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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Sep 15. 2017

덧셈의 방법과 방법들

17-18 EPL Episode 4.


 모든 스포츠팀에게 홈(Home)의 의미는 각별하다. 보통 프로 스포츠의 경우 지역을 연고로 삼고 활동하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 자신의 홈구장이 있다. 그들은 홈구장에서 모든 훈련을 하고 시즌 절반의 경기를 진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홈 승률이 높은 팀, ‘안방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진 팀들은 시즌을 무난히 치러낼 수 있다. 반대로 홈에서 승률이 높지 않은 팀은 순위에서의 손해는 물론이고 홈구장을 가득 메우는 지역 팬들의 원성을 들어야만 한다.


 보통 축구 경기의 티켓 판매를 보면 홈구장에서 좌석을 배정한다. 리버풀 팬들을 위한 응원 좌석 구역과 원정팀 응원 인원을 위한 좌석은 당연히 몇 배 차이가 난다. 그렇다고 원정팀을 응원하는 사람이 홈팀의 응원석 티켓을 구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투기 소음에 맞먹는 함성이 오가는 프리미어리그 경기장에서 상대 팀 응원석에 자리 잡고 싶은 원정 팬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리버풀의 홈구장은 안필드(Anfiled) 이다. 최초에는 같은 지역의 팀 에버튼의 홈구장이었으나 사용료 문제로(영국이나 한국이나 모든 문제의 끝에는 부동산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구디슨 파크’에 자리를 잡았다. 빈자리의 주인은 리버풀 F.C였다. 리버풀은 1892년 9월 1일 이곳에서 첫 홈경기를 치렀다. 로더햄 타운과의 대결에서 리버풀은 7-1 대승을 거두었다. 안필드의 시작을 알리기에는 더없이 좋은 결과였다.


 이 경기를 시작으로 리버풀은 안필드에서 수많은 역사를 만들어냈다. 리버풀의 찬란한(프리미어리그 출범 전의 리버풀은 그야말로 찬란했으니까) 업적에 발맞추어 안필드도 변신 로봇처럼 모습을 바꾸어 나갔다.

 변신의 주요 목적은 몸집 불리기였다. 지금의 모습을 하기 전 안필드의 규모는 5만 석이 채 되지 않았고 이는 프리미어리그 내에서도 그다지 크지 않은 규모였다. 규모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리버풀의 좌석 수는 리버풀이 들어 올린 우승컵에 비해 초라했다. 타 구단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현재 프리미어리그 최다 우승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우 7만 5천여석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고, 프리미어리그의 강팀이라 불리는 아스널, 첼시, 토트넘, 맨체스터 시티의 구장 규모 역시 그들의 성적처럼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또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바로 FC 서울의 홈구장 서울 월드컵 경기장이다. 이 경기장의 규모는 자그마치 66,704석으로 이를 프리미어리그에 가져가면 곧장 2위에 랭크되는 엄청난 크기의 구장이다. 경기장이 이토록 크기 때문에 K리그 FC서울 경기를 보면 관중이 적어 보인다. 하지만 타 스포츠 팬의 조롱과 달리 실제로는 상당히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고 있다. (참고로 만원 관중을 자랑하는 잠실 야구장은 2만 6천 명이 들어서면 발 디딜 틈도 없어진다.)


 이런 사실을 리버풀도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구장을 증축하거나 새로 짓는 것은 언제나 자금의 문제가 따라오는 법이었다. 가까운 예로 아스널의 경우를 볼 수 있다. 아스널은 현재 구장인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새로 짓기 위해 큰 규모의 지출을 감당해야 했다. 문제는 지출에 대한 감당을 선수단이 해야 했다는 점이다. 구단이 새로 지어지기 시작하면서 아스널은 근처만 가도 짠내가 진동을 할 만큼 돈을 아꼈다. 주축이 되는 선수를 파는 것도 서슴지 않았으며 선수들의 주급 역시 철저한 계획 아래 낮게 책정을 했다. 이러다 보니 더 높은 주급을 원하는 고급 인력들은 재계약을 거부했고 다른 팀이 불러만 주면 언제든 뛰쳐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스널은 그런 선수들을 잡을 힘도 목적도 없었다. 그런 이유로 해가 갈수록 그들의 선수층은 아까워서 얇게 펴 바른 크림치즈의 꼴이 나버렸다. 물론 그런 시절에도 뱅거의 유망주 우선 정책은 빛을 발해 빅4의 지위를 놓치지 않는 괴력을 발휘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부작용을 걱정해 구장을 언제까지나 옛것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 선수들은 더 큰 구장에서 압도적인 홈팬들의 입김을 느끼고 싶어했고 팬들 역시 티케팅 전쟁은 원치 않으니 말이다. 구단의 입장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구단은 좌석 수가 곧 수입으로 이어지기에 매년 구장 증축이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다. 리버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생각한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새 구장을 짓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안필드의 경우 구장 근처로 이미 주택가가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증축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예 새로운 부지에 새로 건축을 한다면 프리미어리그 최대 규모의 구장을 짓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다른 하나는 증축이다. 증축의 경우 새 구장을 짓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나간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안필드라는 역사적인 구장의 품위를 이어받아 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결국, 리버풀은 두 가지 선택지 앞에서 증축을 결정한다. 그들의 계획은 최대 5만 4천석 규모의 증축이었다. 공사는 2016년 9월에 1차로 완료되었고, 리버풀 구단을 관리하는 FSG에서는 2차 증축을 이미 계획하고 있다. (그래 봤자 6만 석을 확보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리버풀의 홈구장 Anfiled


