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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Willow Feb 23. 2018

홋카이도 페리여행 24시간 롤러코스터를 타다

홋카이도 페리 여행

“안녕하세요, 신니혼카이페리입니다. XXX 고객님 되시나요? “


홋카이도행 페리를 타기로 예정되어 있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두 달치 살림을 싸느라고 눈썹을 휘날리고 있던 오후, 페리회사에서 전화를 받을 때부터 어쩐지 예감이 좋지는 않았다. 이전엔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해상상황이 좋지 않아서요, 홋카이도 도착이 두시간 가량 늦어질 것 같습니다. 확인차 연락드렸습니다.”


어둠이 짙게 내린 교토부 마이즈루 항구

그날 자정 무렵에 출발, 다음 날 저녁 8시 30분 도착 예정이던 페리가 두시간 늦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도착시간이 10시 30분, 항구에서부터 우리가 머물 숙소까지 걸리는 시간은 적어도 1시간 30분. 눈과 도로상황 때문에 더 늦어질 수도 있다. 우리 가족은 그간의 숱한 여행경험으로 여행 중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변수에 거의 대부분 쿨하게 적응한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좀 곤혹스럽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홋카이도의 히다카日高 마을에서 렌트하는 집이다. 도착하는대로 곧장 마을 사무소 직원을 만나 체크인을 해야 하고, 또 그 마을 친구 다카하시씨네 집에 가서 우리가 맡겨놓은 침구도 가져와야 한다. 매년 홋카이도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살림살이를 다카하시씨네 집에 맡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히다카 사람들이 날개없는 천사라고는 하지만,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그것도 두 가정의 평화로운 밤을 방해하며 폐를 끼치는 것은 내 양심상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물론 막상 그들은 괜찮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곰순이는 어디서 자라고!


고민 끝에 홋카이도 도착하는 날 밤은 근처 호텔에서 자는 것으로 결심, 숙소예약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개를 동반한 4인 가족이 잘만한 저렴한 호텔이 어찌 이리도 찾기 힘들단 말인가! 여름이라면야 곰순이를 차에서 재우고 우리만 호텔에서 자면 되니 굳이 곰순이를 숙박 조건에 넣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 곳은 밤 기온이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북녘땅 홋카이도. 이 혹독한 겨울에 곰순이를 차에서 재울 수는 없는 일. 그런데 어쩌면 좋은가, 개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숙박지는 좀처럼 찾아지지 않는다.

한겨울 홋카이도, 곰순아 괜찮겠니?

페리가 도착하는 도마코마이 근처는 결국 포기하고, 검색범위를 넓혀 삿포로札幌까지 찾아보았다, 역시나 개가 들어갈 수 있는 숙소는 좀처럼 찾을 수 없다.  겨우 하나 찾은 곳은 1인당 2만엔을 호가하는 럭셔리 펜션. 4인가족과 개까지 들어간다면 총 비용이 무려 7만엔!  자정이 넘어 체크인 해서 잠만 자고 나오기 위해 7만엔을 쓴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


“영하 십도에서도 밖에서 잤던 애잖아. 하루밤 정도는 차 안에서 자도 괜찮을꺼야.”


“그래도 이제 나이가 몇살인데, 팔팔하던 청춘때랑 같나.”


“우리가 2시간에 한 번 정도씩 가서 확인해보고. 히터 틀어주면 되잖아. 어차피 자정에나 도착할테니 대여섯시간만 버티면 돼.”


“아, 그래도 너무 걱정돼….”


걱정과 고민 끝에 결국 우리는 자주 곰순이를 체크하는 것을 전제로 곰순이를 제외한 4인 가족만 호텔에서 묵기로 결정했다.


검색조건을 변경해도 뭐이리 호텔이 별로 없고 있는건 다 비싼지. 다년간의 숙련으로 저렴하고 괜찮은 숙소를 찾는데는 이골이 난 나이지만, 목표하는 2만엔 이하의 숙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작년 여름 삿포로에 1박할 때는 저렴한 숙소가 많아 어느걸 할까 고르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아…. 유키마츠리 기간이구나.’


그제서야 깨달았다. 삿포로에서 2월에 열리는 눈축제. 이젠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서 중국, 대만 등 해외에서 대거 몰려드는 홋카이도 대표 이벤트가 열리는 기간과 딱 겹친 것이다.


결국 4인 총 2만3천엔에 조식이 포함된 중급호텔로 낙찰되었다. 호텔에서 주는 아침부페가 전국 8위에 랭크되었다는 문구에 혹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이유이다.


“삿포로에서 묵을거면 도착하는 항구를 오타루小樽로 하는게 낫지 않을까?”


이럴 때 보변 우리 남편은 진짜 머리가 잘 돌아간다.


