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원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는 부장님이 있다.
나쁜 사람은 아닌데 (늘 이게 문제다), 말이 많고 고집이 세고 눈치가 없다. 자신과 다른 의견이라도 내면, 그것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3시간 동안 쉬지도 않고 말한다. 20년이 넘는 자신의 경험을 무기로 늘어놓으면서. 그러니 아무도 그와 ‘대화’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네’하고 그 시간에 시키는 일을 군말 없이 해드리는 게 더 효율적이니까. 아무도 일을 ‘생각’하면서 하지 않았다. 개인의 생각은 3시간짜리 잔소리의 원료일 뿐이니까.
어설픈 독재국가는 모두 망해왔듯이 프로젝트는 처참히 실패했으며, 동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장님과 더 이상은 일을 못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팀이 와해되었다.
내 회사생활 중 가장 최악의 팀이었다.
부장님은 팀이 없어지고 나서 이곳저곳 전전하시다가 결국 어떤 설비의 관리자 역할을 맡으셨다. 조직관리 능력이 없다는 것은 증명되었으니, 설비나 관리하라는 처사였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최근 직속 후배가 처음으로 프로젝트 리더를 맡게 되었다. 문제는 부장님의 설비를 자주 사용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이야기의 시작점이다.
첫 리더의 무거운 책임감을 가진 후배와, 조언으로 희미한 존재감이나마 드러내고 싶어 하는 부장님은 물과 기름을 넘어 마치 미-중 관계 같았다. 후배는 처음에는 친절하게 대응했지만 점점 입을 다물었고, 부장님은 비워진 공백만큼 말이 더 많아졌다. 악순환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서로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는 데 있었다. 말없이 마음의 거리만 별과 별 사이의 거리처럼 제곱의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유독 미팅 분위기가 안 좋았던 날, 후배는 부장님을 피해 실험이 바쁘다며 자리를 떴고, 나와 부장님 둘만 남게되었다. 토크 폭격을 피해 나도 도망칠까? 했지만 왠지 이때 아니면 못할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려면 먼저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나는 얌전히 “시루야” 하는 말과 함께 토크에 몸을 맡겼다.
“옛날에는 말이야 밤새 실험하면서 겨우 양산조건을 찾아냈어”라는 낭만의 시절 이야기와, “대학생 때 써클에서 중국집을 갔는데 말이야-” 소소한 영웅담까지. 이미 30번은 넘게 들었고 레퍼토리까지 외울 지경이었다. 이쯤이면 이거 내가 말하지 않았나? 자각도 하실 법 한데 늘 처음 이야기하듯 풀어내시는 것이 신기하다.
그러다 부장님 마음속의 언어가 바닥난 듯 드디어 침묵이 찾아왔다.
바로 이때다. 지금을 위해 한 시간을 버텼다.
“후배 있잖아요. 그냥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라고, 뒤에서 지켜봐 주시는 건 어떨까요.
부장님도 과거의 실패들이 쌓여 지금이 되신 것처럼, 후배에게도 직접 실패해 보고 헤매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서요. “
바로 ”내가 그게 아니고-“ 라며 30분 잔소리 폭격이 날아올 줄 알았는데, 긴 침묵이 찾아왔다. 부장님은 허공을 바라보며 한동안 생각하시는 듯 싶었다.
“나도 알아. 나랑 이야기하고 후배가 어떤 표정인지.”
또다시 정적.
”그렇게 해 볼게. 무슨 말인지 알았어 “
그러고는 홀연히 자리를 떠나시는 게 아닌가.
세상에 정말로 나쁜 사람이 있는 걸까?
나는 그날 퇴근길에 의문이 들었다.
실패를 지켜봐 주고 기다려주고 지지해 주는 경험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은, 과연 그것을 남에게 줄 수 있을까.
사실은 서로가 받아본 만큼만 사랑을 줄 수 있어서, 우리는 쉽게 ‘저 사람은 왜 저러지?’ 라며 비난하지만, 만약 그들이 받아본 배려와 사랑이 너무 작아서, 우리가 원하는 만큼 해줄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이 애초에 없다면.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일까.
그렇다고 상대방의 나쁜 태도를 이해하자는 말은 아니다(그러면 나만 병난다). 그저 미워는 하돼, 때로는 그 사람 이면에 어떤 환경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결국 그 사람을 사랑하기는 불가능할 수는 있지만, 어느 시점에는 이해의 영역까지는 도달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