 2017-2018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의 첫 홈경기 상대는 크리스탈 팰리스였다.


 작년에도 리버풀은 안필드에서의 승률이 나쁘지 않았다. 공격적인 성향의 클롭 감독이 이끄는 리버풀은 홈에 온 상대를 봐주는 법이 없었다. 한대 크게 맞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한대를 내질러야 속이 풀리는 직선형 파이터의 모습을 자랑했다. 덕분에 팬들은 안필드에서 벌어지는 시원한 경기를 자주 감상할 수 있었다. (물론 원정팀 팬들의 시원함도 잊지 않는 리버풀이었다)


 이번 시즌 첫 홈경기인 크리스탈 팰리스 전을 기다리는 팬들의 기대는 작년과 다르지 않았다. 리버풀의 팬들은 크리스탈 팰리스를 가두어 놓고 두드리길 기대했다. 그들의 기대가 과한 것도 아닌 것이 리버풀은 쿠티뉴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더 큰 바람을 몰아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호펜하임과의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보여준 소년 아놀드의 한 방. 그때의 흥분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리버풀의 상대 크리스탈 팰리스에는 익숙한 얼굴이 최전방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크리스티안 벤테케. 리버풀의 진짜 9번이 되어줄 것이라 기대하고 2015년 아스톤 빌라에서 영입한 벤테케. 하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리버풀 유니폼을 입고는 쉬운 골조차 골대에 모셔가지 못했다. 마치 지독한 길치가 높은 빌딩 사이를 헤메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안필드 골대를 찾지 못하고 주변을 방황하던 벤테케는 1년 동안 골 없이 걷다가 크리스탈 팰리스에 도착하게 된다.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그의 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그가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아스톤 빌라 시절의 전술과 비슷한 전술을 사용하는 크리스탈 팰리스는 벤테케의 네비게이션이 되어주었다. 갈 길을 알려주자 그는 또다시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리버풀 팬들이 아쉬움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리버풀은 키 큰 9번과는 궁합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두 번이나 겪어 잘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적의 유니폼을 입고 안필드에 선 벤테케와 달리 리버풀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안필드에 선 선수도 있었다. 바로 이번 이적 시장을 통해 합류하게 된 로버트슨. 그는 지난 시즌 ‘헐 시티’의 주전 선수로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그의 장점은 수비보다는 공격에 있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같지 않은가? 맞다. 그는 리버풀의 왼쪽 풀백 알베르토 모레노와 유사한 장단점을 가진 선수다.


사진출처 -  www.anfieldhq.com


 팬들의 의구심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로버트슨의 일반적인 평가는 모레노의 상위호환 선수 정도였다. 이는 달리 말하면 리버풀이 왼쪽 수비를 보강하기 위해서는 굳이 로버트슨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어디까지는 모레노보다 조금 더 나은 공격력과 엇비슷한 수비력을 가진 선수였으니까. 팬들이 원하는 것은 완벽한 업그레이드였다. ‘AS 모나코'의 멘디와 같이 이름만 들어도 축구를 잘할 것 같은 선수 말이다. 하지만 리버풀의 선택은 로버트슨이었다. (그의 이름이 사무직처럼 들린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선택하기만 하면 누구든 데려올 수 있었대도 그가 합류했을까? 라고 묻는다면… 사무직이. 아니, 로버트슨이 슬퍼할테니 못 들은 것으로 하자.