“맞다. 마이즈루舞鶴 항구가 여기서 훨씬 가깝고, 도마코마이苫小牧보다는 오타루에서 삿포로까지가 더 가까우니까 그게 훨씬 좋네~!”


우리가 탄 하마나스 배가 앞으로 항해할 항로. 마이즈루항을 출발해 오타루로!


갑작스런 항로변경


일본 관서에서 홋카이도로 가는 직행 페리는 두 가지 항로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주로 다니는 후쿠이福井 현의 츠루가敦賀 항구에서 홋카이도 남부의 도마코마이 항구로 들어가는 항로,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교토부의 마이즈루 항에서 도중道中의 오타루 항으로 들어가는 항로이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히다카 마을은 남쪽 도마코마이에서 훨씬 가깝고 게다가 국도로 되어 있어 고속도로 통행료가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밤에 도착하는 페리의 특성상 가능한 히다카 마을에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츠루가-도마코마이 항로를 주로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히다카로 곧장 이동하는게 아니라 삿포로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이동하는 것이니 삿포로에서 가까운 오타루로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


바로 페리회사에 연락해서 항로를 변경, 짐싸기 미션에 마지막 피치를 올렸다.


나흘에 걸쳐 짐을 쌌는데 어째 아직도 끝이 안나는걸까. 4인 가족과 개 한마리가 두 달동안 여행을 간다는 것은 엄청난 짐싸기 노동이 필연적으로 동반된다고 보면 된다. 여름, 겨울 두 달 씩 장기여행을 떠나는 반유목민(?) 삶을 산지 벌써 5년째인데 아직도 이렇게 짐꾸리는데 오래걸리다니. 인간이 살아가는데 참 많은 것들이 필요하구나 실감하는 순간이다. 아니면 매번 하는데도 학습효과가 별로 없는걸 보면 내 머리가 나쁜 탓인가.


다년간의 짐싸기 테트리스의 결정판

저녁 8시 출발을 목표로 했는데 8시 20분에야 겨우 차에 올라탔다. 물론 7인용 밴인 우리차는 곰순이 누울 자리 빼고는 살림살이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콘센트 다 뺐어요?”


“네. 복도쪽 문 닫았어요?”


“닫아야 되던가? 돈 찾아놓은거 챙겼죠?"


“아 맞다, 깜빡했다. 금방 가져올께요”


이런 대화가 한 열번쯤은 오고 간다.  스스로를, 그리고 상대를 의심하며 거듭 확인절차를 거치는 마지막 단계.  우리는 여행 목적별로 짐꾸리는 리스트를 만들어놓고 이를 토대로 최종점검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하다보면 꼭 리스트에 미처 적지않은 자질구레한 사항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방금 생각난 사소한 것들(선실에서 쓸 작은 빗, 편지봉투)을 다음 번 리스트에 업데이트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한다.


이제 마이즈루 항구로 출발! 뭔가 빼놓았을 것만 같은 불안감은 차로 달린지 한시간 쯤 후에 보통 정체를 드러낸다.


“어떻게 해! 홋카이도에서 쓰는 포인트카드들 안 가져왔다!”


“저런. 어쩌냐…”


히다카 마을 수퍼와 편의점, 스키용품을 구입하는 샵의 포인트 카드를 한데 모아놓은 지갑을 빼먹고 온 것이다.

“에혀. 내가 이렇지. 어쩐지 뭔가 불안하더라. 결국 또 뭘 빼먹었네.”


“대세에 지장 없잖아. 괜찮아요.”


남편은 언제나 나의 실수에 관대하다. 반대의 상황에서 나는 좀더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을 생각하면 늘 이런 남편의 너그러움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럼 뭐하나, 나는 또 계속 잔소리 할건데.


생애 최악의 배멀미와 만나다.


드디어 마이즈루항 페리터미널에 도착. 늘 하던대로 나는 아이들 데리고 건물 안을 통해 승선하고, 남편은 차를 몰고 페리 안으로 들어간다. 보통 우리가 먼저 체크인을 하고 곰순이가 들어가는 펫룸으로 가서 남편이 곰순이를 케이지에 넣는 것을 돕곤 하는데, 이번엔 어째 남편이 먼저 승선해서 곰순이도 집어넣고 방에서 기다리고 있다.

펫룸에서 케이지 안에 들어가기 싫다고 버티는 곰순

“곰순이가 어찌나 의젓해졌는지. 이제 페리 타는거에 익숙해졌나봐. 20번쯤 ‘들어가’ 했더니 지가 순순히 들어갔어.”


“오, 진짜? 웬일이래!”


