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Jan 08. 2018

기묘한 이야기

8 Jan, 2018




좋은 것을 보면 지인에게 추천을 해주고 싶어진다. 작년에 제일 많이 추천했던 것이 있다면 tvN 드라마 <비밀의 숲>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일 것이다. <비밀의 숲>은 영업이 상당히 잘되어서 주변의 많은 이들이 같이 드라마를 보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기묘한 이야기>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의 한계 때문인지 영업이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올해 들어 한 친구가 <기묘한 이야기>를 보기 시작했다. 문제는 시작과 끝이 같은 날이었다는 점이다. 흔히 말하는 ‘빈지워칭’을 한 것이다. <기묘한 이야기>는 시즌1이 8회로 완결되니까 얼핏 생각해도 최소 7~8시간 몰아서 봤다는 이야기다.



<기묘한 이야기>는 미국의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을에는 네 명의 소년들이 있고 그들은 매일 모여 보드게임 <던전 & 드래곤> 같은 게임을 한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네 친구는 <던전 & 드래곤>을 밤늦게까지 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인 윌 바이어스 라는 소년에게 문제가 생긴다. 집으로 돌아간 윌 바이어스는 이상한 존재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그것에게 도망을 치려 하지만 결국 사로잡혀 아무도 모르는 공간 속에 갇힌다. 드라마는 바로 이 소년 윌 바이어스를 되찾기 위한 친구와 가족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단순한 플롯의 드라마는 그 해 드라마상을 휩쓸었고 넷플릭스 유저들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중 최고의 작품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나 역시 그간 시청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중 이 작품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즌이 흐르면 흐를수록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그 훌륭한 <하우스 오브 카드>도 시즌3부터 급격히 망가지지 않았던가) 시즌 1만놓고 본다면 흠잡을 곳이 없다. 


보통 드라마에서 흠을 잡을만한 요소는 설정과 서사, 그리고 캐릭터가 있을 것이고,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미술, CG, 음악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곁가지부터 살펴보자면 이 작품은 배경이 된 1980년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물론 당시 미국에서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집에서 살았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음악은 디스코의 황금기였던 것을 고려해 적재적소에 디스코가 배치되어 있다. 심지어 음악 중 한 곡은 극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CG를 비롯한 미술 쪽은 어땠을까? 그건 타이트 롤만 봐도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테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재료는 잘 준비했으니 그것을 잘 요리하기만 하면 된다. 사실 플롯은 간단하다. 주인공이 미지의 존재에 의해 사라진다. 주인공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를 찾으려 동분서주한다. 주인공의 실종에는 비밀의 조직이 있어 그들과 맞서 싸우며 또 다른 거대한 적과 마주하고 모든 싸움의 끝에 주인공을 구해낸다. 


이 플롯은 시련을 겪고 그것을 극복하려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큰 고비를 맞았다가 행복한 마무리로 향하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이 구조가 짜인 것은 이천년이 넘었고 그것이 견고하게 굳은 뒤 변주되기 시작한 것 역시 최소 50년은 넘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볼 수 있는 모든 플롯의 변주를 지켜본 것일지도 모른다. <기묘한 이야기>도 그런 사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플롯이 신선하지 않다는 것. 그것은 서사를 다루는 매체에 있어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기묘한 이야기> 역시 그것에서 온전히 벗어나긴 어렵다. 말한 대로 플롯은 기본 유형과 다르지 않고, “아이들이 세상을 구한다”라는 메시지는 이미 <E.T>에서 볼만큼 봐왔다. 이면의 세계에 사는 미스테리한 존재 역시 지금껏 나온 것을 모두 모아보자면 세계 국가의 수보다 많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서사를 만드는 이들이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영리한 선택을 하기로 한다. 바로 ‘’조합’이라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우정, SF, 게임, 디스코, 80년대, 시골, 연구소, 음모…” <기묘한 이야기>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이 재료를 완벽한 자리에 배치했다. 그리고 재료 역시 최상의 것으로 준비했다. 일레븐으로 대표되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잘 다듬어진 SF적 세계관 등 하나씩 떼놓고 보더라도 좋을 것들만 가져온 것이다. <기묘한 이야기>는 바로 이 ‘조합’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최고의 드라마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아! 놓칠 뻔 했는데 <기묘한 이야기>가 가진 또 하나의 무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관계’이다. 아이들이 세상을 구하는 서사. 그것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기성세대가 모두 만들어내고 그것에 피해를 보는 것도 아이들, 또 그것을 구원하는 것도 아이들이라는 줄기는 어느 시대에나 잘 통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구원자로 삼는 서사가 흔히 빠지는 함정은 아이들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사회적인 위치는 물론이고 신체적, 정신적 한계도 존재한다. 그들이 가진 무기는 덜 계산적이며 더 적극적인 모습. 단지 그것뿐이다. 물론 그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육억이천삼백이십일곱가지 정도는 있겠지만 서사의 모든 것을 그것으로 마무리 지어서는 곤란하다. <기묘한 이야기>는 이점을 간과하지 않은 듯 보인다. 윌의 어머니와 마을의 보안관. 그리고 소년보다 조금 더 어른인 윌의 형과 마이클의 누나까지. (아! 스티브 해링턴을 빼놓으면 서운하겠다. 그는 이 시리즈를 보다 입체적으로 만들어준 일등공신이며 양아치다.) <기묘한 이야기>에서는 소년들은 소년들이 할 일을 하고 어른들은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을 한다. 그들은 각자에게 부여된 임무를 완벽히 행하려 애쓰는데 이것은 극의 시작을 알렸던 보드게임 <던전 & 드래곤>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던전 & 드래곤>은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가 각자 전사, 힐러, 마법사 등의 직업을 갖고 던전에 뛰어든다. 마법사는 절대 전사만큼의 체력을 가질 수 없으며, 힐러는 치유 마법을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사의 등 뒤에 숨어있어야만 한다. 말하자면 그들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제대로 행하지 않거나 벗어나려는 순간, 게임은 붕괴하고 만다. 바로 이점에서 <기묘한 이야기>의 캐릭터들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일종의 순수함이 있다.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또한 자신의 역할만을 해내려는. 어떻게 보면 획일화된 느낌마저 드는 캐릭터들로 하여금 드라마는 일종의 현실성을 부여받는다. 또한, 모두가 히어로일 필요는 없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도 함께 전하며 일종의 위안마저 주는 것이다. 


앞으로 이 시리즈가 어떻게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판을 짜려면 무한히 짤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이 주인공인 콘텐츠가 피할 수 없는 문제인 “아이들은 성장한다. 급속도로.”라는 명제가 있으니 이 필연적인 한계가 다가오기 전에 서둘러 시즌3을 만나고 싶어진다.



작가의 이전글 동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