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지만 조용한 체코인의 연말연시
지구의 공전 주기가
365일에 가깝다는 건 (<—365.2422일)
과학적 사실이고,
그래서 그 주기를 기준으로
자연의 변화가 반복된다는 건
우리가 경험치로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 자체에는 눈금이 없기 때문에,
겨울의 시작도 아니고 봄의 시작도 아닌,
낮이 가장 긴 날도 아니고 가장 짧은 날도 아닌,
겨울 중간 어정쩡한 날일뿐인,
그냥 “1월 1일”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새해의 시작점”이
사실 어떤 고대의 권력자가
그냥 “여기서부터 시작”이라고 금을 그은 걸
아무 생각 없이 수천 년 후 전인류가 따를 뿐인,
그냥 보통의 겨울날임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도 연말연시가 되면
낡은 해가 끝나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느낌이고,
뭔가 기분이 싱숭생숭해진다.
사실 최근에는 많이 조용한 분위기가 되었고,
특히 팬데믹이 몰아친 작년과 올해는
연말연시 분위기가 거의 안 나지만,
그래도 뭔가 마음은 고요하지만은 않다.
설레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왠지 시간이 이 금을 건너가기 전에
아는 사람들도 괜히 한 번 만나야 할 것 같고.
한국인들은 새해를 기점으로
단체로 한 살씩을 더 먹으니,
그래서 또 더 특별한 것 같다.
나는 그런 특별한 연말연시를,
그 특별한 새해를
더욱 특별하게
외국에서 보낸 적이 몇 번 있다.
그것도 매우 특별한 나라들에서.
러시아어 전공자로서
러시아에서 새해 첫 날을 맞은 적이 몇 번 있고,
러시아에 있을 때
이집트로 여행 가서 새해를 맞은 적도 한 번 있고,
예전에 친구들과 겨울에 호주 가서 맞은 적도 있다.
남반구에 있는 호주의 크리스마스는
반팔, 반바지를 입고,
울창한 초록 나뭇잎 밑에서
“한여름에 맞는 크리스마스”라는 게 특별했지만,
친구들이랑 갔던 곳이 시드니가 아니라 그랬는지,
거리는 한국보다 덜 번쩍번쩍하고,
한국보다 덜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그래도 길에서 만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미소 지으며 건네는 새해 인사,
그리고 우리 입에서 자동으로 뒤이어 나오는
새해 인사와 미소 답례는
우리 안의 담을 허물면서
마음을 따뜻하고 들썩이게 하고,
새해를 더 특별하고 행복하게 했다.
그래서 내 기억 속의 그 거리들은 다소 고요했지만,
사람들은 긍정적 에너지를 강하게 발산했었다.
사실 이집트는 러시아인들이 좋아하는 여행지라
수요가 많기 때문에
그리고 한국에서보다는 더 가까워서
러시아엔 비교적 저렴한 이집트 여행상품이 많다.
그래서 꽤 많은 러시아 중장기 체류 한국인이
러시아에서 이집트 여행을 하는데,
나도 뒤늦게 그 “대세”에 편승했고,
귀국하기 한두 달 전 시간을 잡게 되어
어쩌다보니 연말연시에 가게 됐다.
그런데 이슬람 국가라서 그런지,
이집트의 연말연시는
거리건
사람들이건
번쩍번쩍하지도, 시끌벅적하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12월 31일에서 1월 1일 넘어가는 그 시점,
같이 간 러시아인들이 호텔에서
시끌벅적하게 춤추고 노래 부르고 마시던,
이집트까지 안 가도 경험할 수 있었을 그 풍경이
내가 기억하는
이집트의 가장 화려한 연말연시 행사였다.
한국인은 평생에 한번 가볼까 말까 하는
매혹적인 건축과 자연으로 가득한
이집트라는 공간 자체가 워낙 특별해서,
어차피 매년 반복되는
연말연시라는 나름 특별한 시간은
그 마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내 기억 속
“이집트에서의 연말연시”에는
그냥
“이집트”만 남아 있다.
러시아인들은 겉은 차가워 보이지만,
속이 활활 타오르는 사람들이고,
한국인만큼이나
노는 것에 정말 진심인 사람들이라,
그리고 10월부터 4월까지 지루하게 계속되는
모스크바, 페테르부르크의 긴 겨울에서
유일한 명절과 공휴일이
1월 1일부터
1월 7일 러시아 크리스마스까지 계속되는
긴 새해 연휴이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맞은 새해는
내가 경험한 모든 새해 중에서
거리건 사람이건
가장 시끌벅적하고 화려했다.
