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종이책 중심의 국민독서율은 감소하고 있지만, 출판사의 연간 출간 종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식과 감성을 한 권의 책으로 내고 싶은 개인의 욕구는 각종 글쓰기 플랫폼 등을 통해 자유롭게 표출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질 수 없지만, 좋은 글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포맷과 플랫폼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발행한 〈2020 출판통계〉에 따르면 2020년 발행된 신간의 종수는 6만7592종으로, 2019년 6만5432종보다 0.6% 늘었다. 신간의 발행 부수는 8165만2188부로 2019년 9979만3643보다 18.2% 감소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다품종 소량생산’ 모델이 출판시장의 핵심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즉, 출판사는 독자들의 선택 기회를 넓히고, 발행 부수 조절을 통해서 재고 부담을 덜어내기 위한 전략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는 세계 출판 콘텐츠 시장의 변화도 촉발했다. 대면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온라인서점 이용률과 전자책과 오디오북의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온라인 수업과 재택 근무 기간이 길어지면서 책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났다. 이렇게 되살아난 독서 열기로 인해 2020년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국내 주요 서점들의 연간 실적도 개선되었다.
우선, 교보문고의 2020년 연간 매출액은 6942억 원으로 전년 대비 13.8% 늘었다. 예스24(6156억 원)는 23.4%, 알라딘(4295억 원)은 20.3% 증가했다. 전자책 전문 플랫폼 리디북스는 2020년 총 1556억 원으로 전년 대비 35% 성장했고, 영업이익은 26억 원으로 연간 첫 흑자를 달성했다. 밀리의 서재는 2020년 192억 원의 콘텐츠 매출을 기록하면서 전년(110억 원) 대비 74.5% 성장했다.
최근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상황이 단박에 종료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따라서, 출판 콘텐츠 생태계에 속한 이해관계자들은 최근 늘어난 수요를 지속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추진하고 있다. 기존 출판업체뿐 아니라 정보통신기술 기반의 플랫폼 사업자들도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출판 콘텐츠를 만나는 새로운 방식들
최근 네이버는 온라인 북토크와 라이브 커머스를 결합한 ‘책방 라이브’를 선보였다. 책방 라이브는 기존 네이버 책 문화판에서 진행해온 온라인 북토크 책문화 생중계에 라이브 커머스를 결합한 프로그램이다. 실시간으로 작가와 소통할 수 있고, 방송을 보면서 바로 도서를 구매할 수 있는 경험까지 제공한다. 네이버는 오프라인 매장 방문 독자가 감소한 동네 책방과 신간 홍보 기회가 줄어든 출판사, 작가와 독자가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소통 창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4월 8일부터 시작한 ‘책방 라이브’는 〈책방 라이브X동네책방〉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독립서점들과 협력한다. 사용자들은 온라인으로 동네책방을 둘러보고, 그 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별도의 독립출판물도 구매할 수 있다. 동네책방계의 이장으로 불리는 ‘스토리지북앤필름', 대학로 시집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 연남동 그림책 전문 책방 ‘사춘기' 등이 독자들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네이버는 유명 작가와의 온라인 북토크를 진행하는 〈책방 라이브X작가의 서재〉도 운영한다. 올해 타계 10주기를 맞은 박완서 작가의 맏딸 호원숙 작가가 출연해서 어머니의 대표 작품들을 이야기하는 북토크를 시작으로 이병률, 김금희, 정세랑 등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온라인 북토크와 함께할 예정이다.
주요 출판사와 콘텐츠 플랫폼의 북클럽 운영 방식에도 변화가 많아지고 있다. 출판사의 북클럽은 일정 회비를 지불한 회원들에게 출간 도서 제공, 강연회 참가 기회 제공, 특색있는 디자인으로 만든 굿즈(goods) 등을 제공하는 일종의 멤버십 서비스다. 문학동네는 자사의 북클럽 4기 회원들을 위해 온라인 강연회를 준비한다. 지난해에 코로나19가 심각해지면서 예정된 오프라인 강연회를 급하게 온라인 방식으로 바꾼 사례가 있었다. 올해는 처음부터 언택트(Untact) 상황에 맞게 강연회를 준비하고, 온라인 강연에 적합한 작가들을 섭외한다. 문학동네는 저자, 번역가, 편집자, 마케터와 함께 책을 끝까지 읽도록 서로 독려하는 온라인 완독 챌린지 ‘독파’도 시작한다.
