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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래블 Oct 18. 2021

일 못하는 팀원 때문에 힘들어요.

32살, 아직도 취업준비 중입니다.



입사한 지 6개월 차, 나는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그런데 그동안 팀장을 비롯한 팀원 4명 모두가 퇴사를 했다. 팀에 남아있는 것은 이제 막 정규직이 된 나와 입사 3개월 차인 M이 전부였다.


M이 입사할 당시 나는 인턴이었기 때문에 그의 이력서도 보지 못했고, 면접에 들어간 것도 아니어서 그의 첫 출근날 처음 만나게 되었다. M은 매우 독특했다. 인상도 독특했고, 행동도 뭔가 독특했다. 외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가 싶었다.


근데 그 독특함이 점점 과하다고 느껴졌다. 작성한 문서를 봤는데 맞춤법 틀린 것은 그렇다 쳐도 띄어쓰기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당연히 띄어 써야 할 부분이 붙어있었고, 정말 당연히 붙여 써야 할 곳이 띄어져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문서 작성의 기초도 되어 있지 않지? 초등학생도 이렇게는 안 쓸 것 같았다. 충격이었다.


파워포인트나 워드를 사용해서 문서를 작성할 경우에는 정말 기초적인 것까지 물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알려줬는데 그 빈도가 잦아지자 짜증이 났다. 아니 대학생 때 과제 제출을 한 번도 안 해봤나? 설사 모른다 해도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충분히 나올 정보인데 그걸 하나하나 나에게 물어보니 화가 났다.


어느 날은 M이 상사에게 혼나고 있는데 그 불똥이 나에게 튀기까지 했다. 너는 옆에서 얘가 잘 못하면 도와줘야지 왜 그냥 내버려두었냐고 뭐라 했다. 내가 뽑은 사람이 아닌데, 내 일 하기도 벅찬데, 이 사람 일을 봐주는 것도 내 업무인가 화가 났다.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우연히 그 사람의 모니터를 봤는데 회사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냥 농땡이치는 것이 아니라 투잡 같았다. 정말 화가 났다. 나는 M이 일을 못해서 혼나기까지 하는데 저 사람은 회사일은 내팽개쳐두고 다른 일도 하는구나.


어떤 날은 하하호호 웃으며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어떤 날은 그 사람 때문에 아무 이유 없이 화가 났다. 내가 저런 사람과 한 팀에서 일하면서 똑같은 월급을 받고 있다는 것이 분하고 속상했다. 저 사람 몫까지 일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이 바뀌고 팀에 디자이너도 새로 들어오면서부터는 M이 없어도 충분히 팀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M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M이 받는 월급을 그냥 나머지 팀원이 나눠갖는다면 훨씬 더 사기도 올라가고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한 사람이 빠지고 나머지 팀원이 그 사람의 일을 나눠갖는다고 하여도 월급이 올라가는 일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이렇게 화가 나는 날이면 M에게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M에게 신경질적인 어조로 말하면 나만 괜히 히스테리 부리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더 괴로웠다.


M의 입장에서는 내가 감정 기복이 심한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날은 웃으면서 얘기하다가 어떤 날은 차갑게 대하다가 쟤는 왜 저러나 욕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혼자 끙끙거리며 몇 년 동안 그를 싫어했다. 그런데 한 지방도시로 출장을 갔을 때였다. 출장이 길어질지 모르고 2박 3일분의 간단한 짐만 챙겨 떠났는데 예상치 못하게 출장이 일주일 이상 길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차가 있었기 때문에 일 중간중간 틈이 날 때 얼른 서울에 다녀오곤 했다. 하지만 나는 차가 없었고, 우리가 머무는 숙소는 시외버스정류장이나 기차역까지 가는 대중교통도 없는 산 속이라 혼자 이동하기도 어려웠다. 지방에서 큰 행사를 진행하는 업무라 누가 누굴 챙기기 어려웠고 모두가 정신없었다.


그때 M이 KTX역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얼른 가방을 싸라고 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다른 분들한테 서울 다녀오겠다는 말도 안 했는데 저 정말 갔다 와도 될까요?" M은 지금 아니면 진짜 서울 다녀올 시간 없을 거라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기가 잘 말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올 때는 OO 씨와 같이 오면 될 거라고 했다. 그 덕분에 서울에 올라가서 다시 짐을 정비해 내려올 수 있었다.

서울로 가는 KTX 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분명 M도 나 때문에 직장생활이 힘들었을 텐데 그럼에도 힘든 상황에 처한 나를 보며 도와주었다. 만약 M과 나의 처지가 바뀌었다면 나는 M을 도와줬을까? 속으로 고생 좀 해봐야지 잘됐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M은 일을 못했을지언정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사실 지난 회사에서는 일 못한다고 구박 듣고 다른 인턴들과 비교당하던 사람이 나였다. 그것을 생각하니 비교당하면서 혼나는 것보다는 일 못하는 팀원을 보고 좀 답답하지만 도와주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은가 싶었다. 또 잘 못하는 사람을 도와주며 스스로 자신감을 갖게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그 사람 덕분에 이 회사에서는 그래도 적응하며 다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그렇게 이르자 지금까지 M에게 했던 행동이 미안했다.


한참  다른 사정으로 M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다. 그동안 너무 무뚝뚝하게  것에 대해 사과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어서 제대로 못했다. 그냥 농담처럼 나이도  어린애가  못한다고 맨날 구박해서 너무  보기 싫고 힘드셨죠? 다음 회사에서는 편하게 일하세요라며 웃으면서 얘기했다. M이 퇴사한 뒤에는 오히려 편한 사이가 되었다.


얼마 뒤 나도 그 회사를 그만두고, 회사를 다니면서 썼던 일기장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중 M에 대해 쓴 일기가 있었다. M이 너무 미워서 억지로라도 좋은 점을 찾아서 일기로 작성한 것이었다. 그래도 M 덕분에 회사에 잘 적응한 것 같다고 내일은 M이 묻는 질문에 조금이라도 더 상냥하게 대답해줘야겠다는 내용이었다. 다 지나고 보니 그런 일기까지 쓴 내 자신이 너무 웃겨서 사진을 찍어 M에게 보냈다. M에 대한 칭찬의 글이니까 M도 웃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커피 쿠폰을 보내왔다. 깜짝 놀랐다. 이런 거 받으려고 사진 보낸 거 아니라니까 괜찮다고 그냥 맛있게 먹으라고 했다.   


다시 그 당시로 돌아가도 일 못하는 M이 너무 답답하고 짜증 났을 것 같다. 하지만 어차피 내가 팀장도 아닌데 조금은 더 편하게 마음을 가졌을 것 같다. 내가 일 못해서 구박당하는 상황보다는 그래도 일 못하는 다른 팀원을 보며 답답해하는 게 조금을 낫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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