거리는
뾰족뾰족하지만 순해보이는 침엽이 실하게 달린
10m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진짜” 전나무 위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번쩍이고,
밤새도록 여기저기에서
개인들이 사제 불꽃놀이 폭죽을 터트려서,
하늘은 계속
번쩍번쩍
펑펑
잠들 줄을 모르고,
평소엔 그렇게 무표정한 사람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고,
그렇게 무뚝뚝하던 대도시 깍쟁이들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새해 인사하고 사진 찍고 덕담하고,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그 몇 시간 동안
도심을 가득 채운 즐거움과 행복으로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경험하지 못한
정말 따뜻한 도시가 된다.
그밖에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체코도
겨울방학 중인 1월에 방문해서
거리는 아직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번쩍였지만,
러시아에서 스웨덴에 놀러 갔을 때도
12월인가 1월이어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서 있는 걸 보긴 했지만,
1월 1일이라는 그 특별한 날을 경험하지 못해,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스웨덴의
연말연시가 정확히 어떤 분위기인지는 잘 모른다.
그런데 2019년 12월에
체코 프라하에 다시 가면서
프라하의 연말연시를 경험하게 되었다.
2012년에 체코어 연수와 자료 수집을 하며
5-6주간 체류하기 위해
프라하에 도착한 건
1월 10일쯤이었다.
그래서 새해 첫날을 못 봤을 뿐 아니라,
이미 크리스마스 마켓은 다 철수해서 없었고,
아직 철거되지 않은 크리스마스 가로등만
도시 중심가 스타레 므네스토 거리 위에
드문드문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프라하에 갔을 때는
2019년 12월 중순이었다.
2019-2020년 겨울에 프라하에 간 건,
다른 포스트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그다음 해 만료될, 소멸 임박 마일리지로
마침 비수기 유럽 왕복 항공 티켓을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겨울방학 2달을 프라하에서 보내기 위해
학기가 끝나자마자,
항공사 비수기 끝자락인
2019년 12월 19일 프라하로 출발했다.
그냥 나는 비수기에 맞춘 건데,
그렇게 프라하에서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서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프라하의 크리스마스”,
“프라하에서 맞는 새해 첫날”
그냥 듣기만 해도 설레지 않는가?
근데 아직 “팬데믹”이라는 단어조차 몰랐던
그 시점에
무슨 이유인지
프라하는 좀 조용한 느낌이었다.
러시아를 생각하고
시끌벅적함과 화려함의 기대치를
너무 높게 가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블타바 강가에 짙게 드리운
안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구시가엔 여기저기
화려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서 있었는데,
예전에 러시아 체류 중에 갔었던
스웨덴 스톡홀름의 크리스마스 마켓들보다
훨씬 크고 화려해서,
그리고 사람들도 많고 떠들썩해서
비로소 크리스마스의 설렘이
마음을 들썩이게 했다.
크리스마스 전 마지막 일요일엔
로레타 성당에서 미사를 봤는데,
미사 자체도 좋고,
미사 후 있던 그 특별 콘서트도 좋아서,
뭔가 영적으로도 고양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직 체코어 연수 코스도 시작되지 않고,
도서관도 크리스마스와 새해 연휴 때문에
문을 안 열어서
달리 마땅히 할 게 많지 않았고,
그래서 12월 20일부터 12월 25일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계속 크리스마스 마켓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보니,
그게 예쁜 것도, 신기한 것도
이제 잘 모르겠는 무덤덤 상태가 되어갔다.
이방인이긴 하지만
그냥 보통의 관광객은 아니었던 나는
딱히 거기서 뭔가 쇼핑할 것도 없었고,
먹거리도 예전에 먹어본 것들이어서,
굳이 그 비싼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구매할 물건도 딱히 없었다.
그래서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프라하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렘이 좀 식었는데,
그래도 크리스마스 날은
뭔가 좀 더 특별하겠지 싶은 마음으로
검색을 하다가
크리스마스이브 9시에
구시가 광장에서 미사가 있다는 글을 읽고
시간 맞춰 갔다.
9시 노천 콘서트를 하긴 했지만
미사는 없었다.
내가 잘못 읽었거나
정보가 잘못되었나 보다.
그냥 밤 12시에
근처 성당에서 하는 미사를 가야겠다 하고
프라하 시내를 걸었는데,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춥고,
카페도 많이 문을 닫아
딱히 오래 들어가 있을 데도 없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일주일 후 12월 31일 저녁에는
송년미사를 보러 갔다.