 다행인 것은 프리시즌 경기에서 그가 보여준 활약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로버트슨은 스스로 모레노의 상위 버전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주었다. 공격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수비에서도 조금은 더 안정적이었다. 그의 활약 덕분에 클롭은 마음 놓고 밀너를 원래 포지션인 미드필더에서 사용할 수 있었고 이는 돈 없는 팀의 감독들이 흔히 하는 말. “우리는 한 명의 선수를 영입한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대사를 클롭 감독으로부터 끌어 냈다. 그렇게 리버풀의 이번 시즌 왼쪽 수비는 모레노와 로버트슨이 로테이션으로 등장할 것이 예상되었다. 물론 누가 주전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새로운 팀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초반에는 모레노가 더 많은 출장 기회를 부여받겠지만 이후의 경쟁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지난 왓포드와의 개막전. 그리고 호펜하임과의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전에서는 예상대로 모레노가 주전이었다. 모레노는 지난 시즌과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90분 내에서도 무수히 반복해 보이며 리버풀 팬의 애간장을 태웠다. 문제는 이상하게도 경기를 마치고 돌아봤을 때 그는 예전과 달리 1인분의 몫 정도는 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때리기도 칭찬하기도 모호한 상황이지만 어찌 됐든 리버풀에게는 긍정적인 일이었다. 로버트슨에게 적응의 시간을 줄 수도 있고 경쟁자의 심리를 자극할 수도 있다. 축구에서 경쟁자의 등장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지난 시즌 후반 골키퍼 미뇰렛의 각성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로버트슨 외에도 공격수 스터리지와 중앙 수비수 클라반이 새로이 선발로 등장했다. 두 사람의 선발 이유는 상대가 크리스탈 팰리스기 때문이다. 스피드는 느리지만, 공중볼 실력이 좋은 클라반은 벤테케라는 무시무시한 장신 공격수를 막을 카드였다. 그리고 수비를 많이 두는 전략을 택할 크리스탈 팰리스를 뚫기 위해서는 지공에 강한 공격수 스터리지가 필요했다.


사진출처 -  www.anfieldhq.com


 스터리지가 톱에 등장하자 피르미누는 왼쪽 윙으로 자리를 옮겼다. 바로 지난 시즌 쿠티뉴의 자리였다. 아직도 등과 마음이 아픈 쿠티뉴의 자리를 메운 같은 브라질 출신의 피르미누는 지난 시즌 쿠티뉴의 움직임을 따라 하듯 플레이를 펼쳤다. 뛰어난 돌파와 연계, 그리고 가끔 보여주는 ‘쿠티뉴 존’에서의 슈팅까지. 그는 쿠티뉴의 향수를 불러 일으킬만한 장면들로 공격진을 이끌었다. 물론 그는 쿠티뉴가 아니었기에 ‘쿠티뉴 존'에서의 골은 터지지 않았다.


 스터리지 역시 기대한 만큼의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공을 잡았을 때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난 스터리지는 속공, 속공, 그리고 속공만 하는 리버풀의 공격진에 또 다른 옵션을 부여해주었다. 물론 첫 선발 경기였기에 몸이 그리 가벼운 편이 아니었고 영점도 맞지 않아서 골을 터뜨리지는 못했다. 그렇게 다소 답답하고 예측된 공격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리버풀 팬들로서는 생소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왼쪽에서 크로스가 올라온 것이었다.


 왼쪽에서 올라오는 크로스.


