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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이화니 Mar 08. 2022

거울을 보지 않겠다

어린아이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 나이 든 우리는 거울 속에서 산다. 아침에 최고 먼저 하는 건 거울 보는 것이다. 양치하고 세수하면서 얼굴을 살핀다. 샤워하면서도 얼굴과 몸을 본다. 매일 보는 얼굴이지만 지겹지도 않다. 주름살이 늘어가고 머리털 빠져가고 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본다. 늙어가는 현존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스킨과 크림을 얼굴에 발라가며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졌는지 살핀다.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심하다. 이 옷 저 옷 바꿔 가며 거울 앞에서  패션쇼를 벌인다. 화장하는 여자는 더하다. 세포 관찰 수준으로 하나하나 얼굴과 몸을 살핀다. 점 하나 털 하나 그 눈동자를 피해 갈 수가 없다. 거울 속에 아예 들어가 버린다. 평생 계속하는 거울 보기는 우리가 만든 최고의 습관이다. 


무의식에서도 얼굴을 쳐다본다. 잠자다 일어나 화장실 갈 때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거울 앞에 선다. 이렇게 자세하게 보아 왔으니, 모델 없이도 얼굴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실 그릴 수 없다. 오늘 아침에 본 얼굴은 내 얼굴이 아니라 생각한다. 더 좋은 얼굴이 저녁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기대를 듬뿍 발라 거울을 쳐다본다. 내일을 기다린다. 내 얼굴을 난 그릴 수 없다. 수천번, 수만 번 그리고 지금도 보고 있지만.


헬스장은 온통 거울이다. 앞에도 옆에도 뒤에도 거울이다. 3차원 입체 영상을 쳐다보며 움직이고 뛴다. 거울 속 자기가 없으면 운동도 못할 것 같다. 거울이 비추는 형상이 바로 내 모습이다. 물에 비친 제 모습에 넋을 읽고 꼼짝 않고 샘가에 앉아있는 나르키소스처럼, 우리는 거울을 본다. 자기 사랑의 불길을 거울 앞에서 태우고 있다.


그대의 다정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내 가슴 안에서 희망이 샘솟는다. 내가 손을 내밀면 그대도 손을 내밀고, 내가 웃으면 그대도 웃는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 그대도 고갯짓으로 화답한다. 그대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그대는 분명히 내 말에 응답하고 있다. 내 귀에 닿지 않지만. (이윤기, 그리스로마신화)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거울을 보기 시작했다. 남과 다른 내 이름이 소중 했다. 남과 다른 내 것이 생겼다. 그것을 지켜야 한다. 놓치거나 잃을 수 없다. 내가 행한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것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너와 다르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내 것을 얻었다. 내 지식, 내 명성, 내 가족, 내 집, 내 직장.


나이가 들면서 거울이 보였다. 과거란 것에서  획득한 것이 생길 때부터 거울을 보기 시작했다. 과거는 버려진 시간이 아니다. 과거는 내가 꼭 가져야 할 재산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를 만들었기 때문에. 현재는 어제로 만들 때문에. 과거로 돌아간다. 거기가 아니면 지금이 없다. 내 자랑이 없다. 내 업적도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난 거울을 본다. 미래는 불안하고 두렵다. 거기로 가기가 꺼려진다. 여기 머물고 싶다. 현재를 즐기며 가진 것에 안주하고 싶다. 과거를 본다. 어제를 보고 거울을 본다. 나르키소스 처럼 나를 쳐다본다. 내 그림자를 본다. 내가 내게 갇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거울을 본다.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닿지 못하는 자기를 본다. 입맞춤이 이루어지지 않는 가짜 사랑에 머물러 있다. 달아나는 영상을 보기 위해 오늘도 거울을 본다.


2022년 새해에는 거울을 보지 않겠다. 어제를 살지 않겠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겠다. 미래를 보고 싶다. 달려가고 싶다. 장난감을 내 던지고 아이가 뛰어가듯이 새날을 향하고 싶다. 무거운 짐 지고 사막을 지나는 낙타가 되지 않겠다. 끝없이 싸우는 사자도 되지 않겠다. 순진무구하며 아무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아이가 되고 싶다. 과거를 쳐다보지 않겠다. 소망 가지고 열심히 내일을 살고 싶다. 미래라는 광야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 나서고 싶다. 어제가 만든 지금의 모습만 보지 않겠다. 물 파문에 사라지는 내 모습 보고 싶지 않다.


현재에 머무는 것은 죽는 것. 젊음의 꽃 봉오리 속에 갇혀 죽어가는 나르키소스 되지 않겠다. 새해에는 거울을 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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