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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Jan 03. 2018

⎨COVER STORY⎬
"무소용"

BOOKDIO COVER STORY


연말 길거리엔 빨간 국냄비가 걸린다. 

자선냄비가 처음으로 거리에 나온 것은 1891년 샌프란시스코에서였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던 연말, 한 장교가 늘어나는 도시 빈민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국끓이는 솥하나와 함께, ‘이 국솥이 끓게합시다’라는 문구를 거리에 내걸었다. 이색적인 광경과 단호하면서도 호소력있는 문구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는지, 많은 이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고 한다. 


솥을 처음으로 거리에 내걸었던 장교는 구세군이라는 단체의 일원이었다. 구세군은 1865년 영국 런던에서 기독교의 한 교파로 창설되었다.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군대식 조직체계로 운영되는 것이 특징이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종교적 색채나 조직적인 특성보다도 폭넓은 사회공헌활동을 펼치는 국제 NGO로서 구세군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활동에는 정부나 기업의 지원 뿐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기부 역시 커다란 힘이된다.


그래서인지 최근 다양한 NGO들은 거리모금활동에 열심이다. 유니세프, 유엔난민기구, 옥스팜, 국경없는 의사회, 세이브더칠드런, 그린피스, 앰내스티 등 수도없이 다양한 단체들이 거리모금 활동가를 두고있다. 이들은 모두 사회적 활동을 위해 세워졌지만, 제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어린이부터 난민까지 돕고자 하는 대상도 조금씩 다르고, 환경보전, 인권수호 등 저마다 추구하는 비전도 명확히 구분된다.


하지만 그들의 거리모금 활동은 약속한 듯이 비슷한 모습으로 이루어진다. 시민들이 오가는 길거리 한편에  자리잡은 획일화된 규격의 이동식 철제부스와 함께, 그 앞면에는 단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로고이미지, 부스위에는 구호활동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물품과 책자, 끝으로 유니폼을 걸친 두세명의 활동가로 그 구성요소를 요약할 수 있다. 활동가들은 추우나 더우나 거리의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그들이 펼치는 사회적 활동의 가치를 설파한다. 



명동이나 신촌처럼 북적대는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심심찮게 이런 활동가들을 마주치게 된다. 활동가들은 그들의 단체가 바라보는 사회의 한 조각을 일목요연하면서도 흥미롭게 설명해 준다. 구호단체라면 현장에서 사용하는 독특한 구호 물품도 함께 보여주기 때문에, 설명을 한결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혹은,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1분에 몇명꼴로 집이나 국가, 심지어 목숨을 잃어간다는 객관적인 통계는 사람들로부터 즉각적인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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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역시 거리모금을 하지만 그 모습에는 좀 별난 구석이 있다. 구세군은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그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그저 삼각대에 빨간 냄비하나 걸고, 시종일관 종을 흔들 뿐이다. 냄비와 깔맞춤한 빨간색 롱코트를 입은 활동가는 먼저 인사도 건네지 않는다. 냄비역시 말이 없다. 말도 없고, 그 흔한 철제부스도 없고, 구호물품도 책자도 없다. 다만 그 종소리는 우리가 잊고있던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한다. 벌써 한해가 저물때가 되었다는 사실과, 저물녁의 한파속에 어려운 이웃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과, 나에게도 그들을 도울 여유가 조금은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런 구세군의 모습에 두개의 낱말이 떠오른다. 하나는 무소유. 그들이 길위에 대동하는 것은 1891년부터 내걸어온 냄비 하나, 추위를 견딜 옷 한벌, 그리고 작은 종이 전부다. 불필요한 것은 모두 버렸다. 다른 하나는 무소용. 소박하고 따뜻한 구세군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지만, 어딘가 탈탈 털린듯한 구세군의 거리모금방식은 일견 시대착오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빠르고 시끄러운 시대에, 조용히 서서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지도 않고, 100년은 족히넘은 냄비라는 플랫폼에 현금 기부를 받는 방식이 소용이나 있는걸까. 


무수한 NGO들 틈에서 구세군이 탈탈털린 무소유를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참으로 무소용한 무소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NGO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선의의 집단이라고 하지만 시장 경제 체제에서 활동하는한 타집단과의 경쟁을 피할수는 없다. 추운 길거리에서 한참을 바라봐도 허공에 울려퍼지는 종소리뿐, 동전하나 못얻는 냄비의 처량함이란… 이렇게 치열한 시장에서 무소유란 저멀리 고즈넉한 산사의 승려들에게나 어울릴법하다. 


