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통장이 텅장이 되기까지

시각장애인의 ADHD 일기

by 삐약이

나는 어릴 때부터 돈을 받으면 꼭 문제가 벌어졌다. 바로 텅장이 돼 버리는 일. 그게 현재까지 나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누구나 쓸 수 있는 돈은 정해져 있다. 그 안에서 쓸 것과 안 쓸 것을 정해놓고 쓰는 게 저축이다. 그러나 나는 그게 되지 않았다. 월급을 받으면 금방 텅장이 돼 버리는 탓에 늘 엄마와 다툼이 벌어지곤 했다.


"너 그 큰 돈을 벌써 다 썼다는 게 말이 돼?"


"나도 쓸 데가 다 있었어. 그걸 왜 몰라?"


"쓸 데가 있었다고 해도 그렇지! 너무 많이 썼잖아!"


"다음부터는 안 그런다고!"


"그 말 몇 번째 하는 건 줄은 알아? 이제는 지겹다!"


이런 대화가 월급을 받은 후 몇 번이고 벌어지는 일상이었다. 때로는 엄마에게 돈을 빌려서 쓴 적도 있었고, 때로는 돈이 없어 한숨만 쉰 적도 빈번 했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늘 답답한 나날만 보내던 중 내가 ADHD임을 알게 되면서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ADHD의 경우 보상 심리를 찾기 위해 돈을 무분별하게 쓰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거기다 불안감이 심한 경우에도 돈을 써서 물건을 사거나 하는 행위가 늘어난다는 걸 상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불안감이 높아졌을 때 왜 돈을 쓰냐고?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안감이 올라오기에 돈을 쓰는 행위로 잠시 불안을 누르는 거라고 상담 선생님은 설명 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있는 물건을 또 사거나 여러 앱들을 구독하며 돈을 낭비 했다. 이게 어떻게 낭비가 되냐고? 여러분은 구독료로 30만 원 넘게 써 본 경험이 있는가? 아니면 블루투스 이어폰을 40개 넘게 사 본 경험이 있는가?


나는 경험이 있다. AI 어플도 10개 넘게 구독 했고, 노트 어플도 10개 넘게 구독 했다. 음악 어플도 10개 넘게 구독해 썼고 책 읽는 어플도 10개 넘게 구독 했지만 정작 사용하는 건 거의 없어 늘 돈만 빠져 나갔다. 그래서 통계적으로 100만 원 넘는 돈들이 내 통장에서 빠져 나갔으며 거기에 휴대폰 요금과 인터넷 요금까지 합해지니 금세 통장이 텅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AI 어플도 한 개나 두 개 정도면 충분 했을 텠데 그러지 못했다. 그걸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고, 나만 뒤쳐지는 것 같아 구독을 하고 후회하고를 반복 했다. 지금은 어느정도 안 쓰는 어플들을 정리하고 이어폰도 나눔을 해서 많이 줄었으나 아직도 많다. 어플들도 정리 했으나 여전히 많음을 부정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확실히 예전보다 준 건 사실이다.


내 행동이 ADHD와 불안이 복합적으로 있어 나타난 거라는 걸 안 후 상담사 선생님과 상담 시간에 어플 구독을 정리하고 삭제 하는 걸 했다. 그때 나는 정말 괴로웠다. 내 안에서 중요한 걸 빼앗기는 느낌과 싸우며 필사적으로 구독을 하나하나 줄여 나갔다. 처음에는 구독을 계속 유지하려 고집을 부렸다. 그러나 상담사 선생님은 그런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시면서 서서히 하나씩 구독을 끊도록 도와주셨다. 때로는 단호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그렇게 내가 하나하나 쓸데 없는 것들을 버릴 수 있게 도와주셨다. 그래서 현재의 내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다. 상담사 선생님과의 꾸준한 상담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게 됐다. 그래서 나는 늘 선생님께 감사한다.


현재 나는 여전히 텅장이 될 때가 많다. 그러나 내 스스로 노력한 결과 어느정도 돈 쓰는데 틀이 잡히고 나름 텅장이 되는 게 약간, 아주 사알짝 줄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내가 텅장이 되지 않게 하는 방법을 몇 가지 알려주자면 다음과 같다.




1. 한 번 더 생각하기




내가 어떤 물건이 사고 싶어 검색을 하고 있다고 할 때 유혹은 늘 나를 괴롭힌다. 돈이 있으니 사도 되겠지 하는 마음과 그러면 안 된다는 마음이 부딪힌다.