2011년 단행본 출판사 중 처음 북클럽을 시작한 민음사는 북클럽 회원들을 위해 온라인 책 판매 행사를 준비한다. 기존에 〈세계문학전집〉등을 할인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게 회원들을 초대했던 오프라인 행사를 온라인으로 바꾼 프로그램이다. 민음사는 코로나19로 인해 전면적으로 온라인 행사를 진행하면서 전국 각지의 북클럽 회원들이 함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문학 작가들도 온라인 북클럽을 직접 만들고 있다. 오프라인 강연 행사와 교육 등이 줄어든 상황을 극복하고 독자들과의 소통을 늘리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대표적으로 팬덤 독자층이 두터운 김영하 작가는 지난해 12월부터 개인 북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라이브 방송으로 진행되는 북클럽은 1시간 정도 진행되며 작가는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설명하고, 실시간으로 독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다. 김영하 작가의 북클럽은 별도의 참가비가 없고, 작가와 직접 소통할 수 있어 작가의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올해 1월에 진행한 북클럽 방송의 동시 접속자 수는 3000명이 넘었고, 직접 추천한 철학서 『자기 결정』과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는 단기간에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전자책 콘텐츠 플랫폼 리디북스는 비대면 방식으로 독서모임을 지원한다. ‘셀렉트가 사랑한 북클럽’은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독서모임을 지원하기 위해 기획됐다. 리디북스 홈페이지를 통해 아그레아블 및 원티드, 역사책방의 대표 키워드와 추천 도서를 보고 원하는 독서모임에 신청을 완료한 회원 모두에게 리디셀렉트 3개월 이용권을 제공할 예정이다. 아그레아블은 세계문학과 인문학, 원티드는 커리어와 성장을 주제로 다양한 북클럽을 운영 중이며, 이번 이벤트를 통해 우수 모임 수상 등 리디와의 협업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역사책방 북클럽은 1주 1책 독서습관을 목표하는 시즌제 모임으로, 한 시즌은 10주간 진행된다.
최근 오디오 기반 SNS 클럽하우스(Clubhouse)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등 오디오 유료 콘텐츠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현재 포화 상태에 있는 SNS 시장에서 오디오 콘텐츠가 SNS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차세대 서비스로 떠오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이끌어온 것은 스마트폰과 함께 음성인식 기반의 인공지능(AI) 스피커나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 등 오디오 콘텐츠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 확장된 점과 연결된다.
미국출판협회(AAP)에 따르면 도서 출판 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부문은 오디오북이다. 세계 최대 오디오 플랫폼 스포티파이(Spotify)를 통해 방송되는 팟캐스트는 2019년의 70만 개에서 최근 220만 개로 늘어날만큼 성장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이다. 팟캐스트·라디오·오디오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이용자를 중심으로 빠르게 저변을 늘리고 있다. 영상 콘텐츠에 익숙한 젊은층에 오디오는 오히려 기존에 잘 접하지 못했던 신선한 느낌을 준다.
최근 밀리의 서재는 AI 음성을 활용한 오디오북 서비스를 업계 최초로 출시했다. AI목소리는 책의 성격에 따라 5개 버전으로 운영되며 실제 성우의 목소리를 분석해 사람의 음성과 거의 유사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남자 셋, 여자 둘의 AI 목소리가 저마다 다른 인격을 입고 개성을 자랑한다. 책에 따라 어느 성별에 어떤 화자가 적합할지, 어떤 목소리 톤으로 읽어야 어울릴지를 고려해 목소리를 매칭한다. 최대한 사람의 음성으로 텍스트의 감성을 전달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다. 밀리의 서재는 우선 AI 오디오북을 100권 출시했고, 매달 500종씩 추가할 예정이다.