———

법정 스님의 삶과 함께 ‘무소유’도 절판 되었다. 2010년 3월의 일이다. 

무소유가 처음으로 출간된 것은 1976년이었다. 책은 약 35년간 80쇄가 넘도록 판매되었는데, 이런 스테디셀러의 절판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시장은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을 끊어버리는 결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절판은 저자인 법정 스님의 결정이었다. 80에 조금 못미치는 삶의 끝에서 ‘나의 이름으로 출간된 책을 더이상 출판하지 말라’는 유지를 남겼다.


스테디 셀러로서의 무소유는, 한마디로 머스트해브 아이템이었다. 머스트해브 아이템이란, 현대 시장경제 체제 아래에서 소비자로서의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상품을 칭하는 외래어이다.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롱패딩이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른바 극강의 가성비를 자랑하던 평창 롱패딩은 사람들을 아이돌 콘서트 예매하듯 길고 긴 줄을 서서 기다렸던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롱패딩은 정말로 머스트 해브 아이템인가? 가져야 한다는 ‘머스트’라는 말은 어디에 근거를 둔 말인가? 길이로 치면 롱패딩의 반정도 되는 하프패딩만으로도 대한민국의 겨울을 나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곳과는 비교할 수 없이 추운 스웨덴에서는 단한번도 롱패딩을 구경해 본적조차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해 보면, 태생적으로 극심하게 추위를 타는 사람이 아닌 이상 ‘머스트’라는 말은 판매자의 이윤추구에 근거를 둔 말이라는데 무게가 실린다.


단어하나를 한번더 곱씹어 보면 이런 의문이 드는게 무척 자연스럽지만, 이세상에서 말의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는 일은 절대로 쉬운일이 아니다. 누군가 머스트해브 아이템이라고 하면 그걸 나도 가져야 할것같은 마음이 먼저 차오른다. 시장에서는 모든게 상품이고, 카드의 슬라이딩 한번에 그 상품이 나의 소유가 된다. 구매가 곧 행복인 세상에서는 굳이 의미를 따지지 않아도 얼마든지, 끝도없이 행복할 수 있다. 


이전에도 그랬겠지만, 특히 서구에서 정의하는 근대 이후의 세상은 명백히 소유욕 위에서 세워졌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헌법을 통해 개인의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드러나고, 신성한 보호의 대상으로 정의된다. 또한 앞서 말했듯, 이 시대에는 온세상이 시장이나 다름없는데, 어딜가나 무엇이든 살수 있으며, 현실속의 시장도 모자라서 그보다 훨씬 큰 규모의 가상 시장인 온라인 시장까지 만들어낸 지경이다. 더군다나 온라인 시장은 그 성장세가 가속화되는 추세다. 


일반적인 세계에서 흔히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로 꼽히는 것은 행복이다. 그 실체가 모호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정의하는 행복을 쫓는다. 한편 ’시장’으로서의 세계에서는 ‘구매’가 궁극적인 목표로 꼽힌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든 사는 사람이든 구매라는 두글자를 지향한다. 세계가 시장이라면, 행복은 구매다. 행복은 구매고, 구매는 곧 행복이라는 말에 전제따위는 필요없는 세상이 되었다. 왜냐하면, 세상은 시장이고, 시장은 곧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명확하게 세상과 행복을 정의 (왜곡?) 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구매를 꿈꾸는 시장판 세상에서의 모든 활동은 소유욕을 키우는 일, 그리고 키워진 소유욕을 채운는 일 두가지로 깔끔하게 분류할 수 있다. 이런 활동의 매력은 그 끝이 없는 무한성에 있는데, 소유욕은 키워도 키워도 끝없이 커지고, 채워도 채워도 넘칠일이 없으며, 따라서 구매하고 또 구매해도 매번의 구매는 새롭고 충만하다. 시장판 세상에서는 행복하고 또 행복해도 더 행복할 수 있다. 이런 곳에서 한계가 있는 물리적 시장을 넘어서는 무한한 온라인 마켓의 등장은 놀라울 일도 아니다. 이제 더 큰 행복이 가상의 공간에서 손가락만 까딱하면 끝도없이 펼쳐진다.  


어찌됐든, 법정 스님의 삶과 함께 ‘무소유’도 절판 되었다. 

