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좋아합니다
"야구, 좋아합니다."
드디어 야구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 프로 야구는 오랜 역사만큼 그들을 오래 좋아해 온 팬들이 넘친다. 중계 화면에서 빠지지 않는 밀저씨, 깃발 아저씨 등 각 구단이라면 알 만한 대표적이고 열성적인 팬이 넘치는 세상에서 '야구 팬'이라고 말하기는 왠지 자격이 부족한 듯 했다.
야구와의 인연은 성인이 되면서부터였다. 새내기 시절 가입한 동아리에서 단체로 야구 관람을 가게 되었다. TV를 돌리지 않던 아빠가 가끔 보던 길고 재미 없는 스포츠였던 야구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처음 갔던 야구장은 응원의 열기라면 빼놓을 수 없다는 롯데 자이언츠의 연고지 부산 사직야구장이었다. 지금은 더 부를 수 없는 롯데 응원가들과 주황색 비닐봉지와 함께 하는 응원 문화는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그때 야구장에 함께 처음 갔던 선배는 야구라는 스포츠에 완전히 빠지게 되었고 나도 경기를 기웃거리며 스코어를 몇 번씩 확인했다.
그후로 야구 티켓을 받거나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 야구장에 몇 번 가기는 했지만 소위 말하는 '열성적인 팬'이 되기에는 나를 가로막는 조건이 많았다. (1) 저작권 문제로 야구장 응원가가 반쯤 소멸 되었고 (2) 코로나라는 역병이 완전히 야구장 문화를 죽였으며 (3) 관심을 가지던 구단인 롯데의 성적이 그후로는 처참했다.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나는 대학교를 부산으로 왔을 뿐 다른 연고지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팀을 알아보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야구 팀은 신내림처럼 점지를 받는다던 말이 거짓이 아닌 듯 했다.
그러던 내게 기회가 찾아 왔다. 저작권 문제가 하나둘 해결되며 부산 갈매기가 컴백 했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도래 했으며 2023년 봄 무려 롯데가 9연승의 길을 가며 '기세'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공부에 한참 바쁜 시즌이었지만 정규 시즌 1위에 도착하는 순위표를 보는 순간 평일 오후와 주말 낮을 헌납하게 되었다. 간간이 중계를 보던 일을 제외하면 제대로 야구를 챙겨 보기 시작한 건 2023년이란 소리니, 내 야구팬 경력은 주변인에 비해 한참이나 낮은 수준이다. 그럼 야구에 빠지게 된 이후 나의 구단은 어떻게 됐는가.
또 한 번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
어림도 없이 7위입니다.
보다시피 초반 상승가도를 달리던 롯데는 결국 하반기 부침을 겪은 이후 정규 시즌 7위를 기록했다. 오랜 시간 우승하지 못했던 LG 트윈스가 코리아 시리즈 우승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에 비해 아쉬운 결과로 기대해 주십시오 세 번째 우승이라는 말을 기대하던 팬들이 다시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대로라면 성적이 처참해 야구를 좋아하지 못했던 나도 더 야구를 보지 않는 게 맞는 수순이었으나…….
이상하게도 달랐다.
야구를 보는 동안 느꼈던 재미가 나를 다시 야구장에 가게 만들고 야구 중계 앞에 앉혔다. 길고 지루하기만 했던 야구 경기는 어느새 열정과 낭만, 청춘의 스포츠로 내 일상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투수에게서 공이 던져지면 공 하나에 울고 공 하나에 웃는다. 카운트 하나하나에 연연하기 지치다가도 우리 팀의 승리로 돌아 오면 그 하루가 그렇게 기쁠 수 없다.
그래서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야구, 좋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