네이버는 네이버웹소설의 인기작을 오디오 드라마로 다시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재혼 황후」의 경우 현재 29화까지 공개되면서 이용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네이버는 「재혼 황후」 외에도 「내 남편과 결혼해줘」등 주요 인기작의 오디오 드라마화로 오디오클립 성장세를 견인할 방침이다. IP(지식재산권)의 OSMU(One Source Multi Use)화가 본격화되면서 네이버 외에 각종 콘텐츠 플랫폼의 웹소설의 오디오 드라마화 제작 현상이 확산될 전망이다.
출판산업의 합종연횡 시대
최근 웹소설과 웹툰이 주도하는 콘텐츠 시장의 급변은 출판산업 전반에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콘텐츠 플랫폼이 출판사를 인수한 뒤 직접 웹소설과 웹툰을 제작하거나, 전자책 구독 플랫폼과 글쓰기 플랫폼이 제휴를 통해 독점 콘텐츠 제작과 유통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SK텔레콤의 앱마켓 자회사 원스토어(One store)는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 로크미디어를 인수하고, 예스24와 웹소설·웹툰 제작을 위한 합작법인(JV)을 설립했다. 로크미디어는 판타지, 로맨스, 무협 등의 장르물과 웹소설·웹툰 등을 제작하는 출판사로, 1200여 종의 콘텐츠 판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700여 명의 작가와 계약을 맺고 있다. 원스토어는 로크미디어 인수로 확보한 콘텐츠를 원스토어북스와 네이트의 툰앤북 등에 공급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강화할 예정이다.
독점 콘텐츠 확보를 위한 플랫폼 간 협업도 활발하다. 밀리의 서재와 카카오 브런치(Brunch)는 공동으로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작가가 직접 기획하고 완성한 작품 ‘브런치북’ 원작 중에서 원석을 발굴하고, 이를 밀리의 서재 오리지널 콘텐츠인 ‘밀리 오리지널’ 전자책으로 출판하는 공모전이다. 소설가, 작가, 평론가, 기자로 구성된 4인의 심사위원단 심사를 거쳐 수상자 20명을 선정한다. 수상자 전원에게 각각 상금 100만원과 ‘밀리 오리지널’ 전자책 출간 기회를 제공한다.
최근 국내 양대 포털 기업은 원천 IP를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웹소설 플랫폼을 잇달아 인수하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전국 10~59세 2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평소 이용하는 디지털 콘텐츠 1위는 73.6%로 웹소설이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그 뒤로 만화(55.1%), 음악(53.7%), 영화(42.8%) 등이 뒤를 이었다. 업계는 2018년 약 4천억 원 수준이었던 국내 웹소설 시장 규모를 현재 약 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카카오는 콘텐트 자회사 카카오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영문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Radish)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약 4000억 원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연내 신인 웹소설 작가 육성을 위한 무료 연재 사이트 '카카오페이지 스테이지'도 출시할 예정이다. 해당 사이트는 아마추어 창작자에게 연재 공간을 열어주고, 그중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작가는 카카오페이지에서 데뷔할 수 있게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네이버는 올해 1월 글로벌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Wattpad)를 인수했다. 약 6억 달러(약 6700억 원)에 왓패드 지분 100%를 확보한 네이버는 왓패드에서 흥행한 웹소설을 기반으로 웹툰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왓패드 주 이용자의 80%가 젊은 세대인 만큼 다양한 트렌드를 반영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며, 왓패드의 영상 사업을 전개하는 왓패드 스튜디오(Wattpad Studio)와 네이버웹툰의 스튜디오N(STUDIO N)을 활용한 영상화 작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여전히 출판산업의 주류는 종이책 중심의 제작과 유통, 소비로 이어지는 생태계다. 하지만, 스마트 미디어 환경으로의 변화는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출판산업의 변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제 종이가 아닌 디스플레이 액정 화면에서 글을 쓰고 읽는 행동은 MZ세대를 중심으로 일상화되고 있다. 작가와 독자, 출판사와 독자, 서점과 독자 간 연결 방식도 온라인과 소셜미디어(Social media)를 활용하는 것이 새로운 표준(New normal)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금의 국내·외 출판산업은 변화무쌍한 시기에 접어들었다. 이제 책은 단순히 텍스트로만 그치지 않고, 오디오와 비디오를 넘나들며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의 시작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