그러면 나는 단호히 마음 속으로 '그만!' 이라고 외친 후 단호히 보던 쇼핑 어플을 닫아 버리고 휴대폰을 멀리 던져 놓는다. 그렇게 하고 얼마 동안 휴대폰을 보지 않거나 쇼핑 어플을 보지 않으면 마음이 차분 해지며 그 물건에 대한 마음이 가라 앉는다.


또 이런 방법도 있다. 정말로 사고 싶은 물건이라면 그 물건을 장부구니에 담아 놓고 하루 동안 참는다. 그리고 다음 날 물건을 보면 왜 사고 싶었나 생각 될 정도로 마음이 식게 된다.




2. 뭔가를 구독할 때 현재 있는 구독과 비교하기




앞에서 말했듯 나는 구독료로 30만 원 넘게 썼을 만큼 낭비가 심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이겨내고 끊을 수 있었을까? 어려울 것 같지만, 쉬운 답이 있는데 '이 물건을 꼭 사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구독을 하고 싶다면 일주일 체험이나 3일 체험을 해보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그렇게 지금 쓰는 어플과 어떤 점이 다르고 단점과 장점을 알아 가는 것이다.


만약 그냥 무턱대고 구독을 하고 싶다면 AI에게 물어보는 걸 권한다. 내가 AJHD임을 밝히고 현재 구독하는 것들을 적은 후 구독하고 싶은 어플도 적는다. 그러면 AI는 그걸 분석해 적절한 답을 준다. 그 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 답이 옳다면 답대로 하면 된다.


나는 구독을 한 후 AI에게 물어 봐서 답을 찾는 걸 했는데, 내게 맞는 답이 나오고 그 답을 따라 했더니 구독료가 줄어 들 수 있었다. 그리고 구독을 끊은 후 구독료를 환불 받는 방법을 알아내 환불을 받은 것도 상당히 많아 돈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 스스로 구독료를 줄이고, 구독 할 것들만 찾아서 지금도 구독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잘 안 될 때가 있다. 무조건 그 구독을 하고 싶고 안 하면 불안감이 찾아와 내 마음을 흔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단호히 어플을 지워 버린다. 그러면 더 이상 볼 수 없으니까 더 이상 불안감도 아쉬움도 생기지 않아서 좋다.




3. 현재까지 얼마나 썼는지 살펴보기




현재까지 내가 본 걸 아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나는 토스나 카카오페이에서 돈을 얼마나 썼는지 살피는 일이 많다. 그러면 그곳에서 내가 얼마나 썼는지 알고 내가 쓰려고 했던 것보다 많을 경우 반성하며 다음 달에는 더 아껴야지 다짐 한다.


그럼에도 계획에 없는 돈이나 갑자기 충동적으로 사 버리는 물건, 배달 음식 등 여러 가지로 돈은 쏙쏙 내 통장을 빠져 나가 사라진다.


그럴 때는 어디에 돈을 많이 썼는지 살피고, 그 부분에 대해 과연 얼마나 써야 할지 또 너무 많이 썼을 때의 부작용 등을 검토 해 본다. 그래서 다음 월급 땐 조금 더 아끼자는 생각으로 조심 한다.


다행히 토스나 카카오페이는 시각장애인이 쓰기 접근성이 좋아서 돈을 얼마 썼는지와 그걸 통 틀어 볼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 냉정하게 나오는 결과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만큼 내 소비량을 알 수 있어 좋은 면도 있다.




이렇게 내가 통장이 텅장이 되지 않게 하는 법을 적어 봤다. 나처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른 방법을 쓰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 방법이 다 옳은 게 아니고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나는 그걸 또 참고해 내 통장을 지키면 된다.


ADHD는 통장과의 싸움을 계속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늘 텅장이 되는 통장에 아파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언제까지 텅장이 되는 걸 지켜 볼 수는 없다. 그래서 ADHD를 지닌 사람들은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그래야 통장을 지킬 수 있으니까.


이번 달에도 월급이 들어 왔다. 그만큼 나에게 충동 구매의 시기가 다가 온 셈이다. 그러면 무조건 충동에 내 통장을 맡겨야 할까? 아니, 그렇지 않다. 늘 마음을 새롭게 다잡으며 나를 향해 말을 걸어야 한다.


"삐약아! 이게 너한테 꼭 필요한 건지 다시 생각해 봐!"


그런식으로 말을 걸면서 나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 한다. 이제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이다. 이번 달에는 반드시 통장이 텅장이 되지 않게 힘 내보자는 다짐 해 본다. 아자 아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꿀잠을 자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