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Sunflower May 05. 2021

아빠를 위한 묵은지 고등어찜

#28.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던 마음

너랑 살면서
4킬로가 빠졌어

엄마가 어딘가 잠시 여행 중이거나 해서 아빠 라면이나 끓여먹는 꼴은 못 보겠다 싶어 차리는 밥이라면

"아빠, 그냥 차리는대로 드셔. 라면보다 낫잖아"

하고 말았을 것이다.


지금은 훈련 아니고, 실제상황이다. 엄마는 여행 간 것이 아니다. 죽었다. 죽은 지 한 달 반이 지났는데도 엄마가 죽었다는 말은 낯설다. 의식하기가 싫다.


엄만 전업주부였다. 요리에 취미가 있었다. 재능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훌륭했다. 베이킹에 재미를 붙였을 땐 별의별 빵이며 과자를 다 만들어줬다. <호두파이>는 엄마의 주특기 종목이었다. 만들면 많이도 만들었다. 몇 판씩 만들어서 예쁜 베이킹 박스에 넣고 베이커리에서 파는 것처럼 포장을 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는 게 좋아서 주변에 퍼주느라 바빴다. 엄마의 장례식 때 사촌오빠는 운전하는 내내 엄마의 호두파이가 머릿속에 맴돌아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유명한 베이커리 어딜 가도 호두파이 하나만큼은 엄마가 해준 것만 못했더라며. 엄마의 죽음이 장난이었으면 좋겠다고 서글픈 표정으로 말했다.


일평생 먹는 것에 관해서라면 독보적이었다. 밑반찬 떨어지는 건 우리 집에서 상상할 수 있을 법한 일이 아니었다. 오이지 하나 놓고도 한 끼 식사가 든든했다면 말 다했지. 엄만 이를테면 일등 가정주부였다.


머리가 좀 크고 나니 엄마가 우릴 얼마나 사랑했는지  몸으로 느껴진다. 미안한 줄도 알고 고마운 줄도 알게 되어 좀 갚아보려고 이것저것 노력해보던 차에 엄마가 죽었다.


엄마는 나와 내 동생이 결혼하여 나가고도 아빠 식사를 정말 잘 챙겼었나 보다. 아빠랑 엄만 여덟 살 차이가 나는데 아빤 연배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아빠는 엄마가 젊어서 아빠도 그렇다는데 사실 그것보다도 엄마가 균형 잡힌 식사를 준비해 주고 아빤 규칙적인 운동으로 자기 관리를(엄마도 억지로 시켜가며) 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죽은 엄마 발인 날 생채기 난 얼굴을 보면서도 피부에 주름 하나 없는 좋을 나이에 왜 죽었냐는 말을 내뱉고 싶었으니 말이다.  


엄마가 너무 잘했다 보니 난 좀 힘들다. 뭘 해도 소꿉장난 같이 만든다고 하거나 맛이 엄마랑 다르다던가 하는 말을 들으면 맥이 빠진다. 난 아빠가 엄마 생각 좀 덜 났으면 하는 바람에 식사 준비 정말 열심히 하는데.


눈치 빠른 남편은 아마 내가 소똥을 저녁 메뉴로 내놓아도 맛있다고 해줄 사람이다. 설령 한입 먹고 내가 안보는 새 싱크대에 뱉더라도 말이다. 난 아빠가 먹는 것에 이렇게 진심인 줄 이번에 합가 하면서 알았다. 엄마를 박 셰프라 부를 때부터 알아봤지. 엄마가 귀찮다고 먹고 들어오라고 해도 밖에서 사 먹는 게 맛도 없는데 돈도 내야 해서 싫다는 통에 엄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빠 식사 준비를 해야 했다.


아빠는 식사에 대한 기준이 높고 먹고 싶은 메뉴에 대한 확고한 의견이 있는 분이었다. 저번에는 갑자기 비가 오니 막걸리 한잔하게 김치전을 좀 만들어달라고 하기에 그건 뭐 쉬우니까 빨리 만들어줬다. 주방에서 꼼지락 거리는 내내 서너 번은 들었던 말은 "얇게, 아주 얇게 부쳐야 맛있다."

아빠의 투정 다 받아주며 동동 거리고 요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몰라줘서 미안해요.

