아파트라도 들어간다고? 10년전인가보네" 같은 반박도 꽤 보였다.
내심 우리가 결혼할 때보다 나으면 좀 더 나았지 못하지 않은 저 글의 수준이,
누군가에게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가난'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졌다.
다른 브런치북에도 썼지만- 우리 부부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도 아니고 6년 전인 2019년 결혼했다.
당시 모은 돈은 우리 부부 합해서 단돈 2천만원이었고, 남편 앞으로 학자금 포함 대출이 천만원에 달했다.(사실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
모은 돈이 적었던 이유는 남편의 경우 집안 기둥뿌리(....) 였고, 취업이 늦었으며,
나 역시 취업이 늦었고 가정 불화로 급히 자취를 하느라 돈을 모으기가 어려웠다. 또한 내 경우에는 결혼을 언감생심 꿈꾸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자금을 모아야 한다는 절박감도 딱히 없었다.
물론 양가 도움은 전혀 없었다.
우리 부부의 월급은 글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결혼 당시 기준 아주 약간 더 많았지만 엄청나게 더 많은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현실적인 서민의 삶으로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썼다면, 현실적인 수준이 아니라 '그 수준으로 결혼을 한다니' 라며 머저리 내지는 어디가 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다.
많은 댓글들이 1억도 없는데 어떻게 전세를 얻냐며 신기해했다. 또 어떻게 2명이서 10평대에 사냐며 신기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서울에 있는 10평대 초반 미니투룸 빌라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둘이 살기엔 딱 좋았다.
다만 아이를 낳고 살기에는 썩 좋았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급히 신도시 구축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그것도 20평밖에 되지 않아 넓진 않았다)
글의 내용처럼 아이를 낳고 가점을 받아서 결혼 5년차에 경기도 신도시에 작은 자가를 마련한 것도 똑같다.
오랫동안 내 꿈은 '평범하게' 사는 거였다. 남들같지 않은 가정사, 남들같지 않은 형편에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도 나에겐 희망사항의 영역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신혼 때부터 불화가 심했지만 자녀가 있고 이래저래 참고 살다가 결국 내가 결혼한 뒤 황혼이혼을 하셨다. 성인이 된 자녀의 입장에서도 부모의 이혼은 사실 '아주 괜찮은' 건 아니다. 물론 전보다 훨씬 괜찮아지신 부모님을 보면 내 마음도 편해지긴 하다. 순전히 나만 놓고 말하는 것이다. 시댁의 화목한 모습을 보면, 육아를 하면서 친정 찬스를 쓰는 지인들을 보면, 부부 사이가 삐걱거릴 때 친정이라는 비빌언덕(꼭 경제적인 게 아니라도)을 찾는 친구들을 보면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과 함께 위축되는 마음을 피할 수 없다.
지금도 나의 꿈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나의 아이에게는 '말 못할 가정사'만큼은 물려주지 않으려고 고군분투 중이다.(그 중의 하나는 남편의 언행이 내 기준에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즉각 반발하지 않고, 일단은 꾹 참은 뒤 아이를 재우고 나서 대화를 하는 것도 있다....인데 11시에 자는 우리 애를 재우다 보면 나도 같이 잠들어서, 대개 그냥 까먹어버린다)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집안이 망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취업을 알아봤던 내 젊은날을 생각하면서, 내 아이는 다른 건 몰라도 경제적인 이유로 꿈에 제한을 두지는 않길 바랄 뿐이다. 그런 마음으로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라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러한 틈바구니 속 '경제적 자유'라는 단어는 구름 속 세상같다. 사실 난 경제적 자유를 믿지 않는다. 내 주변에서 그나마 가장 경제적 사정이 나은 사람들은 정년까지 탄탄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한 분들 뿐이다. 나머지는 실체 없는 '부자'의 꿈을 꾸다가 다단계에, 사기에, 사이비에 넘어가 그나마 있던 재산도 모두 털렸다.
나는 너무 이른 나이에 너무나 차가운 세상의 현실을 알았기에 더이상 무지개 너머의 삶을 동경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딱히 슬플 게 없다.
사람들은 위의 글을 보면서 '50이 넘어서도 경제적 자유 없이 계속 일을 해야 하다니'라고 슬퍼하는 듯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그게 왜 슬프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60대 후반이신 우리 엄마는 결국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육체노동을 하시며 생계를 꾸리고 계신다. 그럼에도 '또래보다 건강한 덕분에 이렇게 일도 하고, 진작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두길 잘했다'며 뿌듯해하신다. 나도 그런 엄마를 보며 자랑스럽고 다행스럽다. 요양보호나 사회복지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늘어갈 것이라는 생각에 나 역시 언젠가는 관련 자격증을 따 둘까 생각 중이기도 하다.
일을 하는 삶은 누군가에겐 비참하지만 누군가에겐 감사한 상태다.
그것이 비록 아주 '재미있는'일은 아닐지라도.
내 꿈은 50대가 넘어 현재 하는 일을 만약 하지 못하게 됐을 때 육체노동에 내몰리지 않는 것일 뿐이다. 물론 희망사항일 뿐이고 정말 남은 선택지가 육체노동밖에 없다면 할 생각도 기꺼이 있다. 다만 나는 원래 육체노동을 잘 못 하고(취업 준비생 시절 온갖 육체노동을 하며 생활비를 충당했는데 어딜 가나 고문관 수준이었다) 그래서 왠만하면 안 하고 싶을 뿐이다. 육체노동이 천하다고 생각해서가 절대 아니다.
대단히 호화로운 결혼생활이 아니라도 나는 감사함이 더 크다. 적어도 이제는 내 가정사에 대해 이러저런 거짓말로 둘러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가정은 평범한 가족이다. 부부가 멀쩡하게 대화를 하고 경조사에 함께한다. 대소사를 함께 논의하고 결정한다. 싸우더라도 한 시간 이상 말을 안 한 적은 아직 없다.
내 아이는 아직 어리기에 평범하다. 대단한 영재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유치원 수업을 잘 따라가고 교우관계도 원만하고 발달, 건강도 평균수준이다. '금쪽이'에 나올 것 같은 행동은 하지 않는다.
가끔씩 지나가던 사람들이 "둘째는 왜 안 낳아?"라고 묻는 것 빼고는 지극히 일반적인 가정 상황이다.
둘째를 안, 못, 안 낳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인생에 변수를 더 만드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우리 부모님이 나이 40이 다 되어 낳은 늦둥이인 동생은 아직까지 독립을 하지 못하고 취업도, 진학도 하지 못한채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자녀를 그저 평범하게 키우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또한 감사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가장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가장 행복한 게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평균 이상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리 하찮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어도 나에게는 너무나 감사하기에. 때론 이 평온이 언젠가 깨어질까봐 겁이 날 정도이기에.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가 됐다.
진짜 현실적인 서민인,
어쩌면 현실적인 서민 그 이하였던 나는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