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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Sep 16. 2017

얼음과 불의 노래

17-18 EPL Episode 5


 조지 R.R. 마틴의 판타지 소설 제목을 대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왕좌의 게임>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소설로도 유명하지만, HBO에서 제작한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인기가 소설만큼이나 높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나라들에서는 소설보다 높다고 해도 반론을 제기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지 R.R. 마틴 소설의 원제는 <왕좌의 게임>이 아닌 <얼음과 불의 노래>다. <왕좌의 게임>은 1부에 해당하는 장의 부제목으로 등장했던 제목이다. 그렇다면 드라마 제작진은 왜 원제인 <얼음과 불의 노래>가 아닌 <왕좌의 게임>을 드라마의 타이틀로 정했을까. 단순히 생각하면 <왕좌의 게임>이라는 제목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더 쉽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의 성패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전체 내용을 포괄하는 제목인 <얼음과 불의 노래>를 사용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드라마의 첫 번째 시즌을 보면 <왕좌의 게임>의 내용에 해당하는 부분만 등장한다) 조금 더 소설로 들어가 보자. 


 소설 속 주요 배경은 웨스테로스 대륙이다. 이 대륙에는 일곱 개의 왕국이 있으며 그들을 지배하는 자는 킹스랜드의 요새 안에 놓인 철 왕좌에 앉을 수 있다. 이 왕좌는 그곳에 도전한 패배자들의 검을 드래곤이 녹여 만든 칼 무더기 왕좌이며 푹신한 방석조차 없다. 생각만 해도 차갑고 딱딱하며 요통에 쓰러질 것만 같은 왕좌다. (이 왕좌에 스터리지가 앉는 상상을 해보라. 그는 이곳에 앉는 것만으로 3달짜리 부상명단을 끊을 것이다) 아무튼 이 왕좌에서 쫓겨난 원래 왕가의 후손은 다른 대륙에서 다시 왕좌를 탈환할 기회를 노리며 힘을 기르고 있다. 그들의 복수심과 무관하게 현재 왕좌에 앉은 이는 반란을 통해 미친 왕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이다. 그는 철 왕좌의 딱딱함을 이겨내고 싶어서인지 턱밑부터 엉덩이까지 잔뜩 살을 찌운 채 유흥만 즐기고 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사냥에서 멧돼지의 습격을 받고 사망하는 바람에 철 왕좌의 주인은 그의 어린 아들에게 넘어가고 만다. 불안해진 왕좌. 그리고 그를 둘러싼 일곱 왕국의 움직임. 다시 태어난 드래곤과 북부에서 밀려 오는 백귀의 존재까지. 웨스테로스의 철왕좌는 소문난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잇템이 되어 수많은 욕심의 가운데 서게 되는데…. 


 소설의 시작은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왕좌의 게임을 그대로 현대 축구판으로 가져와 보자. 그렇다면 철왕좌를 상징하는 것은 무엇이 될까? 월드컵 우승국에게 주어지는 줄리메 컵일까? 대부분 그렇다 말할지 모르겠지만 유럽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의심할 나위 없이 ‘빅 이어’를 꼽을 것이다.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에게 수여되는 트로피 ‘빅 이어’ 그것의 상징성은 철 왕좌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 불편함 역시 철 왕좌 못지않은 면을 자랑한다. (애초에 의자가 아니니 앉아본 사람은 없겠지만) 이 트로피를 쥔 자만이 유럽을 제패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며 해마다 유럽에서는 왕좌의 게임과도 같은 전쟁이 벌어진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참가 인원 정도일 텐데 소설과 달리 챔피언스리그는 32개 팀의 참가를 허락하고 있다. 리버풀은 13-14 시즌을 마지막으로 참가 티켓을 받지 못했다. 다시 말해 왕좌에 앉을 최소한의 자격 조건 조차 채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리버풀이었기에 호펜하임과의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은 칼을 갈고 또 갈아야 하는 경기였다.

 지난 호펜하임 원정에서 2:1 승리를 거둔 리버풀. 


그들은 비겨도 그만, 1:0으로 져도 그만이었다. 그 이상의 스코어 차이가 아니라면 왕좌의 게임에 참가할 자격을 얻어낼 수 있었다. 게다가 홈구장인 안필드에서의 경기였기에 모든 표지가 리버풀을 챔피언스리그로 안내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스포츠에서 벌어지는 드라마는 지금처럼 모든 것이 쉽게 풀린다 싶을 때 반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www.liverpoolfc.com