집에 묵은지가 많은데 소비해야 한단다. 아빤 며칠 전부터 <묵은지 고등어 찜>을 노래했다. 김치찌개나 뭐 다른 거 해보겠다니 싫단다. 일주일에 두 번은 고기를 먹어야 하고 한 번은 생선을 먹어야 하는데 뭘 해주질 않으니 먹어도 먹은 거 같지가 않단다. 실제로 엄마가 그 루틴대로 매주 챙겨주었다고 하니 어지간하다 싶다.

아빠, 아빤 배가 허한 게 아니라 마음이 허한 거야
밥 먹을 때마다 엄마가 그리운데 오죽하겠어

"아빠 고등어 사러 가자, 내가 묵은지 김치찜 해줄게"

큰맘 먹고 말했다.


아빠는 엄마와 다니던 동선을 따라 나를 생선가게와 야채가게에 태워다 주었고 현금을 쥐어주며 사 오라고 했다. 매번 엄마가 주던 팽이버섯이며 무며 여기서 사다가 날 줬었구나. 내 냉장고에 가득했던 엄마가 준 야채들. 엄마는 가게 안을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걸었을 것이다. 우리 집에 나눠 줄 몫까지 세어가며 재료들을 샀을 것이다. 무 하나를 골라도 생채기 없는 제일 좋아 보이는 것을 한참을 찾아서 주었겠지. 눈물이 툭 떨어졌다. 누군가 나에게 무를 줄일 도 없지만 준다 해도 누가 굳이 상처 없는 좋은 무를 찾아서 지퍼백에 넣어 주겠어. 엄마밖에 없지. 근데 그 엄마가 이 세상에 없네.

엄마가 자주 다녔다는 주엽역의 생선가게

생선으로 무슨 요리를 해본 적이 없다 보니 가게 앞에서 이방인처럼 머뭇거렸다. 차에서 기다리던 아빠가 얼른 갓길에 주차하고 와서 손으로 물건을 몇 개 짚었다. 엄마한테 배운 솜씨겠지. 아빠는 내가 엄마인 듯 말동무가 되고 나는 아빠 옆에서 자꾸 엄마인척 귀동냥 주부생활을 시연한다. 피붙이 둘이서 살아보겠다고 애쓰는 모습이 하늘에서 내려다볼 엄마 눈엔 얼마나 짠할까.


양념이 살짝 덜 베긴 했는데 내일 한번 더 좋으면 딱 맛있겠다. 아우 잘 먹었네

국 공기 한가득 내가 난생처음 만든 <묵은지 고등어찜>을 퍼서 건넸다. 영광인 줄 아시오 여러분들. 자신만만하게 시작했지만 양 조절에 실패해서 김치는 너무 많고 국물은 넘쳐 인덕션이 두 번이나 꺼졌다. 야단 법석이었지만 인터넷 레시피 잘 고민해서 만든 것치곤 내가 생각해도 제법 그럴듯하였기에 이만하면 성공, 맛있게 드세요


나는 직장을 다니는 여자다. 휴직을 잠시 했을 뿐. 음식을 연구하는 열정이 있다 해도 서른다섯 해 엄마의 음식 내공을 따라잡는 꿈을 꾸기는 좀 무리 일 것도 같다. 그렇지만 누군가(특히 사랑하는 내 가족이)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잘 먹었네, 한 마디 해주는 기쁨. 그 한마디의 힘은 강력하다. 오늘 만드느라 온 주방에 생선 칠갑을 하고, 치우느라 난리부렁을 해도 내일 되어 또 다른 것을 먹고 싶다고 하면 재료 사러 나설 마음이 들만큼.

엄마,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줘서 고마워.
우리가 엄마가 해준 음식 맛있게 먹을 때 말이야
엄마도 많이 행복했을 것 같아
나 이제 그 기쁨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새 반찬 맛보라고 부를 때 귀찮다고 싫다고 한 거
정말 정말 미안해. 엄만 평생 그 자리에 있을 줄 알구
투정 부리느라 그랬어요 엄마 딸이.
가끔 열 받기도 했겠지만 귀엽게 봐줘
오늘은 어린이 날이잖아


매거진의 이전글 엄만 널 보낼 준비가 안되어 있었나봐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