관광지 성당도 아니고,
현지인이 다니는 큰 성당에 갔는데,
그해 마지막 미사인데도 신자들이 많지 않았다.
하긴,
오랫동안 그리스도교의 영향 하에 있던
유럽 국가치고
현재 체코는 그리스도교도가 많지 않다.
체코인은 대다수가
무신론자라든가, 종교가 없다고 답한다고 한다.
20세기 똑같이
종교를 부정한 공산주의 체제를 겪었어도,
옆 나라 폴란드는
가톨릭 신자가 90% 이상이고,
공산주의 종주국(?) 러시아에도
러시아 정교 신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70% 정도는 된다.
그래서 체코인들의 종교적 무관심이
공산주의 경험 때문만은 아닌 것 같고,
수세기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
구교와 신교 사이의 종교 대립과 전쟁을 겪으면서
종교 자체에 대한 염증이 심해진 것 같다.
지금 자료를 찾아보니,
체코인의 35%는 종교가 없다고 했고,
45%는 종교 문항에 아예 응답하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높은 응답 비중을 차지한 종교가
가톨릭인데,
그 비중이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10%라면
한국의 가톨릭 신자 비중이랑 비슷하고,
팬데믹 전 한국 성당들에서는 보통
송년미사가 신자들로 가득 미어졌다.
아무튼 그렇게 예상과 달리
성당에서는 성스러운 연말연시의 은총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세속적인 연말연시를 경험하려
프라하 시내로 갔다.
내가 상상한 풍경은
거리거리가 밤새도록 사람들로 넘쳐나고,
여기저기서 특별한 행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근데 생각보다 거리에 사람들이 없고,
행사도 거의 없다.
구시가에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은
밤늦게까지 하는데,
그 밖의 다른 상점들은 문도 일찍 닫았다.
그렇다고 어둡거나 한적한 건 아니었지만,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만 많고,
현지인은 생각보다 많이 안 보였다.
술집이나 나이트클럽에 갔으면
떠들썩했을지도 모르겠다.
지나가는 낯선 이와
Šťastný nový rok (슈탸스트니 노비 록)이라든가
Happy New Year이라는
새해 인사를 딱히 주고 받지도 않는다.
밤에 불꽃놀이를 하고,
사제 폭죽도 여기저기에서 많이 터트리는데,
제대로 터지지 않은 채
피시식 그냥 맥없이 떨어져 내리거나,
별로 높이 오르지 못한 채 금세 사라지는
불발탄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체코의 새해 풍습에 대한 인터넷 글들을 읽어보면
새해가 시작되는 자정에
화려한 불꽃놀이를 하고,
사제 폭죽도 많이 터트리는 것이 특징적이라던데,
그것도 러시아 모스크바만큼은 아니다.
모스크바 사제 폭죽이
터트리는 사람도 더 많고,
불발탄도 더 적었던 것 같고,
프라하에서는 그냥 그 자정 무렵과
도시 중심부에
불꽃놀이와 사제 폭죽이 몰려있다면,
모스크바에선 밤새도록
그리고 변두리 주택가에서도
폭죽이 팡팡 터진다는 면에서,
프라하의 신년 폭죽 파티는
모스크바보다 스케일이 크지 않았다.
그래서 왠지 마음은 아쉬운데,
뭐 달리 할 일이 없어,
그냥 트램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크리스마스 전야에
프라하 시내가 생각보다 조용한 것 같아서
무언가 내가 중요한 정보를 놓치고 있었나 싶어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체코인들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집에서 가족과 보내는 걸 선호한단다.
프라하는 재미있는 놀 거리가 많고,
유흥을 즐길 여지가 많은
"좀 노는" 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 특히 여름에는
유럽 바깥뿐 아니라 유럽 내에서도
프라하로 많이 놀러 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건 다 관광 오는 이방인용이었는지,
생각보다 체코인들은 가정적이었던 거다.
그래서 관광객용 "크리스마스 마켓"에만
관광객들이 가득하고,
다른 곳에는 밖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나 보다.
새해 연휴 동안
체코의 도시인들은 가족들과 도시 외곽으로 나가서
거기에서 한적하게 보내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또 프라하 시내가
생각보다 조용했나 보다.
체코 크리스마스(Vánoce) 전날은
가족들이 모여
저녁에 잉어 커틀릿을 비롯한
크리스마스 특별 요리를 먹는데,
재미있는 건
그 잉어를 좀 일찍 사 와서
며칠간 욕조에 넣어 기르다가(?)
