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이시옷”의 행복배달부 사비노입니다. 저는 외로움을 연결하는 우리 “사이시옷”이란 단체를 여러분에게 소개할까 합니다. 국어국문학자료사전에 따르면 사이시옷은 두 단어 또는 형태소가 결합하여 만든 복합명사(합성명사)의 두 요소 사이에 삽입되는 시옷을 말합니다. 통사적(사고나 감정을 말로 표현할 때 완결된 내용을 나타내는 언어 단위와 관련된 것)인 구성이나 의미해석이 자연스럽지 않은 경우에 사이시옷이 쓰인다고 하는데 사이시옷이 단순히 통사적인 의미해석으로서는 얻어지기 어려운 특수한 의미의 표현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외로움과 “사이시옷”도 딱 그런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사이시옷”은 단순히 통사적인 의미해석이 어려운 우리 사회의 외로움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으로 딱 정의하기 어려운 다양한 외로움을 연결하려 노력하는 단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편하실 듯합니다. 그렇다면 외로움이란 무엇인지 궁금하실텐데요. 외로움은 다음과 같습니다.
외로움의 정의
외로움(Loneliness)은 고립(isolation)이 아닙니다. 그리고 고독(solitude)도 아닙니다. 영어단어만 보아도 세 개의 단어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외로움은 일반적으로 고통, 공허함, 비어있음으로 표현됩니다. 외로움은 사회적 관계에서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정서적 인식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외로움은 관계의 양질과 무관하게 주관적인 정서에 가깝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외로움은 긴급한(Pressing) 세계 보건 위협으로 규정했습니다. “외로움은 담배 15개비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립(isolation)은 개인, 집단 공동체 등 다양한 수준에서 다른 사람과의 사회적 관계의 양과 질이 부족한 상황을 말합니다. 사회적 연결망의 크기 또는 접촉 빈도 등 타인으로부터의 고립과 물리적으로 분리된 정도로 객관적, 주관적 차원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외로움은 감정 고립은 상황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고독(solitude)은 외로움과 또 다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고독은 세상과 떨어져서 홀로 있는 것이고 외로움은 홀로 되어 마음이 쓸쓸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철학자 폴 틸리히는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은 외로움이고,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은 고독이라고 정의했다. 외로움은 부정적인 감정에 가깝지만 고독은 긍정적인 감정에 가깝습니다. 외로움은 비워짐에 가깝고 고독은 채워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해리 스택 설리번은 '관계로부터 격리된 부정적 혼자됨'을 외로움이라고 말했으며, '스스로 선택해 나다움을 찾는 긍정적 혼자됨'을 고독'으로 구분했습니다.
“사이시옷”은 사회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뜻있는 5명의 혁신가들이 모여 만든 외로움과 관련된 사회단체입니다. “사이시옷‘의 멤버들은 외로움이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질병이자 사회적인 문제라는 인식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외로움의 원인을 개인의 잘못으로만 생각한다면 더 깊은 외로움으로 또 고립으로 나아가는 이유가 될지도 모릅니다. 외로움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는 전제로 외로움을 대한다면 얼마든지 외로움을 현명하게 이겨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 외로움을 대화와 연결이라는 사회적 처방으로 개선시키고 예방하려고 합니다. “사이시옷”은 이 사회의 외로움 문제로 인해 소중한 시간을 소비하는 외로운 사람들에게 대화와 연결을 통해 웃음과 행복을 나누어 주려고 합니다.
사이시옷 로고
“사이시옷”의 핵심 가치는 다음의 3가지입니다. 따뜻함, 연결, 그리고 대화입니다. 우리는 많은 외로움(다양한 외로움, 외로움 당사자, 국내 외로움 관련 기관의 종사자, 해외 외로운 관련 기관, 외로움 관련 종사자 등)들을 만나고 경험하면서 외로움을 줄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라고 정의했습니다. 첫 번째는 따뜻함입니다. “사이시옷” 로고의 색깔처럼 밝고 따뜻함이 필요합니다. 외로움은 차갑고 어둡습니다. 차갑게 얼어붙고 있는 외로움을 녹이려면 따뜻함이 필요합니다. 따뜻한 공간에서 따뜻한 환영이 이루어진다면 외로움이 어는 순간 잊히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연결입니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에서 ‘외로움’을 애정, 동반자, 친밀감을 상실한 느낌으로 정의한 전통적 정의 대신 새로운 정의를 제시합니다. 외로움은 우리가 친밀하게 느껴야 하는 사람들과의 단절된 느낌이며 자신과의 단절된 느낌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허츠는 사회와 가족이라는 맥락에서 제대로 지지받지 못하는 느낌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배재된 느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세계화, 도시화, 불평등의 심화, 기술 발달로 인한 혼란, 그리고 이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불러온 변화에 의해 더 심한, 새로운 형태의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그녀는 이야기합니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는 관심을 빼앗아 가고 좋아요, 팔로우 등이 관계와 애정의 표현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도서관, 공원, 놀이터 등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교류하고 유대를 맺을 수 있는 공동체 기반 시설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네트워크는 크게 강한 연결(Strong Tie)과 약한 연결(Weak Tie)로 나뉜다고 합니다. 가족, 직장동료, 친한친구 등 강도의 세기보다는 빈번성이 높은 좀 더 양질의 관계가 강한 연결이며, 반대로 아주 친밀한 관계는 아니지만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지내는 사람들로 일상에서 가끔 혹은 우연히 접촉하게 되는, 넓은 의미에서 인맥으로 해석되는 관계가 약한 연결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그라노베터는 관계의 밀도가 낮을수록 정보의 밀도는 높아진다는 역설을 제시하면서 약한 연결은 관계유지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아도 우리의 삶을 바꿀 만한 실용적이 정보와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메트칼프의 법칙에 따르면 네트워크의 가치는 사용자의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인데요. 약한 연결, 우연한 만남, 사람과의 교류가 증가하면 변화의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네트워크의 가치도 훨씬 더 의미 있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이시옷”은 사람을 연결하고 커뮤니티를 연결하며 공간을 연결합니다. 영국의 사례들을 볼때 낯선이와의 이러한 연결은 외로움을 줄이는데 정말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가치는 대화입니다. 대화 역시 그렇습니다. 실제로 외로움에 도움이 되는 대화는 낯선 이와의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익숙한 사람에게 나의 치부를 드러내기는 힘이 듭니다. 반면 낯선 이와의 대화는 부담이 없기에 더 편하고 더 깊은 내용을 담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만나지 않는다는 안전함이 그들이 더욱 더 쉽게 외로움을이야기할 수 있도록 이끕니다. 그러기에 외로움을 이야기하기에는 낯선 이와의 대화가 더욱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사이시옷”은 따뜻함. 연결, 대화 이 세가지의 핵심 가치를 가지고 오늘도 외로움 연결을 꿈꿉니다. 우리사회의 외로움은 다양합니다. 보편적이라고도 할수 있지요. 저희는 외로움을 계속 찾고 만나고 연구하려합니다. 더많은 외로움을 이해하고 또 줄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마음에서 말입니다. 이 사회의 외로움과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동거를 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앞으로 “사이시옷”의 따뜻한 대화와 연결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사이시옷의 고민과 외로움 해결의 과정을 앞으로 종종 알려드릴게요. 첫번째 이야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ps. “사이시옷”의 캠페인입니다.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라는인식의 개선을 위한 캠페인닙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