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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래블 Oct 21. 2021

5인 미만 출판사 취업 후 느낀 무력감

32살 아직도 취업준비 중입니다.



화려한 건물에서 일해보고 싶어서 청계천 바로 앞의 회사로 이직했다. 그러나 빛 좋은 개살구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이직 3개월 만에 다시 이직을 결심했다.


다른 여행사로 이직해봤자 비슷할  같았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졌다.  생각,  생각을 하다가 예전부터 다니고 싶었던 출판사로의 이직을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마침 친언니가 출판사 마케팅팀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언니에게 물어보니 출판계로 이직하는 것을 추천하지는 않았지만 이직한다면 분명   것이라고 응원해줬다.  


구직사이트에 들어가서 출판사 마케팅을 검색했다. 몇 개의 채용 공고를 발견했다. 그중 집과 가깝고, 근무시간이 9시부터 5시까지인 회사를 발견했다. 그냥 이력서만 넣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출판사 경력이 전무했고, 관련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관련 과를 나온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 감명 깊었던 책 목록을 카드뉴스로 짧게 만들어서 이력서와 같이 보냈다.


면접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반차를 내고 면접을 보러 갔다. 여기가 맞나 싶었다. 그냥 사람이 살 것 같은 평범한 빌라 3층이었다. 간판도 없고 벨도 없었다. 벨이 없어 문을 두드리니 문이 열렸다. 방 2개짜리 빌라를 사무실로 꾸며놓은 것이었다. 여름이라 맨발에 샌들을 신고 갔는데 신발을 벗어야 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사무실 자체는 깔끔했다. 면접에서 뵌 대표님과 이사님의 인상도 좋아 보였다.


연봉이 조금 깎였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어차피 출판사는 연봉이 박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근무시간도 9시부터 5시까지로 1시간 단축되니까 그 정도는 감수할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출판사로 이직하게 되었다.


출근하고 며칠 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게 됐다. 근로계약서를 읽는데 쎄했다. 일단 포괄임금제였다. 미리 합의한 내 연봉에 야근수당, 주말 수당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수당은 따로 계산해서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근무시간은 9시부터 6시까지로 되어 있었다. 채용공고에서는 분명 5시까지라고 했는데 말이다. 이에 대해 물어보니 편의상 계약서에만 그렇게 적는 것이고 5시에 퇴근해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계약기간이 1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에 대해서도 물어보니 근로계약기간이 아닌 연봉 계약기간이라고 했다. 뭔가 쎄했다. 이상했다. 그럼 연봉 계약기간이라고 적지 왜 애매하게 적어놨을까.


일단 싸인을 했다. 싸인을 하고 돌아와 앉았다. 찝찝했다. 근로계약서를 더 자세히 읽었다. 연차휴가는 근로기준법에 따른다고 되어 있었다. 여기는 5인 미만 사업장이니까 그럼 휴가를 안 준다는 것인가 궁금했다. 근데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인사팀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마케팅 담당자는 내가 이 회사에 최초이자 유일하게 뽑힌 직원이었다.


속상했다. 대학에서 4년 동안 법에 대해 공부했는데, 지금까지 일한 게 몇 년인데, 근로계약서 하나 쓰면서 궁금한 것조차 제대로 물어보지 못하고 찜찜한 채로 사인한 나 자신이 너무 바보 같고 무력하게 느껴졌다. 노무사인 친구들에게도 물어보기 창피했다. 대학에선 같이 공부했는데 왜 나는 이런 신세인가. 나도 열심히 공부하고 늘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이직을 잘못한 것 같았다. 아무리 이직이 급했어도 이렇게 작은 회사로 이직하면 안됐는데. 갑자기 예전 회사들이 그리워졌다. 인사팀에 물어보면 될 텐데. 작은 회사에서 일하며 바로 위 상사가 대표고, 이사인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처음 알았다.


그래서 그냥 속으로 어차피 포괄임금제로 야근수당, 주말 수당 못 받는 거니까 절대 추가 근무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채용공고에 5시 퇴근이라고 했으니까 5시까지만 일하고, 근로계약 1년은 그때 가서  혹시 그만두라고 하면 퇴직금 받고 다른 데로 이직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출판업계로 이직이 목표였지, 이 회사로 이직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으니까. 그게 지금으로서 내가 나에게 당당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P.S. 참고로 입사 당시 5시 퇴근이라고 했던 것은 결국 6시 퇴근으로 변경되었다. 대신 휴가를 쓰라고 했다(휴가는 당연히 쓰는 것 아닌가?!). 그리고 계약기간 1년은 한참 시간이 흐르고 갑자기 근로계약서가 잘못되었다면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으로 수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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