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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쌤작가 Jun 03. 2023

인생도 위탁이 되나요?

'뚜 르르르' 익숙한 전화 걸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에는 땀이 난다. 난 아닌 줄 알았는데 알보고면 전화 공포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전화를 안 받았으면 좋겠다. 


  "딸깍, 네 대성유통입니다~"


딴생각을 하는 사이 전화가 연결되었다. 몇 번이나 연습했던 멘트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온라인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타니스 대표 강ㅇㅇ 입니다. 귀사에서 취급하고 계시는 생활용품을 제가 도매로 공급받을 수 있는지 문의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이제 겨우 사업자등록을 했고 아무 물건도 팔고 있지 않는 온라인스토어 하나 달랑 가지고 있지만 그럴싸해 보이도록 나를 '대표'라고 소개했다. 얼마나 규모 있는 회사인지, 한 달 매출은 얼마인지 등등, 나의 경력을 물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사이 전화기 너머로는 무미건조한 대답이 들려왔다. 


"아, 네 도매계약 관련해서는 저희 이사님과 직접 통화하셔야 하고요, 전화번호 알려 드리겠습니다."

 

전화번호만 알려주고는 그 직원은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런 전화를 많이 받아 본 듯 귀찮음이 느껴졌다. 그 직원이 불러준 '이사'라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었다. '조금 있다가 다시 할까?' 하는 얄팍한 마음이 드는 순간, 쇠뿔도 당김에 빼야 뭐라도 될 것 같아 바로 전화를 걸었다. 


"뚜 르르르.." 다시 들려오는 익숙한 통화음. 한참이나 기다렸지만 이번에는 내 마음이라도 알아챈 듯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왜 안 받지, 바쁜가? 회의 중인가?' 왠지 모르게 안심되는 마음을 억누르며 전무한 나의 온라인판매 경력을 어떻게 포장할지 계속 머릿속으로 연습을 했다. 


'좀 더 준비되면 그때 다시 전화를 걸까?' 미루고 싶은 충동이 계속 들었다. 온갖 핑계와 변명거리가 머리에 떠올랐다. 항상 이런 식이다. 하기로 다짐한 일을 지금은 안 해도 되는,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유를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지금 이것을 돌파하지 않으면 내 삶도 발전이 없을 거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  이럴 때는 생각을 줄이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딸깍, 네, 최ㅇㅇ 입니다." 

"이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온라인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타니스 대표 강ㅇㅇ 입니다. 귀사에서 취급하고 계시는 생활용품을 제가 도매 공급받을 수 있는지 문의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똑같은 멘트를 반복했다. 아주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 


"혹시 지역이 어디세요?" 

"아, 네 용인입니다."

"네, 전화로는 사실 답변을 드리기가 힘들고요 한번 찾아오실 수 있겠어요?"

"네네 방문 가능합니다. 언제쯤 방문을 드리면 좋을까요?"


최이사에게 정확한 주소를 확인받고, 날짜와 시간을 정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최이사와 만나기로 한 그날이다. 회사에는 연차를 내고, 네비에 최이사가 알려준 주소를 찍었다. 거의 2시간이나 걸린다. 같은 수도권인데도 이렇게 멀다니.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을 향해 차를 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김포대교를 건너며 바라본 한강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뭔가 비장함이 묻어나는 나의 모습을 응원이라도 해주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이대로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불안함 때문이었다.  직장생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결혼도 하고 아들이 태어났다. 자연스럽게 아내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나 하나의 월급으로 가족 3명이 먹고살아야 했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모자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3년 뒤에 입주할 집을 분양받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저축해 놓은 것도 거의 없어서, 3년 뒤에 새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반드시 많은 대출을 받아야 했다. 최저이율로 계산을 해도 월 상환금액이 만만치 않았다. 그때쯤이면 아내가 다시 일을 할 수도 있지만 나도 어쨌든 대비를 해야 했다. 


월급 외 소득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직장이 월급을 그렇게 많이 주는 곳은 아니지만 대신 출퇴근이 자유롭고 코로나이전에도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비교적 여유로운 곳이다. 일반 직장인보다 조금 유리한 부분이라면, 바로 시간이 많다는 것이고 그 시간을 활용해 뭐라도 해서 소득을 늘리기로 결심했다. 