크리스마스이브에 튀겨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체코 어린이들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 클로스로부터 선물을 받지 않고,
Ježíšek (예쥐섹),
즉 아기 예수에게서 선물을 받는다고 한다.
저녁 식사 중 어느 순간
식탁 밖에서 종이 울리고
나가보면 선물이 와 있는 식이라니,
선물한 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존재는 느낄 수 있는 거다.
그리고 체코에서는 착한 일, 나쁜 일에 상관없이,
모든 어린이들이 다 선물을 받는단다.
이방인인 나한테는
프라하의 크리스마스이브와 새해 전야가
큰 차이가 없었는데,
원래 체코에서 새해 전야는
크리스마스에 비해 좀 덜 가족적이란다.
가족끼리 보내는 경우가 많지만,
친구들끼리 술집이나 클럽에서 보내는 경우도
매우 많다고 한다.
그래도 뉴욕 타임스퀘어나
모스크바 붉은 광장처럼
특정한 야외 공간에 군중이 모이지는 않나 보다.
프라하도 바츨라프 광장에서
그런 걸 하면 좋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프라하엔 새해 전야에도
야외 행사는 딱히 없지만,
그래도 굳이 하나를 선택한다면,
프라하의 연말연시를 느끼기 위해
이방인이 시내에 더 오래 머물러야 하는 때는
크리스마스 전야가 아니라
새해 전야인 것 같다.
체코의 새해 전야(Silvestr)에
집에서 가족과 머무르는 사람들은
특집 TV 쇼를 보면서,
카운트다운을 함께 하고,
자정 넘어서 새해가 되자마자 TV에 나오는
대통령 담화를 함께 듣는다고 하는데,
이건 러시아인들과 똑같다.
그런 게 공산주의식 새해맞이였나 보다.
이런 프라하의 연말연시가
시각적으로는 어떤 분위기인지,
2019년-2020년
내가 찍었던 사진들을 쭈욱 덧붙이겠다.
지도에 적어 넣은 A-E의 순서대로
크리스마스 장식이 화려하다.
스타레 므네스토(Staré Město)는
“오래된 도시”,
즉, 웬만한 오래된 유럽 도시에는 다 있는
Old Town이라는 의미다.
아마 프라하라는 도시가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점 더 커져나갔을 것이다.
아래 지도에서 A 근처가 그곳으로
프라하의 주요 관광지가 여기에 몰려 있어서,
한국인들이
“프라하는 하루/이틀이면 다 본다”
할 때,
한국인들이 다 봤다고 주장하는 그 “프라하”다.
여긴 말레 광장(Malé náměstí),
"작은 광장"이라는 의미다.
이름처럼 크리스마스 마켓도 소박하다.
여긴 하벨 시장(Havelské tržiště).
체코 기념품을 파는 시장이다.
시장 위에 크리스마스 전등만 덧붙였다.
흰 인형탈도
작은 빨간 산타 모자로 포인트를 줬다.
이제부터는 쭈욱
구시가 광장(Staroměstské náměstí).
프라하 구시가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고,
프라하에서 가장 큰 크리스마스 마켓이 선다.
(동영상 1) 프라하 구시가광장 크리스마스 마켓 낮
이제 좀 더 어두워졌을 때 풍경.
(동영상 2) 프라하 구시가 광장 크리스마스 마켓 밤
이건 크리스마스 콘서트.
(동영상 3) 프라하 구시가 광장 크리스마스 콘서트
(동영상 4) 프라하 구시가 광장 새해 전야
여기는 시청 신관 (Nová radnice).
여기는 스타레 므네스토의 거리들.
노베 므네스토(Nové Město)는
"새 도시"라는 의미인데,
스타레 므네스토 동쪽 지역이다.
아마 처음 생겼을 때는 신시가였겠지만,
오래된 고풍스러운 건축이 많아
여기도 실제적으론 구시가라 할 수 있다.
스타레 므네스토가 끝나고
노베 므네스토가 시작하는 지점에 위치한
백화점 팔라디움(Palladium)도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뽐내고 있었다.
2019년의 프라하 크리스마스 장식 테마가
천사였는지,
아니면 원래 항상 천사인지 모르겠지만,
2019년 프라하 크리스마스 장식에는
다 천사가 있었는데,
이 백화점 전면에는
거대한 천사가
"품절 임박"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매우 성의 있는 꼿꼿한 자세로 나팔을 불고 있다.
그리고 백화점 정문 앞에도
크리스마스 마켓 부스가 서 있었다.
