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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 Ing Jun 29. 2024

240628 LOTD

매일 성공하거나, 혹은 배우거나

우리 회사는 실험을 참 많이 한다. 심지어 나는 Growth 조직 소속이다 보니 더 그렇게 느낀다. 같은 팀 멤버들이 각각 몇 개의 실험을 돌리고 있는지 셀 수도 없다. 매일같이 여러 개의 실험 론칭 리뷰 메일이 도착한다. 나도 드디어 작은 실험 하나를 ramp up 했다. (올렸다.) 단 1퍼센트에게만 활성화한 실험이었지만 그래도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정도였다. 내 실험은 굉장히 작은 부분으로 애초에 가설부터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 예상되지 않았다. 그럴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 실험 결과 페이지를 들어가고 있었다. 실험 결과가 최소 하루 이후부터 나온다는 것을 대충 알면서도 말이다. 버디는 내가 첫 실험을 시작한 것을 슬랙으로 축하해 줬다. 계속 들락날락 걸린다는 나의 말에 적어도 내일 오후 다섯 시는 넘어야 뭐가 보일 거라며 쐐기를 박아줬고 나는 겨울왕국의 안나처럼 "Okay bye..."를 남기고 사라졌다.


결과는 역시나 별 거 없었다. 실험군을 2퍼센트로 올리고, 5퍼센트로 올려도 가끔 조금 튀었다 가라앉는 수치만 있을 뿐 뚜렷한 변화의 경향이 보이지 않았다. 예상된 결과였지만 뭔가 아쉬웠다. 다른 멤버들이 하는 멋진 실험 결과를 나도 보고 싶었다. 첫 실험을 맡고 싶어 맡았더니 이제는 더 크고 본격적인 실험이 하고 싶어 진다. 나는 여전히 이 실험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 이 큰 회사에서는 10퍼센트도 안 되는 실험군으로도 충분히 분석할 만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작고 변화가 없는 실험이라도 프로덕트에 바로 반영할 수는 없다. 실험 리뷰 미팅을 통해 실험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이 회사에서는 참 발표를 많이 한다. 그리고 참 문서도 많이 쓴다. 프로젝트 문서도 쓰고, QA문서도 쓰고, Oncall 공유 문서도 쓰고, 실험 결과 문서도 쓰고, 론칭 리뷰 문서도 쓴다. 그리고 모두 미팅에서 직접 발표한다. 참 엔지니어의 책임이 막중하다. 다들 개발할 시간은 나는지 모르겠다. 시니어들을 보면 여기에 프로젝트 리딩도 직접 해야 한다. 가끔은 내가 시니어가 아직 아니라 다행이라고도 느낀다. 초등학교 저학년 같은 영어로 이런저런 문서도 쓰고, 발표도 하고, 시니어가 되면 프로젝트 미팅 리딩도 해야 한다니. 아직 제대로 시작하진 않았지만 하나하나 정말 부담스럽다. 


최근 버디의 프로젝트에 합류해 버그가 아닌 일을 받았다. 특정 페이지의 특정 부분을 개선하는 것인데 드디어 큰 일을 받게 되어 기뻤다. 오랜만에 피그마도 켜고 프런트엔드 작업도 했다. 좀 더 본격적인 일인 만큼 작업의 난이도도 높았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코드의 난도가 높기보단 내가 모르는 레거시가 많은 코드베이스에서 수정사항을 집어넣기가 어려웠다. 또한 우리 팀이 하는 일의 범위 특성상 수정사항을 적용하기 위해 협업해야 하는 팀이 많았다.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일의 요구사항을 개발하다 보니 무언가 부딪히는 부분이 있었다. 회사에서 쓰는 디자인 시스템과 관련한 문제였다. 찾아보니 우리 팀의 다른 사람들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었고, 조금 우회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나는 일도 비교적 적고 시간도 많은 온보딩 기간이니까 좀 더 그 문제에 대해 들여다봤다. 결과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디자인 요구사항을 충족하지 못했다. 타협을 해야 했다.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 보고 버디와 논의하다 보니 결국 꽤 괜찮은 해결방법을 찾았다. 디자인시스템 개발 팀에도 해당 솔루션에 대해 확인을 요청했다. 물론 요청에 대한 답변이 오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괜찮다는 확인도 받았다. 우리 팀에게 내 솔루션을 공유했다. 기쁘게도 많은 팀 멤버들이 좋아해 줬다. 프로젝트 미팅에서도 버디에게 칭찬받고, 팀 주간 미팅에서도 다른 멤버에게 칭찬받았다. 그 미팅에서 나 또한 즉흥적으로 내 솔루션을 설명했다. 내가 노력해서 찾은 솔루션이긴 했지만 팀원들에게 도움이 되어 기뻤고, 내 노력을 알아주는 팀원들이 있어 기뻤다. 