 그것이 뭐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시즌 리버풀의 왼쪽 라인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오랜만에 맛보는 감동인지 알 수 있다. 지난 시즌 리버풀의 왼쪽 윙 포워드는 쿠티뉴 였다. 오른발잡이인 쿠티뉴는 크로스보다는 중앙으로 파고든 후 슈팅을 하는 플레이를 선호했고 이는 꽤 정확한 확률로 상대의 골망을 갈랐다. 앞서 말한 ‘쿠티뉴 존'이 이렇게 생긴 것이다. 그런 쿠티뉴의 플레이 성향 때문에 쿠티뉴의 왼쪽 크로스는 기대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믿을 건 왼쪽 풀백뿐이지만 문제는 작년 리버풀의 왼쪽 풀백 주전은 밀너였다. 황소같은 저돌성과 멈추지 않는 체력을 자랑한 밀너 덕분에 리버풀의 지난 시즌 왼쪽은 꽤 든든했었다. 하지만 그런 밀너도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오른발잡이였다는 점이다. 오른발잡이가 서는 왼쪽 풀백. 이것의 가장 큰 단점은 왼발로 크로스를 올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맘먹고 찬다면 못 찰 이유도 없겠지만(물론 맘먹어도 절대 오른발로는 찰 수 없었던 왼발잡이 골게터 히바우두라는 선수가 있긴 하다) 정확도가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때문에 밀너는 크로스를 올릴 타이밍에서 항상 공을 접고 오른발로 크로스를 올렸다. 화면으로 보면 정말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순간에 상대 수비수들은 모두 페널티 라인 안으로 들어와 수비 준비를 마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리버풀은 작년 왼쪽에서 올라오는 크로스를 구경하기 어려웠다. 가끔 모레노가 나온다 한들 그는 크로스가 좋은 선수가 아니었다. 그런 리버풀에 왼발 크로스라는 낯선 공격 옵션을 선물하는 것은 신입 로버트슨이었다. 앞서 그의 장점이 공격력이고 이는 모레노와 다르지 않다는 말을 했지만 유일하게 다른 점은 여기에 있다. 그는 돌파와 연계를 주요 무기로 삼는 모레노의 공격과 달리 정교한 크로스를 주 무기로 삼고 있었다. 로버트슨은 그런 자신의 장점을 이번 경기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무대는 잘 짜여 있었다. 크리스탈 팰리스는 수비 라인을 굉장히 낮게 잡고 있어서 크로스를 올릴 위치까지 가는 것은 소풍을 떠나는 초등학생의 발걸음처럼 가벼울 수 있었다. 이는 모레노 혹은 밀너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왼발잡이 로버트슨은 상대가 미처 준비하기도 전에 왼발로 크로스를 올렸고 자로 잰 듯 정확한 크로스가 스터리지, 피르미누, 마네 또 가끔은 수비수 마팁의 머리로 향했다. 속공 옵션을 제외하고는 경험해본 적 없는 리버풀의 공격형태에 크리스탈 팰리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크로스를 통한 골은 터지지 않았지만, 로버트슨이 이번 경기 보여준 왼발 크로스는 리버풀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문제는 골이었다. 피르미누의 쿠티뉴 놀이도 좋았고 스터리지의 온 더 볼 게임도 좋았다. 마네? 그가 언제 실망 시킨적이 있던가? 하지만 공격진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골이 터지지 않았다. 게다가 작년 리버풀이 약팀에게 잡히는 패턴이었던 상대의 역습에 간담이 서늘해진 장면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클라반의 느린 발은 역습을 막는 데에는 젬병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팬들은 불안감을 느꼈다. 안필드에서 또 의적 질을 해야 한단 말인가. 경기 후 리버풀 기사에 달려들 타팀팬들의 의적 소리를 또 들어야 하는가. 긴장되는 시간이 흘렀다. 클롭 감독도 안필드에서 승점 1점으로 만족하고 싶지 않다는 듯 후반전에 이르러 살라와 솔란케를 투입하는 등 공격수를 늘리는 선택을 했다.  


사진출처 -  www.anfieldhq.com


 골이 터지는 과정. 그것만큼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리버풀은 경기 내내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해냈다. 그것은 누가 일부러 대본을 쓴대도 어려운 장면들이었다. 하지만 예술점수가 없는 축구는 그 장면들에 점수를 주지 않았다. 축구에서 중요한 것은 공이 골라인을 넘느냐 아니냐 하는 것뿐이었다.

 새로운 공격수를 투입하며 골을 노리던 리버풀. 그들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완벽한 돌파, 수비를 허무는 2:1 패스, 골대를 찢을듯한 중거리 슛. 그것은 아니었다. 리버풀에 찾아온 기회는 우연히 수비를 맞고 흐른 공이었다. 공격작업을 하다 빼앗긴 공은 우연히 수비의 몸에 맞고 우연히 상대 골대로 흘렀다. 그것을 우연히 근처에 있던 마네가 잡아 들었고 지체없이 공을 밀었다. 아름다움이라고는 한순간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억지로 공을 밀어 넣은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어거지는 리버풀의 엠블럼 옆에 숫자를 ‘1’로 바꾸었고 숫자는 곧 리그 테이블에 승점 3점으로 환산되어 기록되었다.



 안필드에서 벌어진 개막전의 첫 경기는 그렇게 끝났다.


 3:0으로 이겼다면. 혹은 하이라이트로 영원히 돌려볼 만한 아름다운 장면들이 골망을 갈랐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이겨도 승점은 3점. 어거지로 밀어 넣은 한 골로 이겨도 승점은 3점이었다. 이 3점은 지난 시즌 리버풀에 부족했던 바로 그 점수였다. 수비 지향적인 팀만 만나면 장기를 살리지 못하고 쩔쩔매다 허약한 수비 때문에 한 방을 얻어맞고 승점을 잃는 모습. 리버풀 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도 바로 이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EPL에서 리버풀 보다 훌륭한 스쿼드를 가진 팀. 그것은 두 자릿수가 되지 않는다. 반면 리버풀보다 약하다 불리는 팀들은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10팀은 쉽게 꼽을 수 있다. 리버풀은 그들에게서 승점을 잃어선 안 되었다. 왜냐하면, 강팀에게 이겨도 승점은 3점. 약팀에게 이겨도 승점은 3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팀의 수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단순한 산수만 해봐도 리버풀이 이번 경기를 통해 얻은 승점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3점을 만든 과정에서 지금껏 없었던 공격 옵션을 발견했다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우리는 정말이지 새로운 선수를 영입한 것과 다름없는 잊었던 공격 옵션을 더하게 되었다. 이상하지만 기분좋은 덧셈의 방법이다.


사진출처 -  www.anfieldhq.com


Written by 최동민
1984romainga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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