페리여행을 하면서 가장 큰 도전은 곰순이를 펫품 안의 케이지에 넣는 일이다. 어디에 갇혀지내지 않는 자유견인 곰순이에게 폭 57센치 깊이 90센치의 케이지는 엄청난 스트레스인가보다. 이게 무슨짓이야, 날 도대체 왜 여기 가두는거야! 하고 매번 비명을 지르고 반항을 해서 나나 남편은 늘 진땀을 빼곤 한다. 마음이 아프지만 어쩌겠는가, 이것만이 유일하게 우리가 함께 홋카이도로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을. 그런 곰순이가 순순히 제발로 케이지에 들어갔다니, 참 오래 살고볼 일이다. 물론 순순히 들어간 뒤에도 케이지 문을 닫는 순간부터 날 두고 가지말라는 울음과 비명소리가 펫룸 문을 닫고 복도 건너편 통로의 문을 닫을때까지 들렸다는 남편의 전언에 다시한번 마음이 뻐근해진다.


승선한 시각이 자정무렵, 그로부터 꼬박 24시간동안 우리는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를 하루종일 타는 기분을 만끽하게 된다. 페리 타고 여행하기 5년차에 이런 경험은 처음.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무한반복, 파도에 부딪힐 때 쿵 하는 소리는 마치 타이타닉호가 빙하와 충돌할 때 이런 소리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 상황에서 선내를 돌아다니거나 밥을 먹는건 언감생심, 너무 어지러워서 침대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다. 그나마 좁은 케이지 안에 있을 곰순이가 걱정되서 어지러움을 꾹 참고 펫룸으로 두 번 다녀온 것이 유일한 활동이었다. 페리여행 5년차에 처음으로 곰순이가 케이지 안에다가 볼일을 보는 사태까지 이르렀으니, 이번 페리는 진정 우리 가족 모두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음이 분명하다.


곰순이의 고난


드디어 오타루 항구의 불빛이 시야에 들어오고, 우리는 서둘러 지긋지긋한 배를 벗어나 곰순이를 데리고 차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아이들 태우고 짐 싣고 마지막으로 곰순이를 태우려고 보니 녀석이 차 주변을 킁킁거리며 정신없이 뱅뱅 돈다.


“자기, 아무래도 곰순이 응가 하려는 것 같은데? 엄청 급한가봐요.”


“그래? 평소같지 않네…아, 안돼! 맙소사…”


충분히 산책하면서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하기 전에는 하루 이틀은 거뜬히 대소변을 참는 곰순이라서 평소답지 않구나 생각하는 순간, 우리 곰순이가 그 자리에서 엄청난 양의 설사를 해버렸다…!


오타루에 도착한 후 배가 멈추고 우리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차에 올라타서 배에서 하선하려고 대기하고 있는 상황. 차에 올라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이 어디일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차안에 있던 휴지를 총동원해 진땀을 빼며 사태를 수습한 후 우선 차에 올랐다. 한숨을 내쉬며 우리도 차를 몰아 배 밖으로 이동하는데,


아이고, 이번엔 우리 곰순이 입에서 쏟아지는 저건 또 뭔가.


이번엔 차안이 난리가 아니다. 배 밖으로 나오자마자 길 옆에 차를 세우고 차에 상비한 걸레와 휴지로 차 바닥과 곰순이 침대를 수습.  그리고 정확히 10분 뒤 다시 똑같은 상황을 반복하게 된다. 추워서 창문은 열지도 못하고, 설명하기 힘든 차 안의 냄새와 한몸이 되어 정신이 피폐해지는 중 겨우 호텔에 도착.

곰순이와 삿포로 산책 중

삿포로에 예약한 호텔은 다행히 호텔건물 바로 뒷편으로 주차장이 연결되어 있어, 여차하면 곰순이에게 쉽게 가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그렇게 바깥기온이 춥지 않은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 가슴을 쓸어내렸다. 컨디션 최악인 곰순이를 차에서 재워야 하는 상황에 춥기까지 하다면 선준과 내가 교대로 불침번 서며 차에서 자야했을테니 말이다. 아이들 다 재우고 새벽 1시쯤 한번 더 볼일을 보게 하고(물론 이번에도 설사), 새벽 4시쯤에 선준이 내려가 또 한번 산책+설사 시키는 것으로 무사히 아침을 맞았다.


좀처럼 호텔이라는 곳에 묵지 않는 짠돌이 우리 가족, 이왕 이렇게 된거 맛있는 아침이라도 먹자 하는 생각에 조식이 맛있다고 평가받는 중급호텔로 결정한 것인데, 금식에 들어간 곰순이를 생각하니 전국 8위에 랭킹됐다는 호텔 조식이 썩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결국 각종 신선한 횟감을 올린 덮밥을 3그릇 가득 먹었다는건 안비밀.  참치와 연어 말고는 생선회라고 쳐주지도 않는 민재 녀석의 투정을 끝으로 급조한 삿포로 1박을 마무리, 우리의 목적지인 히다카 마을로 고고!




히다카의 시그너쳐 풍경. 이거 보러 매년 이 고생 하면서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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