이 문장은 언뜻 들으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뭔가 어색함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어색함은 구매를 꿈꾸는 시장판 세상과 어느정도 연관이 있다. 삶과 함께 ‘무소유’도 절판 되었다는 말은 총 네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무소유는 판매중이었다. 둘째, 삶도 역시 판매중이었다. 셋째, 무소유는 절판되었고, 끝으로 삶도 역시 절판되었다. 삶과 함께 ‘무소유’도 절판되었다는 말은 삶도 판매할수 있다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 시장판 세상에서는 삶도 사고 팔수 있는걸까. 


원래대로라면 법정 스님의 ‘입적’과 함께 ‘무소유’도 절판 되었다고 하는게 바른 문장일 것이다. 문장을 분석하자면, ‘입적과 함께’에서는 ‘함께’가 동시성을 뜻하는 말로 기능하여 스님이 입적하는 시점에서 무소유도 절판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게된다. 앞선 문장에서와 같이 ‘법정스님의 삶과 함께’에서 함께는, 삶과 무소유를 동등한 절판의 대상으로 놓는 연결어로서 문장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언뜻 보았을때 첫 문장의 어색함을 알아채지 못한것은, 단어 하나가 갖는 의미를 충분히 곱씹어보지 못한 탓일 것이다. ‘삶’이라는 단어가 너무 흔해서인지, 혹은 삶을 사고파는것이 정말로 어색하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그저 장식품처럼 겉만 휙 보고 지나친 것은 분명하다. 


무소유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것을 유명한 책제목정도로 인식할 뿐 그 속에 담긴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좀더 좋게보아 그런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적인 여유가 녹록치 않다. 굳이그런 생각을 하지않아도, 삶의 행복이 클릭한번으로 집앞까지 배송되기 때문이다. 2010년 까지는 무소유라는 책 역시 그러한 구매의 대상이었다. 법정스님이 말하는 무소유의 의미는 몰라도, 유명한 책한권의 구매를 통한 소유욕의 충족은 손가락 한번 까딱하는 것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무소유의 절판은 책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무소유를 말하는 책을 가져봤자 진정한 무소유의 실천을 돕는데에는 별 소용이 없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라면 시장의 논리를 거슬러 절판을 결정할 충분한 이유가 될법하다.



———

말없이 종을 흔드는 구세군 봉사자의 무소유 역시 텅빈 냄비가 드러내는 무소용과 함께 절판 될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대학생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다가와  말없이 냄비에 지폐를 넣고는 가던 발걸음을 이어갔다. 뜻밖의 모습에 놀라, 좀더 다가가 냄비를 자세히 살펴보다가 흰색으로 자그맣게 새겨진 글씨를 발견했는데, 그건 Fissler(휘슬러)라는 상표이름이었다. 독일의 고급 주방용품 브랜드였다. 연이어 드러나는 뜻밖의 모습에 구세군의 무소유를 조금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기로 했고, 그 결과 그들의 무소유는 절판되지 않으리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구세군의 모금활동에서 드러나는 무소유는 의도적인 것으로, 그 중심에는 1891년 시작된 스토리가 자리잡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구세군 장교가 절박한 마음으로 내걸었던 국끓이는 솥과 ‘이 국솥이 끓게 합시다!’ (Keep this pot boiling!)라는 문구에 그들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렇게 의미있는 이야기는 흔치않은 것으로 시장을 종횡하는 브랜드들에게는 성공적인 마케팅을 위한 머스트해브 아이템이다. 


물론 구세군은 선의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이나, 그러한 단체들 간에도 경쟁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이러한 이야기는 큰 차별점으로 기능한다. 거리에 내걸린 국솥, 또는 냄비에 담긴 이야기는 그만큼 강력해서 봉사자가 별도의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고, 구호활동에 사용되는 샘플을 굳이 보여줄 필요도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봉사자들은 다른 이야기를 해서도 안되고, 냄비 이외의 물건을 보여줘서도 안된다. 

휘슬러와의 파트너십으로 업그레이드된 자선냄비와 연말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붉은색의 종소리만으로 이미 충분한 것이다.


이렇게 영리한 구세군의 전략적인 무소유는 더 나은 시장전략이 나오지 않는한 절판되지 않겠지만,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그 공백을 대체할 문장도 없이 불현듯 절판된지 7년이 넘어간다. 그 공백은 그러나, 수요가 있는곳에 구매라는 행복을 반드시 배달한다는 시장의 논리가 미치지 못하는, 세상에 얼마 남지않은 값진 공백이 아닐 수 없다. 누구라도 마이페이지의 카트에 추가하고 싶지만, 그럴수 없는 허전함으로 인해 오히려 무소유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되는 탓이다. 


Written by 박진용
suj20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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