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나는 상당히 말괄량이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시골에서 논에 물을 흘러내는 쇳덩이 위를 아이들과 뛰어다니기 놀이를 하다 그대로 도랑에 퐁 빠졌을 만큼 활발해 엄마는 늘 나 때문에 많이 놀라시곤 했다. 심지어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자전거를 타고 싶어 하고,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다니기까지 했으니 지금 와 생각해도 참 대단했다고 생각이 든다.
그렇게 시골 생활을 하다 내 학교 문제로 이사를 왔고 그때부터는 더 위험한 행동을 했다. 신호등이 뭔지 몰랐던 나는 아무렇지 않게 차가 다니는 도로를 건넜고, 킥보드를 타고 다니며 아이들과 어울렸다. 혼자서 가게에 가 물건을 사고 종종 골목을 뛰어다니니 다리와 몸에는 멍이 자잘하게 나는 게 일상이었을 정도로 난 어쩌면 선머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사를 가고, 차츰차츰 커 가며 나는 점점 고립돼 갔다. 엄마는 주변에 차가 많고 혼자 다니기 위험하다면서 바깥에 나가는 걸 제한하셨다. 내가 이사한 곳들이 보통 마트나 상가에 가려면 도로를 지나 멀리 나가야 했던 탓이었다. 그래서 나는 밤에 엄마가 일을 나가면 혼자 집을 지켰다.
아빠가 계실 때도 있었지만, 아빠와는 말이 통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내가 만화를 보는 걸 싫어하는 아빠 때문에 좋아하는 애니는 꿈도 못 꿨다. 보려고 해도 몰래 이어폰을 끼고 보던 애니를 보며 시간을 때우거나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지, 로맨스물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자유롭던 나에게 집에만 있는 건 너무나 갑갑하고 답답한 일이었다. 마음대로 다니고 싶고, 혼자 즐기고 싶은데 그걸 못한다는 게 너무나 서럽고 서글펐다.
그때부터였다. 밝던 내 성격에 우울감이 찾아온 것은. 늘 부모님의 싸움을 보고 도망치고 싶었고, 혼자 집에 남았을 땐 내 친구가 유일한 컴퓨터였음을 늘 실감했다. 컴퓨터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지내는 게 내 세상의 전부였고 그래서 나는 좁은 틀에 갇혀 지내는 생활을 해 왔다. 다른 친구들은 친구들 집에 놀러도 가고 했으나 우리 집 형편이 그리 좋지 못해 나는 누군가를 초대할 수도 내가 갈 친구 집도 마땅치 않았다.
그때의 나는 나밖에 몰라서 주변에 친한 친구가 없었다. 그냥 인사만 나누고, 잡담을 하는 친구는 있어도 그중 마음이 맞고 서로를 이해하는 진정한 친구는 없었기에 더 외롭고 공허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노래방도 가고 싶고, 뭔가를 같이 했다는 추억도 만들고 싶었지만 내겐 그런 것들이 그 당시엔 사치이자 부러운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친구들에게 유독 잘 해주려 하고 유독 도우려는 경향이 강하다. 무리한 건 못 들어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돕고 친구라고 생각한 사람이 나를 떠나면 극도로 불안해한다.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아니면 내가 질렸나? 이 생각이 꼬리를 물며 나를 괴롭게 만든다.
하지만, 최근 와 깨달았다. 진정한 친구는 많이 없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진정한 친구는 많지 않음을 알았다.
그러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며 내가 너무 관계에 집착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은 떠나간 친구들에게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너무 많은 톡이나 메시지를 보내지도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둘뿐이다.
언젠가 다시 그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에 그저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남아 있는 인연에 감사하고, 소중히 하려 한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외로운 나의 시절을 채워주는 빛과 같은 사람들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그 사람들만으로도 나는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
때론 아프고 때로는 그 사람들에 의해 괴로울 때도 있지만, 그것 역시 더 단단해지는 과정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나는 많이 단단해졌음을 느낀다.
언젠가 마음이 맞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 때는 더 소중히 대해주고 싶다. 그래서 오랫동안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함께 이어 갈 수 있는 그런 친구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