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한 삶 Vs. 편안한 삶, 당신이라면?
"캐나다, 이민 오고 싶어요."
가끔 남편과 캐나다 이민을 꿈꿔보았다. 캐나다에 온 지 2개월 만에 나온 소리였다. 이 말을 들은 캐나다에 이민 온 한인 분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비나씨가 여름에 와서 그래. 겨울에 왔으면 우울하고 돌아가고 싶었을 걸?"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이 말이 사실이란 것을 겨울이 오고 나서야 알았다. 캐나다의 겨울은 혹독했고, 눈은 상상 초월로 많이 내렸고, 무엇보다 어둡고 참 길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끝나고 집에 오면 밤이 시작됐다. 여름에 아이들과 공원에서 저녁까지 뛰어놀던 게 마치 다른 나라였던 것처럼 캐나다의 겨울은 '캐나다 다운(?)' 겨울이었다.
캐나다의 여름-가을-겨울-봄 그리고 다시 여름. 4계절을 겪고 한국으로 돌아갈 날을 준비하는 요즘, 한국과 캐나다, 어디가 더 살기 좋은 나라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I love life in Canada."
캐나다의 삶이 너무 좋다고 말하면, 캐나다에 태어난 이민 2세 한인들은 꼭 나에게 묻는다.
"어떤 게 그렇게 좋나요? 한국이 더 좋지 않나요?"
한국인으로 캐나다에서 살아가는 한국계 캐나다인들은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나라에 태어나 살아가는 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한 듯 늘 한국은 어떤 나라냐고 물어본다.
"한국 너무 좋죠. 안전하고 깨끗하고 모든 게 빠르고..."
캐나다에 와서 가장 그리웠던 것이 3가지 있다. 반찬가게, 로켓배송, 그리고 급식이었다. 학교에서 퇴근하면서 저녁 메뉴가 고민될 때면 반찬가게에 들러 이것저것 담아와 밥만 차리면 되었던 삶이 얼마나 편리했는지. 장 볼 기운도 없고, 시간도 없는 일하는 엄마로서 로켓배송의 편리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그리운 것은 '급식'.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이 둘의 스낵 4개, 점심 2개를 싸는 일은 낯선 불편함이었다. 매일 따뜻한 5대 영양소가 있는 급식을 아이들이 무료로 먹을 수 있다는 믿음은 정말 값진 복지였다.
이런 편리함은 한국인의 완벽주의, 빠릿빠릿함, 근면성실한 면에서 오는 문화였다. 해외에 나와 느낀 것은 한국인만의 일머리, 센스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을 채용하면 어디서든 성실하고 일 머리가 있어 금방 금방 일처리를 해준다는 이미지가 있다.
한국인의 완벽주의는 우리를 성취하게 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을 갉아먹다 못해 '소진'해버리게 만든. 무엇 하나를 하더라도 기준은 높고, 빨리 해내고 싶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우리들.
80년대생 한국인으로서, 9등급제를 겪은 입시경험자로서, 내가 배운 것은 끝없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이었다. 옆자리 친구보다 더 해야 한다는 압박감,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 컷에 들어가기 위해 악착같이 노량진을 오고 가던 하루들. 취업과 결혼, 출산까지 마쳤지만 계속 다른 퀘스트를 깨야 하듯, 아이를 통해 그 미션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불안감까지 여전히 나를 압도한다.
비학군지에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늘 학군지에 가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들의 말을 들을 때면 불안해지기도 했다. "미안하지만 우린 학군지로 먼저 갈게요~ 그럼 이만~" 그렇게 떠나는 아이와 엄마들을 볼 때면 왠지 비학군지에 남아있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가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편리하지만 불안한 삶 Vs. 불편하지만 편안한 삶
캐나다에 살면 불편하지만 '편안'하다. 가끔 유튜브에서 '역이민'에 대한 콘텐츠나 어디에도 파라다이스는 없다는 이야기로 이민 가면 더 힘들다는 내용의 콘텐츠를 보게 된다. 그런데 현지에서 직접 만난 이민 1세대, 2세대, 3세대들을 직접 만나면 그들의 이민 선택에 끄덕이게 될 것이다. (잘 지내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굳이 SNS에 떠들 필요가 없다.)
"불편하긴 해도 여긴 숨 쉬고 편안하게 살 수 있어."
이곳에 사는 이민자들은 방학 때 한국에 가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그런데 한국은 '여행지'이지 '살 곳'은 아니라고 말한다. 가족을 꾸릴만한 곳은 아니라고. 20대가 살기 좋은 나라로 한국이 뽑혔다. 안전하게 밤 문화까지 즐길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이 말은 무엇일까. 자극적인 일상과는 거리가 먼, 아이가 있는 '부모'와 삶을 조용히 마무리할 준비를 하는 '노인들'에게 우리나라는 적합한 곳은 아니란 뜻이 아닐까.
캐나다에 있다 보면 한참을 기다리는 일이 많다. 관공서에 가서도 서류 하나 떼는데 정말 주토피아에서 나무늘보가 도장 찍는 것처럼 딱 그 모양이다. 한국의 공무원처럼 열정 있고 빠른 사람들이 있을까? 하지만 이곳에선 기다리는 이들이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는다. 그냥 기다림에 늘 익숙해 보인다. 오히려 한참을 기다려서 직원을 만나도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도 스몰톡을 나눈다. "오늘 내가 어딜 가는데~" 이 사람들의 느긋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캐나다에서 반찬가게가 없고 로켓 배송이 없어도 워킹맘, 워킹대디가 아이를 세명, 네 명도 키울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저녁이 있는 삶 때문이 아닐까. 캐나다는 부모들이 대부분 5시면 퇴근을 해서 집에 와 있다. 둘 중 하나라도 말이다.
한국에서 남편은 복지가 좋은 회사에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요일에 출근을 하고, 일이 많을 때는 밤 10시에도 퇴근했다. 그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그랬다. 다 그렇게 사는 거니까. 캐나다 아빠들은 어떻게 일찍 아이의 축구, 하키를 따라다니는 걸까? 신기했다.
캐나다인들은 가족을 위해 일을 한다는 마인드가 깔려있다. 조직과 집단을 위해 '나'와 가족을 희생하는 것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감이라고 부르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간은 책임감 하나로 삶을 살아가기에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다. 우리는 아이의 웃음소리, 아이를 안을 때의 온기, 느리지만 직접 차려보는 밥상에 더 삶의 이유를 찾는 감성적인 동물이다.
내가 캐나다에서의 삶을 부러워하게 된 이유는, 어쩌면 우리 모두 불완전하다는 것을 서로가 이해해 주는 문화 때문이다. 효율적일 수 없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특성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느려도 괜찮아. 불편해도 괜찮아.
우리 모두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