유튜브에 '부업'이라고 검색을 했다. 짠테크부터 시작해서 주식투자, 부동산투자, 온라인셀러, 구매대행, 해외판매 등등 온갖 돈 버는 방법들에 관한 수많은 영상이 나왔다. 끌리는 영상부터 하나하나 클릭했다. 점점 내 유튜브 홈화면에서는 돈 버는 영상들도 가득 찼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버 신사임당의 채널에서 '창업다마고찌'라는 콘텐츠를 보게 되었다. 백수가 된 자신의 친구를 데려다 놓고 스마트스토어로 물건을 파는 법을 하나씩 가르치는 실전 돈 버는 다큐 콘텐츠였다. 결국에는 월 천만 수익 목표를 초과 달성하며 해당 시리즈는 끝났다. 홀린 듯 그 영상에 빠져들었다. '이거다!' 아무것도 없는 이 사람이 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본격적으로 스마트스토어로 물건 파는 법을 공부했다.

스마트스토어에 관한 모든 궁금증을 하나씩 차분히 해결해 주었던 것은 신사임당의 '스마트스토어 강의'였다. 사업자개설하는 것부터 시작해 아주 사소한 디테일까지 하나하나 알려주는 강의였다. 나에게 딱 맞았다. 강의를 다 듣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행동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강의에서 배운 대로 관심 있는 분야의 키워드를 정리하고 제품을 소싱하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가장 쉬운 방법은 온라인 도매사이트의 물건을 바로 사 오는 것이었다. 근데 그건 내가 생각해도 너무 쉬웠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나의 스마트스토어 스승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비록 그들처럼 바로 해외에서 제품을 소싱해 오기는 힘들겠지만 다들 하는 것 말고 나만 아는 물건 공급처를 찾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온라인 사이트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내가 원하는 물건이 '대성유통'이라는 곳에서 공급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검색을 통해 연락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스마트스토어 셀러가 되기로 다짐한 그날의 기억들을 회상하다 보니 어느덧 최이사와 약속한 장소가 가까워졌다. 왠지 빈손으로 가면 안 될 것 같아 근처 편의점에 들러 비타 500 한 박스를 샀다. 약속한 장소에 가까워질수록 인적은 드물어지고 눈에 띄게 화물차와 트럭이 많아졌다. 논과 밭들 사이사이에는 온갖 창고와 공장들이 들어서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거대한 창고 앞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까지는 30분이나 남았다. 혹시나 늦을까 봐 일찍 서둘렀더니 너무 일찍 도착했다. 바로 전화를 할까 망설이다 왠지 방해가 될 것 같아 약속시간까지 차에서 기다리며 관찰을 시작했다. 


대성유통 창고는 굉장히 컸다. 큰 두 개의 창고가 나란히 있었고 두 개를 합치면 어림잡아 축구장 크기만 해 보였다. 창고의 커다란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사람들은 굉장히 분주해 보였다. 대형 트럭은 창고 앞에 서서 고래만큼 큰 화물칸을 열었고, 지게차는 분주하게 물건들을  트럭에 싣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직원들 또한 바쁘게 움직였다. 뜨거운 여름 햇살 탓에 다들 엄청나게 많은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그 누구 하나 쓸데없는 움직임은 없어 보였다. 마치 잘 조직된 개미들 같았다. 

약속시간이 5분 정도 남았을 때쯤 차에서 내려 해당 창고로 걸어갔다. 왠지 그 현장에 어울리지 않는 나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결국 바쁘게 움직이던 한 사람을 붙잡고 말을 걸었다. 

"혹시 여기 사무실이 어딘가요?"

나를 흘깃 쳐다보고는 그는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로 들어가세요" 


곧바로 다시 바쁘게 움직이는 그를 뒤로 하고 그가 가리킨 쪽으로 걸어가니 '사무실'이라고 쓰인 안내판이 있었다. 두 개의 출입문을 연달아 지나자 유리문이 보였고 그 안에 사람들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조심스럽게 인사를 했고 한 직원이 말을 건넸다. 