팔라디움 백화점 남쪽
공화국 광장 (Náměstí Republiky)에도
크리스마스 마켓이 서 있었다.
여기는 좀 더 동쪽의
플로렌티눔(Florentinum) 쇼핑몰
여기는 스타레 므네스토 남동쪽
나 프르지코피에 (Na příkopě) 길과
그 길에 있는 백화점
바츨라프 광장(Václavské náměstí)은
스타레 므네스토 남동쪽에 자리 잡은
길고 넓은 길이다.
1968년 프라하의 봄과
1989년 공산정권 몰락과 같은
중요한 현대사를 목격한
서울로 치면 광화문 광장 같은 곳이다.
바츨라프 광장 북쪽 앞에
커다란 천사 형상이 달린 부스에서부터
바츨라프 광장 남쪽 끝 국립박물관까지
크리스마스 마켓이 길게 형성되어 있었다.
이건 천사 형상 천막 뒤쪽.
체코어로
"2019년 크리스마스 마켓"이라고 쓰여 있다.
크리스마스 마켓 양 옆 가로수에는
계속해서 색이 바뀌는
크리스마스 장식 전등이 반짝였다.
(동영상 5)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 크리스마스트리
이건 프라하 국립박물관에서
바츨라프 광장 북쪽을 바라본 풍경들
프라하 성(Pražský hrad)은
블타바 강 서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까지 쉽게 가는 대중교통이
마땅히 없는 관계로
많이 걸어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곳이다.
프라하 성 안에
특별한 크리스마스 장식은 없었는데,
대성당 동쪽 끝 작은 광장에
작은 크리스마스 마켓이 서 있었다.
여긴 프라하 성 대통령 궁 남쪽
흐라드찬 광장(Hradčanské náměstí).
가로등만 살짝 크리스마스 모드다.
그 밖에는 프라하성 안이나 성 밖이나
크리스마스라고
특별한 장식은 딱히 없었다.
하긴 성에 입장하지도 못하는 밤 시간에
굳이 성 근처를 배회하는 사람은
현지인뿐 아니라 관광객도 많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이 동네가
밤에 걸어 다니기 위험한 건 아니다.
사진은 어둡게 나왔지만,
가로등이 계속 켜져 있고
그래도 관광지라 사람들은 계속 다니긴 한다.
말라 스트라나(Malá Strana)는
프라하 성 아래쪽 강변에 있는 동네다.
프라하 성 내려와서
카렐 다리 건너지 않고,
강변 따라 산책한 기억이 있다면
바로 거기다.
이건 카렐 다리 서쪽에 의 크리스마스 장식과
크리스마스 마켓 부스들.
하지만 여기 말고는
말라 스트라나도
크리스마스 장식이 많지는 않다.
그저 가로등에 좀 멋을 냈을 뿐이다.
위 지도에서 표시한 지역은
가장 중요한 프라하 관광지인데,
그런 중심부 말고 다른 데에서는
크리스마스 마켓도 보지 못했고,
특별한 크리스마스 장식도 거의 못 봤다.
비노흐라디(Vinohrady)는
프라하 남동쪽에 있는 지역인데,
지금도 좀 남아있지만,
예전에 포도밭이 있던 곳이라
이름에 "포도밭(vinohrad)"이 들어 있다.
집 값이 가장 비싸다는 프라하의 부촌으로,
꽤 괜찮은 식당과 카페가 많다.
2019년 12월 31일에 나는
이 동네의
성 루드밀라 성당(Kostel sv. Ludmily, Church of Saint Ludmila)에서
2019년 마지막 미사에 참석했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성모성심 성당 (Kostel Nejsvětějšího Srdce Páně, The Church of the Most Sacred Heart of Our Lord) 근처에도 크리스마스 장식이 좀 있었다.
2019년 크리스마스와 새해 즈음에 나는
프라하 북쪽 홀레쇼비체(Holešovice)라는
지역에 머물렀는데,
예전엔 공장지대였으나,
지금은 서울의 연남동, 성수동 같은 힙한 동네인
여기에도
언뜻 봐서는
별다른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없었다.
아래 사진은 이 동네에 있는
큰 재래시장인데,
방문객들도 많지 않고,
크리스마스 장식도 소박했다.
내가 머물던 숙소에서 멀지 않았던
비스타비슈체(Výstaviště),
즉 박람회장에도 소박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있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많이 나는 건 아니다.
사람들도 많지 않고 고요하다.