 리버풀과 호펜하임 두 팀 모두 이 경기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두 팀은 가지고 있는 최선의 패를 꺼내 들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한 골의 여유를 가지고 시작하는 리버풀과 달리 호펜하임은 빠른 시간내에 득점을 해야 하는 점을 고려해야 했다. 가뜩이나 안필드 붉은 팬들의 함성을 이겨내야 하는 호펜하임으로서는 한 골의 차이도 큰 부담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호펜하임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하나는 원정팀이 자주 사용하는 전술인 수비라인을 내리고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하다 후반에 승부를 거는 방법. 다른 하나는 처음부터 맞불을 놓아 홈팀을 응원단까지 집어삼키는 방법이다. 입장을 바꿔 리버풀이 되어보자. 그들의 입장에서 호펜하임이 어떻게 나오는 것이 좋을까?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당연히 전자가 좋다. 그들이 라인을 내리면 내릴수록 경기장의 타이머는 고장 난 것처럼 빠르게 흐를 것이고 초조해지는 것은 상대가 될 테니까 말이다. 비록 수비가 약한 리버풀이라 하더라도 내려앉은 적을, 그것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우가 아닌 상황이라면 충분히 막아낼 힘이 있었다. 게다가 많이 보여주지 않아서 그렇지 문을 걸어 잠그고 역습을 하는 전술에 있어서 리버풀보다 좋은 조건을 가진 팀은 없었다. 왜냐하면, 리버풀은 리그 최고의 스피드의 공격진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점을 호펜하임이 모를리 없었다. 그랬기에 그들의 선택지는 반강제적으로 두 번째 방법으로 향했다. 호펜하임은 처음부터 수비라인을 올리고 경기를 시작했다. 지난 시즌 리버풀을 상대한 강팀들이 주로 사용했던 바로 그 방법이었다. 


 수비라인을 끌어올린 호펜하임에 맞서 리버풀은 경기장을 최대한 넓게 사용했다. 술래잡기 놀이의 얄미운 아이들처럼 마네와 살라는 경기장 끝에서 끝을 점령하고 있었고, 반대로 세 명의 미드필더는 중원을 꽁꽁 걸어 잠갔다. 골을 위해 라인을 올린 호펜하임은 골이 되든 아니든 공을 경기장 밖으로 내보내며 공격 작업을 마쳐야 했다. 그렇지 않고 중간에 끊겨 공을 뺏기기라도 하면 리버풀의 미드필더들은 경기장 양 끝으로 빠르게 공을 전달했다. 그곳에 누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당장 그곳에 있는 게 아니더라도 마지막 터치는 마네와 살라의 몫이었으니까 말이다. 이 단순한 공격작업에 호펜하임은 대비할 수 없었다. 여기서 말하는 대비라는 것은 사실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축구는 그 어떤 전술도 완벽한 것이 있을 수 없으며 그런 것이 있었다면 이미 고대에 전해진 놀이 정도로 취급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어떤 전술이든 아킬레스건은 있었고 감독들은 그것을 감수하고라도 원하는 것을 얻고자 다른 쪽 날을 날카롭게 가는 게 축구에서의 전술이었다. 


 호펜하임의 이번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1차전에서 뒤진 그들은 이른 시간에 골을 얻어내기 위해 공격의 수를 늘려야 했다.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얇아진 수비는 애초에 대비할 수 없었으므로 공을 덜 뺏기는 데 주력해야 했다. 혹은 공격작업의 마지막을 반드시 공을 아웃시키는 것으로 마쳐야 했다. 그것이 골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니라도 수비가 돌아올 시간을 벌어주는데 아웃만큼 좋은 방법도 없었다. 문제는 호펜하임이 그러지 못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 골을 터졌고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호펜하임의 골문으로 빠르게 달려 들어가던 마네는 찬에게 완벽한 패스를 넣어주었고 찬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침밥을 먹지 않고 달려도 버스를 놓칠 만큼 긴박한 상황에서 가방을 놓고 온 직장인처럼 망연자실해진 호펜하임이었다. 종합 스코어 3:1 그들은 연장을 위해서는 두 골이, 승리를 위해서는 세 골이 더 필요해졌다. 호펜하임은 다시 달릴 수밖에 없었다. 챔피언스리그 복귀를 갈망하는 안필드 팬들이 내지르는 불길에 묻히고 싶지 않다면 최대한 빨리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야 했다. 방법은 지금까지와 다를 게 없었다. 이미 그들은 사용할 수 있는 극한의 공격 전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 뒤 깨닫게 되었다. 무슨 이유인지 자신들에게는 운도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두 번째 골은 살라에게서 터졌다. 


