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는 마음

by 독자

해야 할 일은 분명한데
손이 잘 가지 않는 날이 있다.
피곤해서도 아니고,
하기 싫어서도 아닌데
이상하게 시작이 늦어지는 날.


그럴 때면
나는 나를 조금 못 믿게 된다.
왜 이렇게 게을러졌을까,
예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괜히 지난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미루는 마음에도 이유가 있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 것 같아서,
괜히 시작했다가 더 엉킬까 봐,
혹은 지금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싫어서.


우리는 종종
미루는 자신을 다그치지만
사실 그 안에는
꽤 솔직한 감정이 숨어 있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신호이거나,
잠시 숨을 고르고 싶다는 요청 같은 것.

그래서 요즘은
미루는 나를 바로 밀어붙이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왜 멈춰 있는지
조금 오래 바라본다.
답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
그 시간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니까.


이상하게도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완벽한 시작이 아니라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


오늘도 나는
해야 할 일 앞에서 잠시 멈췄다.
그렇다고 이 하루가
아무 의미 없어진 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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