"어떻게 오셨어요? "

"아 네, 최이사님 만나러 왔는데요 혹시 지금 계신가요?"

"잠시만 저기에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제가 내려오시라고 연락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사무실 한편에 마련된 소파에 앉았다. 사무실 중앙에 있는 프린터는 시끄럽게 계속 뭔가를 출력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자주 보던 택배 송장이다. 박스에서 맨날 손으로 뜯어내어 버리던 그 택배송장. 수북하게 테이블에 쌓여있는 송장을 보며 생각했다. '와 하루에 저렇게 많이 발송된다고?'


잠시 후 자동유리문이 열리고 한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180 정도의 키에 90킬로는 될 것 같은 건장한 체격이었다. 어두운 색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안경을 쓰고서 당당한 걸음걸이로 사무실에 들어섰다. 한눈에 그가 바로 내가 기다리고 있는 최이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전화드린 타니스 강ㅇㅇ 입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위로 같이 올라가시죠."


그는 이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별다른 장식이 없고 그리 크지 않은 방이었다. 한쪽 구석에는 그가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책상과 컴퓨터가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는 심플한 4인 책상이 있었다. 그 책상에 최이사와 마주 앉았다. 자리에 앉자 그가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는 '대표'라고 쓰여 있었다. 사실 그는 대표이사였는데 직원들은 이사님이라 부르는 듯했다. 나도 온라인셀링용으로 미리 만들어 둔 명함과 비타 500 한 박스를 함께 건넸다. 


"용인에서 여기까지 오시기 힘들지 않으셨어요? " 그가 내 안부를 물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오랜만에 서울 구경하면서 잘 왔습니다."

가벼운 대화를 하며 힐끗힐끗 둘러본 방의 벽면에는 온갖 생활용품과 주방용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간단한 아이스브레이킹이 끝나자 그가 본론을 꺼냈다. 


"저희 회사는 어떻게 알고 연락을 주셨어요?" 

안부를 묻던 다정한 어조가 급격하게 딱딱해졌다. 왠지 취조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미리 수없이 연습했던 시나리오대로 나는 말을 이어갔다. 


"제가 인터넷에서 너무나 마음에 드는 제품을 발견을 했는데요, 제가 직접 팔아보고 싶어 공급처를 찾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제품을 제가 공급받을 수 있을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혹시 온라인 판매는 얼마나 해 보셨어요? "


사실 온라인 판매는 처음이다. 줄곧 회사만 다니고 있었으니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아무 경력이 없으면 물건을 공급받기 어려울 것 같아 애매모호하게 둘러댈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준비해 갔다. 그런데 마치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그의 눈빛을 보니 왠지 거짓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솔직히 이야기했다. 


"사실 온라인으로 판매를 해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일단 스마트스토어로 시작해서 쿠팡까지 확장할 계획이고요, 블로그 및 인스타 마케팅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최대한 열정 가득한 눈빛과 말투로 대답했다. 잠시 몇 초간의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그가 말을 이어갔다. 


"이 바닥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많이 어려울 거예요."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꼭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당장 보여드릴 순 없지만 잘할 자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의지를 단호하게 표현했다. 


진심이 전해진 것일까. 그는 자신이 공급해 줄 수 있는 물건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기 뒤편에 있는 이런 주방용품들도 있고요, 생활용품, 캠핑용품등 거의 3천 개가 넘는 제품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온라인 판매를 직접 하기 때문에 저희가 제시해 드리는 가격은 반드시 지켜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사입을 하실 생각이신가요? 창고는 있으세요? "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이 오갔다. 

"아직 창고는 없고요 곧 마련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혹시 위탁도 가능한가요? "


사입을 하게 되면 물건을 한 번에 대량 구입해서 보관을 한 뒤, 주문이 들어오는 것에 따라 내가 직접 포장과 발송을 해야 한다. 재고관리를 직접 할 수 있고 단가를 좀 더 싸게 받아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물건을 보관할 창고도 필요하고 매번 포장과 발송을 직접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나같이 부업으로 하려는 직장인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한 매입 형태다. 