관광지를 벗어나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거의 안 나서,
"프라하의 크리스마스"를 잔뜩 기대했다가
좀 맥이 빠졌던 나는
드디어
"프라하답고 또 체코스러운"
크리스마스 풍경을 발견하고 말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체코인들이 먹는다는
그 잉어를 살려고
줄 서 있는 풍경을 본 것이다.
원래 여기는 이런 생산가게 없는
그냥 보통 보행자 도로이고,
이런 건 이 다음날도 없었는데,
내가 운좋게 본 거다.
어쩌면 크리스마스 즈음에 매일 있는데,
내가 보통 저녁에 지나다녀서 못 봤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크리스마스 시즌이 끝나고는
낮에도 다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사실 난 이 잉어를 사다 먹은 것도 아니고,
그럴 의향도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체코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 이국적인 크리스마스 풍경을 보고,
진짜 "프라하의 크리스마스"를 만난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즐거워졌다.
어쩜 이렇게 줄 서 있는 현지인들이 느꼈을
명절 앞둔 기다림과 설렘이
내게 전달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체코인들이 어떻게 보내나 궁금해서 검색하다가
그들의 새해 첫날(Nový rok) 풍습에서
특이한 걸 발견했다.
체코인들 사이에는
Jak na Nový rok, tak po celý rok.
(새해 첫날에 하는 걸, 일 년 내내 하게 된다)
라는 속설이 있어서,
새해 첫날에는
빨래, 설거지, 청소 같은
사소한 집안일도 안 하고,
친구를 만나도 계산할 때 신중해진단다.
(아마 새해 첫날 밥을 사주면
일 년 내내 사줘야 하기 때문인가 보다.)
이걸 읽으면서 피식 웃다가
문득 내가 체코 프라하에서 맞이했던
2020년의 1월 1일을 어떻게 보냈나 찾아봤더니,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프라하 역사 시작과 관련된 신화에 기반한
체코 작곡가 스메타나의 오페라
“리부셰(Libuše)”를 봤다.
오페라 마지막에
리부셰가 체코의 미래를 예언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나라가 어려운 일들을 겪겠지만,
그거 다 잘 견디고
결국 좋은 날이 올 것이라면서,
당시 19세기 후반 민족주의 시대에
다른 민족들의 지배하에 있던 체코인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일종의 체코식 "국뽕" 장면을 보면서
괜히 나도 울컥하면서
눈물이 핑 돌았었던 기억이 난다.
새해 첫날에 한 걸 일 년 내내 하게 된다는
체코인의 속설에 따르면,
나는 2020년 1년 동안
원 없이 공연을 봤어야 했는데,
2월 초까지 체코에 있는 동안엔
꽤 여러 공연과 콘서트에 갔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는
코로나 때문에 미리 예약해둔 공연 다 취소되어서,
극장에서 하는 공연은커녕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도 거의 못 봤다.
에이, 그 체코인의 속설 안 맞네~~.
아, 근데 잠깐!
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가 힘든 와중에,
그나마 대응을 잘한다고,
BBC 같은 외신에
한국이 "좋은 예"로 자주 소개되었고,
그런 걸 보고 싶어서
일부러 BBC를 찾아보기도 하고,
'이제 진짜 우리 선진국 됐나 봐.' 하면서
내가 다른 해보다 "국뽕"에 좀 자주 취했던 게
생각해보니 2020년이었다.
아, 그럼 그 체코인의 속설 맞는 건가???!!!
아무튼 새해가 되면
뭔가를 "잘해보겠다", “열심히 해보겠다”고
거창한 노력들을 계획하며,
타인과의 전투를 준비할 뿐 아니라
나 자신과의 전투에서 발휘할 전의를 가다듬는,
생각이나 각오마저 치열한,
보통의 우리 모습을 생각해보면,
언뜻
그냥 아무 생각 없고 대책 없고 어리석어 보이는
체코인들의 새해 처신은
오히려 뭔가 새롭고 초월적이어서
보통의 우리를 가뿐히 추월해서 앞서가는,
꽤나 특별하고 근사한 생각인 것도 같다.
다가올 1월 1일에는
어깨와 머리에서 힘 빼고
그냥 세월에 대충 금을 찍 긋고,
체코인들처럼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일부러 게으른 하루를 한번 보내볼까 보다.
그 속설이 효험이 있어서
나의 내년 일 년이 좀 덜 바쁘면 덜 피곤해서 좋고,
효험이 없다 하더라도
1월 1일을 잘 쉬면,
최소한
1월 2일은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