또 작업을 하다 발견한 다른 팀의 오류를 해결하기도 했다. 처음엔 오류를 발견하고 다른 팀의 채널에 물어보는 것에서 시작했는데 그냥 답답해서 내가 뛰게 되었다. 다른 팀 멤버랑 얘기하다 내가 직접 수정해 PR을 생성했고, 그 멤버가 빠르게 확인하고 승인해 주어 첫 다른 팀 contribution을 하게 되었다. 무려 300개가 넘는 파일을 수정하는 작지만 나름 큰 작업이었다. 다른 팀에서도 본인들의 문제를 수정해 줘서 고맙다고 해줘서 기뻤다. 내가 원한다면 프로덕트 어디든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조라 참 신기하고 재미있다. 참 크지만 이럴 때는 작은 회사같이 느껴진다. 이 회사 개발자들이 보는 파일들 중 300개의 파일에 최신 에디터로 내 아이디가 박혀있다. 생각만 해도 기분 째진다. 버디에게도, 매니저에게도 자랑했다. 이 회사에 내 이름을 더 널리 알리리!


다른 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즐겁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어디까지 직접 도움을 주고, 어디까지는 문제를 보고하고 말 것인지 고민도 되었다. 모두가 프로덕트 코드 어디든 접근할 수 있어 누구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매니저와 얘기하며 점점 일이 많아지다 보면 일의 우선순위가 생길 것이고, 우선순위 기준으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보니 내가 우리 팀의 일이 아닌 다른 팀의 일만 하고 있지 않나... 하는 고민도 하게 된다. 어디까지나 이런 외적인 일은 외적인 일일 뿐, 내 성과에 도움은 되지만 주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분명히, 도움이 되기는 한다.


일을 하다 보며 생긴 또 다른 고민은 코드 퀄리티에 대한 고민이다. 지난 일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우리 회사나 팀 특성상 실험을 많이 돌리기 때문에 정교한 개발보다는 빠른 개발에 더 집중하게 된다. 요즘의 나는 새로운 코드 퀄리티 레벨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내 생각보다 나 스스로 코드를 정교하게 짜고 서로 타이트하게 피드백하며 얻는 즐거움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나와 원하는 수준이 비슷한 멤버를 찾기는 어려웠다. 코드에 대한 토론을 좀 더 하고 싶은데... 그래도 최근 한 멤버가 코드 레벨에 대한 리뷰를 많이 남겨줘서 이 멤버와 좀 더 친하게 지내며 코드 얘기를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코드 퀄리티에 대한 나의 고민과 노력을 좋게 봐준 팀원들 덕분에 좋은 recognition도 많이 받았다. 이런 나의 모습이 growth팀이 원하는 모습인가 고민이 들기는 하지만 팀에서 다들 좋아하니 아직은 유지하도록 해야겠다. 


입사 두 달째가 되며 첫 번째 달보다는 더 큰일을 맡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내 결과물이 나오는 속도도 느려졌다. 하지만 스스로 조바심이 난다. 첫 번째 달에 매주 두세 번씩 팀에 무언가 공유했던 기억 때문일까 나 스스로가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쉽지 않다. 어떤 작은 것도 협업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 누군가의 확인이나 작업을 기다리다 보면 하루 이틀, 일주일은 금방이다. 그리고 더 큰 작업을 맡은 만큼 내 작업물을 공유하기 어려워진다. 쉬운 버그는 더 쉽고 명확하게 해결하고 자신 있게 결과를 공유할 수 있었는데, 지금의 작업은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만큼 100% 해결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또 그만큼 다 했다고 공유하기 망설여진다. 바보 같은 고민이다. 내 고민을 들은 버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내 걱정을 덜어줬다. 괜스레 털어놓지만 한 걸로도 좀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팀에서 일하는 약 두 달간, 참 많은 칭찬을 들었다. 그 칭찬이 기뻐서 나도 더 내 자랑을 하고 싶어 진다. 더 좋은 결과를 내고 싶어 진다. 그래서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남들에게 칭찬을 잘해주는 사람인가? 나도 칭찬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진다. 하지만 아직 쉽진 않다. 그들처럼 숨 쉬듯 칭찬하려면 아직 멀었다. 고맙다고 얘기하는 것도 어렵다. 입 밖으로 땡큐밖에 튀어나오지 않아서 내가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는지 전달될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마음 같아선 내가 얼마나 고마운지 내 마음을 꺼내 보여주고 싶다. 


이제 좀 알아가는 것 같다가도 일을 더 깊게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이 한가득 나온다. 분명 사용하는 기술은 같은데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이 끝이 없는지.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발견할 때면 가끔은 언제쯤 이 모든 것을 알게 될까 하는 걱정이 든다. 이 막막함을 이겨내기 위해 나는 스스로 한 단어를 만들었다. "LOTD", Learning Of The Day라는 뜻이다. 회사 가치 중 하나인 "Win or Learn"에서 나름 빌려왔다. 일 하고 질문하면서 모르는 것이 나왔을 때 실망하기보단 "LOTD"라고 부르며 그것을 기념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좀 편해졌다. 나는 이렇게 매일매일 배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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