반면에 위탁판매는 부업을 하려는 직장인에게 최적의 방법이다. 나는 온라인으로 주문만 수집하고 실제 포장과 발송은 도매처에서 직접 하는 방식이다. 사입보다 단가가 조금 비싸고 재고관리가 어려운 점이 있지만 실제 투자되는 시간이 적고 리스크가 거의 없는 방식이다. 


"네, 위탁도 가능합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하시는 것이 더 좋으실 거예요."


어느새 그는 나에 대해서 다 파악을 한 모양이다. 전혀 온라인 판매 경험이 없다는 것도, 부업으로 시도를 해 본다는 것도, 사실 사입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도 말이다. 그리고 우려 섞인 목소리로 어떻게 물건을 올려야 하고 어떻게 판매하는 것이 좋은지 몇 가지 팁을 직접 알려줬다. 


"네, 감사합니다. 한번 열심히 팔아 보겠습니다!"

"네, 파이팅 하시고요, 물품 리스트와 주문방식, 계약서 등은 저희 직원을 통해서 메일로 안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준비되시면 바로 판매 시작 하시면 됩니다. "

"네, 대표님 감사합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미팅은 잘 끝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 말고도 그 업체의 물건을 받아 판매하는 셀러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한 달에 억이 넘는 규모로 물건을 사입해 가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나처럼 위탁으로 하는 셀러도 많이 있었다. 직접 찾아오라고 했던 것은 기업에서 마지막에 진행하는 임원면접 같은 거였다. 그래도 같이 사업을 하는 것인데 얼굴은 한번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나는 부업을 시작했다.


스마트스토어에서 처음으로 주문알림이 왔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게 진짜 되는 거야?'라는 끊임없는 불안과 걱정에 멘탈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진짜 주문이 들어온 것이다. 옆에 있던 아내는 환호성을 질렀다. '이게 진짜 되는구나!' 


몇 달이 지나고 월 백만 원 순수익을 돌파하며 자신감이 붙었다. 판매하는 물건도 늘렸고 쿠팡에도 제품을 등록했다. 모든 사람을 힘들게 만들었던 코로나 시기가 오히려 나에게는 기회였다.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전보다 더 많은 물건을 주문했고 덩달아 내 스토어 매출도 계속 성장했다. 어느덧 스마트스토어는 2개가 되었고 쿠팡스토어 1개를 합쳐 총 3개의 쇼핑몰을 운영했다. 대량주문도 경험해 보고, 배송도중 물건이 분실되어 택배사와 며칠간 씨름을 하기도 했다. 진상고객도 상대해 보고 고객이 남겨준 정성스러운 후기를 보며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종합소득세 신고도 해 보고, 세무사에게 일도 맡겨 보았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주문을 정리하여 출근 전에 발주를 하고, 퇴근 후에는 발송등록과 밀린 AS를 처리했다. 시간이 생길 때는 강의를 듣고 물건을 등록했다. 어느덧 부업으로 버는 돈이 내 월급을 넘어섰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통장에 돈은 쌓이고 덩달아 내 마음도 여유로워졌다. 부업으로 번 돈은 거의 쓰지 않고 미래를 위해 주식과 개인연금에 투자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기를 든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거의 3년 동안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최이사의 물건들을 위탁판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모든 비극이 그리 하는 것처럼, 나에게도 어둠의 골짜기가 찾아왔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한다던 '침체'.  


사실 약 반년 전부터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스마트스토어 로직이 바뀌면서 물건들의 노출이 조금씩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파는 물건의 경쟁자도 더 많아졌다. 제품의 단가는 계속 올랐고 그에 비해 판매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처음 몇 달 만에 달성했던 월 수익 100만 원도 이제는 어려워졌다. 


