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이다. 2층 창가에 앉았다. 기장 시장에 갔다가 집 가는 길에 여기 들렀다. 큰 벚나무 한 그루가 창가에 바싹 붙어 바람에 흔들거린다. 연분홍 꽃이 벌써 많이 떨어지고 있다. 이제 반도 남아있지 않은 듯하다. 네다섯 쪽으로 갈라진 꽃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불어오는 봄바람에 놓쳐버리고 꽃받침은 진홍빛 얼굴을 하며 하늘을 향하고 있다. 애써 피운 고운 꽃을 잃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썼던가? 꽃 암술과 수술을 지금도 꼭 붙들고 있다. 거친 바람에도 이것만은 놓지 않았다. 마치 대머리 아저씨 몇 개 남지 않은 머리카락처럼 꽃받침 위에 삐죽이 솟아나 있다. 그 모습이 그래도 예쁘고 좋다. 며칠 전까지 연분홍 빛으로 풍성하더니 이제 나무는 빈약한 진홍빛으로 변해 가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좋다. 사실 이 모습을 이렇게 자세히 본 적이 없다. 꽃샘추위를 지나면서 꽃을 잃어가는 꽃받침의 슬픔을 본 적이 없다. 꽃비가 내린다고 즐거워하며 함박웃음으로 동영상을 찍기만 했지 생각도 못했다. 꽃받침이 진분홍으로 붉어진 이유를 알았다. 그건 애써 피워낸 자식을 잃어버렸음 이리라. 4월은 잔인한 계절이라 어느 시인이 노래했지. 카페 2층 창가로 뻗어오며 펼쳐지고 있는 벚꽃의 낙화를 쳐다보는 지금, 이제야 알았다. 바람이 분다. 꽃비가 내린다. 조각 연분홍 꽃잎이 떨어지고 꽃받침도 흔들거린다. 가지 끝에선 잎이 피어나고 있다. 아직 펼쳐지지 않았다. 웅크려 일어날 채비를 하고 있다. 벌써 짙은 연두색이 되었다. 그것도 함께 흔들거린다. 햇빛이 꽃잎에 머무른다. 흔들 거리는 명도 높은 빛으로 눈을 환하게 한다. 4월의 따스한 기운이 공간에서 흔들린다. 봄의 하모니가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태양년에 산다. 태양은 생명의 원천이다. 태양빛이 비치는 각도와 양에 따라 생명은 반응한다. 겨울의 비밀이 따스한 은총으로 다시 살아 나온다. 연록의 점들이 신록이 되고 짙은 녹음으로 풍성해진다. 봄, 여름, 가을과 겨울. 태양이 주는 계절 속에서 우리는 한 살, 두 살 나이 먹으며 그렇게 산다. 그러나 우리는 계절과 시간으로 정의하고 분리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세월 속에 녹이며 산다. 아름다운 추억과 슬픔들이 시간의 간극 속에 겹겹이 들어가 있다. 콘크리트 속에도 공기를 품은 구멍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 삶 속엔 공극이 없다. 그 속엔 우리가 누군가와 만들어 낸 짙고 엷은 자국들로 가득 차 있다. 희망으로 가슴 부푼 기쁨도 있고, 관계 속에서 지쳐 축 처진 영혼도 있다. 소망을 담은 아쉬운 시간들도 있다. 봄날의 꽃노래 같은 시간도 있다. 태양년의 시간은 일정하게 지나가며 우리를 늙게 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똑같은 시간이 아니다. 내 속에 들어와서 다시 재단되어 나를 만든다. 양장사가 손님에 맞는 옷을 만들기 위해 자를 들이대며 여기저기를 자르듯이, 그리고 길게 재봉질하듯이, 우리도 그것을 재단한다. 행복이 시간을 늘려 놓기도 한다. 걱정과 슬픔이 그것을 짧고 짙게 만들기도 한다. 평화로운 색채로 장식되기도 하고, 예쁜 꽃잎이 날아들기도 했다. 그리고 난데없이 불어 닥친 거친 비바람에 얼마나 놀라고 떠밀려 가며 만신창이가 되었던가? 어느 때는 미풍에도 폐가 열리고 가슴까지 생기도 얻었다. 행복이 나를 공간으로 날아다니게도 했다. 그것들은 시간 속에 감추어져 지금은 잘 보이지 않지만,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의 틈새 속에 숨겨져 있다. 우리는 자신이 소유한 것에 의해서만 존재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곁에 있는 것만 소유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지금은 곁에 있지 않지만, 숨겨진 기억들 속에서 우리는 산다. 그것들은 지금 까마득히 먼 곳에서 살고 있지만, 어느 한순간에 내 앞에 다가와 나를 놀라게 한다. 푸르스트 말처럼 '가장 명철한 의식 속으로 추억이라는 함대 전체가 순항'하며 내 앞에서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는 단순히 태양년의 시간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태양의 위치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다시 재단된 시간으로 산다. 새롭게 정의된 '감정년'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 속에서 프르스트의 이 단어를 접하는 순간, 나는 온몸이 굳어 버렸다. 주변을 에워싼 수많은 글자 들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혜성처럼 이 단어가 나타난 순간 다른 것들이 뒷걸음치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서서히 빛을 잃어 가더니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감정년'이라는 세 글자 만이 샛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프르스트는 천재다. 세상의 이치를 모두 아는 전지자다. 그것을 언어로 엮어내는 마술사다. 그 사람이 말해야 우리는 안다. 그 사람이 가르쳐 주어야 그제서야 느낀다. 내가 이미 지니고 있지만 몰랐던 비밀을, 그는 100여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깊이 감추어 두었다. 2022년 어느 봄날에 그는 비밀문을 열어 주었다. 아내와 어느 커피숍 2층에 앉아 행복한 4월을 만들고 있는 지금, 그는 다정히 다가와 속삭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