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 한 명의 스즈메, 어중간한 그 어디쯤에 서있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亀は意外と速く泳ぐ (2005)

by 시옷이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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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중간함, 평범, 애매, 모호.


당신은 '어중간함'을 사랑할 수 있나요?

온몸으로 나만의 것, 나다움을 마음껏 표현하는 시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것'들은 점점 더 희미해집니다.

형체를 알아볼 수도, 기억할 수도 없게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어중간 한 것들이 나를 구성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면 끝없는 자기 혐오에 빠지게 되죠.

외부의 세상은 물론, 내 세상에서조차 주인공 자격을 박탈당하는 기분을 느끼는 건 누구나 괴로운 일이니까요.




여기, 그 '어중간함'을 한순간에 대단하게 만들어 버리는 유쾌하고 다정한 영화가 있습니다.

매일 거북이에게 밥을 주었냐는 남편의 안부 전화로 하루를 시작하는 평범한 가정주부, 스즈메.

어느 날, 가로등에 아주 조그맣게 붙어있는 스파이 모집 공고를 우연히 발견하고

여러모로 의심스러운 스파이 활동에 뛰어들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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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스파이 활동을 하는 방법은, 놀랍게도 '눈에 띄지 않고 평범하게 지내는 것'인데요.

보통 '스파이'라 함은 비밀 작전을 맡아 완벽히 수행해내는 비범한 사람을 뜻하는데, 그녀는 스파이임에도 너무나도 평범한 임무를 맡게 된 것이죠.

심지어 그녀는 언제나 눈에 띄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저 그대로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인 셈.

허나, 스파이가 된 다음날, 그녀는 '평범'에 의문을 품게 됩니다.


"거북이 밥을 어떻게 줘야 평범한걸까?"

"이불을 어떻게 널어야 평범한거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일상에도 여러모로 뒷모습이 있는거다"


큰 생각 없이 했던 모든 행동들을 어제와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할까요.

시선을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 그녀는 살짝의 설렘과 활력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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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의 스파이 면접을 보고 코칭을 했던 에츠코, 시즈오 부부는 꽤 의미심장한 말들을 많이 남깁니다.

여기에서 의미심장하다는 건, 그 의미를 계속 곱씹어보게 된다는 의미인데요.


"가만보자. 너무 평범해서 반대로 비범한거 아니야?"

"굉장히 평범해서 스파이에 딱이야"

"다음엔 뭐할까 생각하면서 싱글대기"


놀리는 듯, 우스꽝스럽다가도 아무렇지 않게 평범을 추켜세우는 그들의 화법이 괜히 밉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묘한 해방감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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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방감은 라면 가게 아저씨와의 대화를 듣고 나면 거대한 위로로 바뀌어 버려요.


"아무나 못 만들지, 그런 맛.

눈에 띄지 않는 맛.

굉장하지. 맛있게 하는 건 어쩌면 간단한거야.

어쩌다 들렀을 때 먹을 만한 어쩌다 먹는 맛이라는 게 어려운거지.

다들 여기 라면 어중간하다고 해요.

대단하네. 작전 대성공!

그래도 그런 실력이면 맛있게 만들 수 있지?

당연하지.

언젠가 원하는대로 맛있는 라면을 만들고 싶어."


마치 평범을 의도를 갖고 '선택'한 듯한 라면 가게 아저씨의 말은

평범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 아닌 선택지 중 하나로 만듦과 동시에

평범을 '눈에 띄는 것'보다 우위에 위치하게 합니다.

어찌보면 평범을 비범으로, 비범을 평범으로 한 순간에 바꾸어 버리는 순간이랄까요?

평범한 맛을 '만든다'고 표현하는 아저씨.

어중간한 맛의 라면에 눈물 흘리자, '절묘'하게 맞춘 간이 바뀐다며 타박하는 아저씨.

스즈메가 그 어중간한 맛이 나는 라면을 먹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던 이유를 알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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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의 친구, 쿠자쿠.

그녀는 마치 신발안에서 돌아다니는 자그마한 돌 같달까요.

애써 무시하고 싶지만, 자꾸만 발을 간지럽히며 내 신경을 건드는 존재.


무얼해도 빛나고, 무얼해도 남다른, 그야말로 인생의 센스를 갖춘 쿠자쿠는 스즈메의 평범을 더욱 부각시켜요.

그런데 쿠자쿠도 의외의 말을 합니다.


"네가 부러워. 이것저것 많이 하다 보면 말이야, 살아가는 의미를 알 수 없게 돼버려."


이 말에 깊이가 있다거나, 엄청난 위로를 받았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습니다.

쿠자쿠의 성격이라면 더욱 생각나는대로 뱉었을 확률이 높죠.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군가를 부러워한다는 것, 그 의미는 잘 전달이 된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래서 의미도 나름이다.


이 영화를 다섯 번 보고 위의 글귀를 일기장에 끄적인 뒤,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물을 때마다 항상 이 영화로 답했습니다.

어찌보면 구닥다리 조언같기도, 당연한 말인 것 같기도 한 이 문구가 가슴 속에 다정히 오래 남았거든요.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할 것인가?

저는 꽤 오랜 생각 끝에, 아래와 같은 답을 냈습니다.

나의 평범, 애매, 모호를 의식적으로 사랑해야겠다.

나의 평범과 애매와 모호에게 의미를 줘야겠다.

그래서 언젠가 원래부터 진정으로 나의 평범, 애매, 모호를 사랑했던 것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스즈메가 쿠자쿠를 구하러 가는 장면으로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마치 '평범'이 '비범'을 구하러 가는 것 같다고, 평범도 비범을 구할 수 있는 존재라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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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정보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2005년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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