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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석류 Dec 17. 2021

예술지원 심사의 신뢰성 : 흔들리는 저울

글. 장석류/공진단 블랙 2021.12_vol09. 

「중용(中庸)」에서 중요한 한자인 명(明)은일(日)과 월(月)이 만나 밝음을 이루는데,저울을 든 자는 어느 쪽도 치우치지 않게눈을 가림으로써 이 밝음을 볼 수 있다고 한다.혹여 눈을 가리지 못해도 그보다 중요한 건 손에서 흔들리는 저울을 놓지 않는 것이다.    

        

균형을 잡는 저울, '심사'에 대해

'심사(審査)'는 살피고(審) 조사해(査), 등급이나 당락 따위를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심사를 한다는 것은 어떤 사안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이다. 심사는 예술정책 지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돈과 힘이 많은 병원과 의사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조직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다. 병원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진료비를 '심사를 통해 결정'하는 곳이다. 병원은 진료비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해당 조직은 국민의료평가기관으로 진료비 '심사'와 요양급여 적정성을 평가한다. 큰돈이 걸려 있는 병원의 적정 진료비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논쟁과 압력이 있을지, 예술지원정책 심사에 비하면 고래 싸움으로 보인다. 이처럼 꼭 예술지원이 아니어도 공공행정의 영역에서는 어떤 사안이 법과 규정에 맞는지, 혹은 제한된 자원을 합리적으로 분배하기 위해 심사제도가 필요하다.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등에서도 어디까지 가능한지, 누구의 손을 들어주어야 하는지, 왜 안되는지 등 쟁점을 심사해 판단하며 예산을 집행하고, 정책을 추진한다.





정의의 여신상

그렇다면 심사와 심의 업무가 가장 많은 정부 조직은 어디일까. 아마 법원과 검찰조직일 것이다. 대법원에 가면 대표하는 상징물로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정의를 의미하는 'Justice'는 정의의 여신인 'Justitia(유스티치아)'에서 생겨났다.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다. 칼은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자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저울은 어떤 의미일까? 어찌 보면 이 저울이 심사에 요체일 수 있다. 형평성(衡平性)의 형(衡)은 저울대를 의미한다.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바로 그 저울이다. 저울의 균형점은 규칙과 기준을 상징한다. 눈을 가렸다는 것은 사심 없이 동등하게 규칙을 적용하려는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눈만 가린다고, 심의하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울의 균형점에 있는 규칙과 기준을 정확하게 알고 나서 왼쪽에 올려진 가치의 무게에 맞게 등급이나 당락, 분배의 결정을 오른쪽에 둘 수 있어야 한다. 왼쪽에 올려진 것이 달라지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하는 조절의 관점도 필요하다. 저울이 왼쪽 오른쪽을 왔다 갔다 흔들리면서 균형을 잡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저울이 문제일까, 저울을 든 사람이 문제일까?


블랙리스트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 ©뉴스페이퍼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예술지원 심사제도는 그 신뢰를 크게 잃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기금사업 심의제도 개선방안 연구를 진행했고, 심의 개선을 위한 예술 현장 토론회나 공청회를 꾸준히 열고 있다. 서울문화재단도 예술지원체계 개선 연구를 비롯해 최근 대학로에 예술인이 주도하는 예술청을 개관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의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 것처럼, 예술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국가 행정에서 배제된 기억은 깊은 잔상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신뢰하기 어렵다고, 심사가 필요 없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예술지원 심사에 대한 공정성 회복을 위해 우리는 큰 노력을 해왔다. 조직의 내부자들도 그만 욕을 먹고 싶을 것이다. 무슨 말만 하면, 공정하지 않다는 말을 듣는 것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실무자들도 많다. 조직의 내부자들도 어떻게 제도 개선해야 할까 고민해왔고, 현장의 예술가들도 목소리를 꾸준히 냈다.


그렇다면 현재 예술지원 심사제도는 문제가 없을까. 블랙리스트의 아픈 상처를 이겨내고, 예술지원의 '정의의 여신'이 쥐고 있는 저울은 작동이 잘 되고 있을까. 만약 문제가 있다면 저울이 문제일까, 저울을 든 사람이 문제일까. 정의의 여신이 한쪽 손에 든 칼을 내려놓고, 예술지원 예산을 한 손에 쥐고, 한 손에 저울을 들었다고 생각해 보자. 예술의 영역은 주관적인 부분이 많아서 정의의 여신도 어떤 미적인 취향을 가졌을지 모르겠지만, 법원에 있을 때보다 판단이 쉽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정의의 여신도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저울의 균형점', 다시 말해 '판단의 기준'을 찾으려 할 것이다. 당신이 심사자로 위촉됐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심사의 기준을 설명할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면 대체로 사업의 내용은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지만, 심사의 기준은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사의 기준을 찾으려면 해당 사업의 배경과 목적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사업을 하는 조직의 미션과 비전도 이해해야 한다. 해당 사업이 처음 생긴 사업이 아니라면 최근 몇 년간 이 사업에 선정된 예술가 혹은 작품을 찾아봐야 하고, 그 결과물들이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보면 더 좋다. 이 정도 범위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 심사의 방향성, 기준에 대한 초점이 조금씩 명료하게 보인다. 하지만 대체로 그렇게까지 살피진 않는다.


