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관 공사

by 류완



오래된 빌라에 살다 보니 집도 조금씩 늙어갑니다.

눈이 많이 온 어느 날 아랫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보일러 실 창문에서 물이 샌다고 하십니다.

눈 때문에 그런 건 아닐지 여쭙고 집 주변을 살폈습니다.

현관 앞 계단에 물이 흥건하게 젖어 있습니다.

얼른 내려가 수도 계량기를 살폈습니다.

물을 쓰지 않고 있는데 미세하게 계량기가 돌고 있었습니다.

범인은 우리 집이었습니다.


이제 아랫집 아주머니의 고민은 우리 집으로 건너왔습니다.

어떻게든 물이 새는 것을 막아야 했습니다.


금요일 오후 급하게 수리 기사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다급하게 찾아오신 기사님은 누수가 되는 부분을 열심히 찾으시더니

바닥의 일부를 드러내고 온수 배관 상태를 확인해 주셨습니다.


배관은 완전히 녹이 슬고 낡아 더 이상 쓸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기사님은 이 배관은 수리할 수 없다며 온수 배관을 따로 우회하는 공사를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할 수 없으며 월요일 아침에 와서 수리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집은 난장판이었습니다.

그 상태로 3일을 보내야 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호소해 봐야 답이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습니다.

다행히 난방 배관에는 문제가 없어 춥지 않게 잠은 잘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엄동설한에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위기가 오면 진짜 우리 편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하지요.

세 아이들은 저마다 따뜻하게 씻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미련 없이 집을 비웠습니다.

남겨진 부부는 그저 엉망이 된 거실과 찬 물을 데워가며 이틀의 시간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가족이 벌거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아내와 단 둘이 주말을 보내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물론 아내는 상당히 귀찮아하는 것 같았지만 요리조리 핑계 대고 들러붙어 지냈습니다.


월요일 아침 일찍 기사님께서 오셔서 우회하는 배관 공사를 마치고 거실 정리도 도와주셨습니다.

비용이 제법 들었지만 깨끗하게 돌아온 거실을 보면서 위안과 평안함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살다 보면 느닷없이 재앙처럼 느껴지는 일이 찾아오곤 합니다.

크던 작던 힘든 일은 힘든 일입니다.

사랑니를 빼고 3일 정도 고생했던 날이 생생합니다.

정말 힘들고 괴로웠었는데 엄마의 신장을 이식받았던 교회 누나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순간에도 석 달 뒤 남은 사랑니를 빼야 하는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아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집이 망가지고 난장판이 되어도 돌이킬 수 있는 환경이라면 괜찮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최선을 다해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야 할 때를 만나니까요.

죽음 앞에서 모두 평등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고통과 회복의 경험을 통해

삶 자체만으로도 축복임을 함께 공감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낡고 오래된 집처럼 내 인생도 여기저기 망가진 부분이 있습니다.

손대면 분노가 새고 우울함이 터져 나와 주위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도 낡고 갈라진 관을 치우고 새롭게 따뜻한 물이 흐르는 물길을 만드려고 노력합니다.


집에 대한 욕망이 크지 않아 다른 곳으로 이전하더라도 크게 달라질 삶은 살진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인생은 제법 고통스러울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믿음만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더 많이 전해지기를 위로가 넘치는 세상을 꿈꾸며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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