터졌다는 표현을 하기 민망할 정도로 쉬운 골이었다. 바이날둠의 슛이 골대를 맞고 나온 것이 하필 살라의 발끝에 도착했다. 피치 위의 수많은 선수 중에서 왜 그곳이었을까? 그것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겨우 설명을 짜내자면 ‘골 냄새를 잘 맡는' 정도로 말할 수 있겠지만 그저 운의 차이였다. 살라는 자신의 발밑에 떨어진 공을 무리하지 않고 차넣으며 2:0을 만들었다. 종합 스코어 4:1. 연장전에 가기 위해서 호펜하임이 필요한 골은 3골이 되었다. 게다가 아직 경기는 20분도 지나지 않았다. 70분의 남은 시간. 그것은 호펜하임으로 하여금 여전히 달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리버풀의 불길이었다. 리버풀과 안필드를 메운 붉은 불길은 20분이 되길 기다렸다는 듯 또 한 번 골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피르미누의 크로스를 받은 찬의 발리슛이었다. 거의 같은 패턴의 반복이었다. 


 “호펜하임이 공격을 한다. 빼앗긴다.
리버풀이 전방으로 패스를 찔러준다.
슛한다.”


 이 단순한 패턴에 3번 연속으로 당해버린 것이다. 종합 스코어 5:1. 이 상태로면 남은 시간의 숫자가 골의 숫자와 크로스를 하게 될 판국이었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었다. 배수의 진을 치기도 전에 강물이 불어 홍수를 일으킨 꼴이었다. 넘치는 강물을 피하려면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야 했다. 예를 들면 리버풀의 골문 같은 곳으로. 


사진출처 www.liverpoolfc.com


 호펜하임은 곧장 공격수를 추가 투입했는데 그는 리버풀과의 1차전에서 골을 넣었던 후트였다. 후트의 투입으로 호펜하임의 날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큰 점수 차에 집중력을 잃었는지 리버풀 수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호펜하임의 바람이 정확히 적중하듯 후트는 전반이 끝나기 전 만회 골을 터뜨리며 3:1의 스코어를 만들어냈다. 전반에 만회 골을 넣는 것은 호펜하임으로서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다. 이것에는 단순한 숫자놀음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전반 내내 수비를 포기하면서까지 최선의 공격을 펼쳤는데 상대 수비에 균열을 내지 못한다면 후반 경기는 가망이 없는 것이었다. 적어도 균열을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도 봐야 후반을 내달릴 당위가 성립되는 것이다. 후트의 골은 바로 그 당위성을 만들어주는 골이었고 감독을 포함 젊은 호펜하임은 후반 45분. 전력을 쏟을 정비를 할 수 있었다. 


사진출처 www.liverpoolfc.com


 팬이 아닌 이들도 즐겁게 볼 수 있을 만큼 흥미로운 내용으로 전개된 두 팀의 경기는 후반전에 돌입했다. 5분 이내에 호펜하임의 만회 골이 나온다면 기세는 완전히 넘어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를 위해 호펜하임은 앞서 했던 것 그대로 리버풀 진영을 내달렸다. 하지만 그들이 쥔 양날의 검은 리버풀 진영에 피를 뚝뚝 떨어뜨렸고, 리버풀 선수들은 그들의 피를 제물 삼기라도 한 듯 날카로운 역습으로 보답했다. 그 과정에서 피르미누의 골이 터졌고 몇 분 후에는 리버풀 수비의 약점을 파고든 호펜하임의 만회 골이 들어갔다. 스코어 4:2. 호펜하임은 아무리 내달려도 줄어들지 않는 격차에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다. 몇 번의 교체카드도 극적인 반전을 가져오지는 못했고 조금이라도 일어설라치면 안필드 팬들의 함성이 그들을 다리를 무겁게 만들었다. 무거워진 선수들의 다리와 달리 타이머는 성실히 돌아갔고 결국 양 팀은 종합 스코어 6:3으로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대결을 마쳤다. 왕좌의 게임 참가 티켓의 주인은 리버풀에 돌아갔다.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에 나오는 왕좌. 

 그것의 재료는 웨스테로스 대륙을 좌지우지하던 군웅들의 검이었다. 그들은 패자였지만 패자의 이름으로 철 왕좌를 완성했다.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32팀. 아니, 그 이전에 32팀 안에 들려는 무수히 많은 축구 클럽이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챔피언스리그의 왕좌, 빅 이어를 향해 내달린다. 그중 가장 빠르게 달린 32팀은 한 번 더 전투의 자격이 주어지고 그들은 더욱 격렬하게 왕좌를 향한다. 한 번의 라운드로 절반의 팀이 사라지고, 또 한 번의 전투로 절반의 팀이 다시금 사라진다. 그런 전투 끝에 살아남은 한 팀은 빅 이어를 손에 쥐게 된다. 이제 유럽 축구 팬들은 본격적으로 펼쳐질 그들의 전투를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그들 중 누구 하나 승리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 빅 이어의 주인을 미리 엿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챔피언스리그를 즐기는 모든 이들.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빅 이어는 언제나 패자의 검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며 패자에게 경배할 줄 아는 이만이 빅 이어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는 많고 경기는 이제 막 시작했다는 사실을. 


사진출처 www.liverpoolfc.com


Written by 최동민
1984romainga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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