어느 날 새벽에 문득 깨달았다. 내가 초심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열정 넘치게 최이사에게 말하던 내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마치 기계처럼 매일 주문만 처리하고 있었다. 새 상품 등록도 하지 않았고, 고객의 후기는 관심도 없어졌다. 주문이 줄어드니 자연스레 투입되는 나의 시간도 줄어들었고 그만큼 편해졌다. 편해진 만큼 그 상황에 안주했고 애써 눈을 돌려 다른 부업거리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꼴랑 물건 좀 온라인으로 팔아 봤다가 거만해진 걸까. 세상은 바뀌어 가는데 나는 그대로였다. 세상이 변하는 만큼 따라가지 못했고 그래서 뒤쳐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리스크가 없이 시작했던 나의 도전은 금방 안정감을 불러왔고 그래서 더욱더 리스크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 이중생활은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건만 위탁판매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내 인생도 그들에게 위탁하고 있었다.  


이제는 위탁판매를 서서히 정리하고 있다. 내 인생의 주도권을 다시 잡아야만 한다. 처음 온라인판매를 생각하고 꿈꾸었던, 그러나 아직 실현시키지 못한 수많은 꿈들이 있었다. 그 꿈들에게 미안했다. 도중에 멈춰버린 나 자신이 미워졌다.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스스로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 그 누구에게도 나의 인생을 위탁할 수는 없다. 오직 노예만이 자신의 인생을 주인에게 맡긴다. 회사에게도, 그리고 그 어떤 누구에게도 내 인생을 위탁한 상태로는 절대 꿈을, 원하는 삶을 손에 넣을 수 없다.  내가 꾸는 꿈의 크기만큼 어려운 과제와 도전은 피할 수 없는 관문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유튜브에는 코로나 시기에 온라인셀링을 시작했던 사람들 중에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대형 유튜브 채널에서 인터뷰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사람도 나처럼 신사임당의 '창업다마고찌' 콘텐츠를 보고 온라인 셀링을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그와 나의 격차는 하늘과 땅만큼 벌어져 있었다. 


도대체 왜 나만 이렇게 뒤쳐질까. 답은 명확했다. 그들은 초심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실천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초심을 잊었고 도중에 멈추었다. 그게 전부다. 만약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면 아마 지금쯤 훨씬 더 성장해 있었을 것이다. 하고자 다짐한 일을 꾸준하게 오래 한다는 것이 정말로 너무나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는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뚜 르르르" 익숙한 전화 걸리는 소리. 이제는 가슴이 두근대지도, 손에 땀이 나지도 않는다. 얼른 빨리 전화를 받았으면 좋겠다. 


"딸깍, 네, 대동스포츠입니다." 

나는 열정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타니스 대표 강ㅇㅇ입니다. 대표님께서 수입하고 계시는 물건 중에 ㅇㅇㅇ 을 제가 직접 팔아보고 싶습니다. 물건을 좀 공급받을 수 있을까요? "


"혹시 오프라인 판매이신가요? "

"일단 온라인으로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고요, 일정 수준 안정적인 매출이 확보되면 오프라인 매장을 열 계획입니다. 이미 상가임대를 알아보고 있기는 합니다."


"저희는 위탁판매 안됩니다. 최초 주문은 천만 원 이상 해 주셔야 하고요. 가능하시겠어요? "

"네, 가능합니다. 물건 리스트 주시면 제가 금액에 맞춰 견적 요청 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문자로 간단하게 물건 리스트 보내드릴 테니 회신 주세요. 견적서 확인하시고 물품대금 입금해 주시면 다음날 바로 물건 보내 드리겠습니다."

"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그는 물건 리스트를 문자로 보내왔다. 물건을 골라 견적을 요청했고 다음날 견적서를 전달받았다. 총금액 10,240,000원. 전달받은 계좌로 바로 입금을 했고 며칠뒤 큰 박스 몇 개를 받을 수 있었다. 제품 사진부터 찍으며 나는 다시 꿈을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더 이상 나의 삶을 그 누구에게도 위탁하지 않기로 했다. 실패를 해도 내가 하고, 성공을 해도 내가 한다. 그게 진짜 인생이 아닐까. 내 꿈을 위한 것인데 천만 원도 투자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리스크를 짊어지고 목표로 한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네, 대표님 안녕하세요~ 물건 추가로 사입하려고요. 견적서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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