심사의 기준은 누가 가장 잘 알 수 있을까. 심사자일까. 아니다. 심사의 기준은 해당 사업을 설계한 담당자가 가장 잘 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 이후 공공기관 내부 직무자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면서, 담당자가 직접 심사에 참여하거나 심사에 영향을 주는 것은 대체로 배제되는 흐름에 있다. 게다가 해당 심사를 잘해줄 것이라는 심사위원을 선택하는 부분에서도 담당자는 재량권을 사용하기 어려워졌다. 어찌 보면 담당자는 '저울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사업의 기준과 방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재량권을 가지고, 자신이 본 떡잎을 직접 선택하지 못한다. 신뢰가 낮아진 원인을 제공한 이유로 재량권이 압류당한 상황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양상은 제도적으로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2021 우란이상 프로젝트 ©우란문화재단


영국 예술위원회(ACE, Arts Council England)의 경우 지원사업을 선정하는 과정에 담당 직원의 판단을 가장 존중한다. 국내 민간 문화재단 중 하나인 우란문화재단의 경우 예술지원 사업에서 내부 프로듀서의 재량권을 상당히 인정하면서 문화예술 인력을 육성하는 프로그램 '우란이상' 등의 사업을 효과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공공 예술기관 내부 담당자들의 '판단의 경험'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면서 '저울의 기준점'을 세우는 예술정책에 대한 소신과 업무에 대한 자부심이 떨어지고 있다. 시간이 조금 걸려도 우리는 담당자의 자율적 판단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시간을 지날 수 있어야 한다. 기계적 형평에 갇힌 심사는 정말 기회를 얻어야 하는 떡잎을 놓칠 수 있다.


형평의 저울을 든 손, 가치를 보는 눈

그렇다면 현 심사제도의 기계적 형평은 어떤 맥락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우선 담당자들은 뒤로 빠졌다. 우리는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사 결과에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광역문화재단 등에서는 심사 풀(pool)을 관리한다. 숫자도 많아졌다. 그래서 어떤 사업에 대한 심의가 필요하면, 심사 풀에서 누구의 판단도 들어가지 않는 무작위로 심사자를 선택한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이렇게 뽑힌 심사자는 더 윤리적인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이렇게 뽑힌 심사자는 '형평의 저울'을 들고 있는가?"이다. 이러한 방식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는 한다. 내부자와 심사자가 사전에 '은밀한(?) 거래와 작당'을 모의하는 것을 막아줄 수 있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가 그렇듯이 눈앞에 커 보이는 문제 하나를 해결하려는 극약처방이 더 큰 문제를 만들 수 있다. 무작위로 부랴부랴 들어간 심사자는 사심이 없다는 마음가짐과 눈만 안대로 가리고 들어갔을 뿐, 정작 중요한 저울이 없는 경우가 많다. 저울이 없기 때문에 기준점이 없고, 기준점이 없기 때문에 좋은 질의를 하지 못하고, 좋은 질의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좋은 판단을 하지 못한다. 판단에 있어 중요한 틈과 사이를 놓칠 수 있다. 담당자가 심사자에게 사전에 충분한 설명을 통해 저울을 손에 쥐여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괜한 구설수나 의심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충분한 접촉은 피한다. 어찌 보면 지금의 심사제도는 블랙리스트 사건 이전보다, 어떤 면에서는 저울이 더 작동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 책임회피와 무작위라는 운이 좀 더 자리하고 있는지 모른다.


전통예술 지원사업 분야에서 심사란 무엇일까. 보통 좋지 않은 심사의 패턴은 심사자가 개인의 취향과 고집만 가지고 심사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취향과 고집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면 심사는 불공정하게 되고, 산으로 가게 된다. 좋은 심사자는 사심을 내려두고, 그와 함께 취향도 버리고, 저울을 가지고 들어간다. 여기서 저울이란 해당 전통예술 지원사업이 지향하는 '가치' 기준이다. 그것이 심사의 기준이 되면 된다. 해당 가치가 꾸준하게 심사의 기준이 되면 그것이 우리 전통예술의 방향성이 될 것이다.


(바로가기) 장석류_공진단 블랙: 비평외전 2021 12_vol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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