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때문에 망했다
어제 아내에게 한말이다. 가족 톡방으로 옮겨간 이 말은 뉴욕과 서울에서 날아든 순간 답글로 카톡을 메웠다. '그래 재밌다. 너무 잔인하다. 나도 망했다. 그걸 왜 봐.' 밤 12시에 찾아든 즐거움으로 신나게 웃었다. 사실 내게는 몇 년 만의 일탈 사건이다. 저녁 9시만 되면 내리누르는 눈꺼풀 무게 때문에 의자에서 머리를 하염없이 흔들어 대는 나다. 그런 내가 이틀간 새벽 1시까지 TV 앞을 지켰다. 귀먹음이 뚫리는 기적의 순간을 혹시나 놓칠세라 샤워하고 옷 입는 시간까지 NBC 뉴스를 틀어 대는 내게, 이 사건은 상상하기 어렵다. 신경 쓰지 않아도 들리고 보이는 평범을 이렇게 장시간 즐기는 것은, 요즘 내게 찾기 힘든 장면이다. 어쨌든 즐겁고 재미있게 보았다. 공감하며 마음 졸이고 안타까워하며 깊게 빠져 들었다.
우리나라 드라마 수준을 재 평가했다. 너무도 쉽고 익숙한 게임이 목숨과 바꾸어야 되는 드리마 설정도 놀랍다. 아이들의 게임이 삶과 죽음의 무시 무시한 표지석이 된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돈만 쳐다보며 사력을 다해 울부짖는 우리 모습이 서글펐다. 5만 원권 지폐 덩이가 가득 찬 황금빛 돼지 저금통은 우리 우상이며 신이다. 덩그렇게 달처럼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갑자기 내 앞에 쏟아지길 기도하며 우리는 돈에게 매달려 있다. 사랑과 우정도 멀치감치 사라져 버렸고 인간 존엄은 없다. 인간 배려는 배움 없는 사람에게서 오희려 더 빛나고 있었다. 세상의 고상한 지식 속에서가 아니었다. 단단해 보이는 강화 유리 바닥판을 밟으며 게임을 이기고 싶지만, 깨진 유리 파편과 함께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만다. 돈을 구하고 얻기 위한 치열한 게임. 오징어 게임은 강요받은 적이 없다. 내가 선택했을 뿐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죽여가며 나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남아 있는 것은 절망뿐이다. 모든 것이 다 사라져 버렸다.
진짜 가난한 사람과 진짜 부자가 같은 점이 뭔지 알아? 그건 인생이 진짜 재미없다는 거야
오징어 게임 1번 참가자 일남 할아버지 말이야. 뇌종양으로 치매까지 있었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좋은 노인이었지. 기훈에게 삶을 양보하며 같이 있어 행복했다고 말하는 장면은 감동이었어. 그런데 그 노인은 엄청난 부자였어. 최후의 게임 생존자 기훈을 만나 자기가 이 게임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화려한 고층빌딩 앞에서 노숙자는 절대 구원받지 못한다고 장담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노숙자는 죽어가는 순간 구원되었지. 그는 바로 그때 그 시간에 죽었어. 그는 이렇게 말했어. '진짜 가난한 사람과 진짜 부자가 같은 점이 뭔지 알아? 그건 인생이 진짜 재미없다는 거야'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 발버둥 치고 돈을 향해 좋아 가느라 인생이 지독히 재미없지. 그리고 큰 부자는 엄청나게 돈을 뿌리며 즐겁기 위해 게임을 즐기지. 오징어 게임 같은 엔터테인먼트를 연출하면서 말이야.
이 노인의 말이 맞는 말일지도 몰라. 돈을 향해 뛰는 사람, 그리고 돈에 매몰된 사람, 돈이라는 허구를 맹목적으로 추구한 사람은 돈에서 즐거움을 찾지. 그런데 그것은 한계도 없고 추구할수록 더 큰 갈증이 생길 것 같아. 돈은 필요한 것이지 행복은 아니지. 그런데 우리는 너무 잘못 배운 것 같아. 돈이면 최고라고 생각하지. 좋은 집, 좋은 차, 화려한 생활, 그것을 우리도 추구하고 있잖아. 모든 것의 목적이며 종착점이지. 이것은 우리 교육과 사회, 이데올로기, 가난이 만들어낸 최고 가짜 뉴스라고 나는 생각해. 돈 앞에 서면 여전히 무너지고 후회하면서 말이야. 욕심과 탐심을 따라가는 것이 평생의 습관이 되어 거스를 수가 없어. 알코올 중독자가 단 한잔의 소주에 다시 중독의 늪으로 맹렬히 달려가듯이 말이야. 매달린 황금을 찾아 뛰는 말들, 돈이라는 먹이에 길들여진 인간의 모습이지.
인생에 큰 의미를 줄 필요는 없어요. 그냥 살아가는 거예요. 즐겁고 행복하게 말입니다
엊그제 유튜브로 본 법륜스님의 말이야. 그분 말씀은 언제나 명쾌하고 단순해. 우리에겐 이미 할당된 시간이 주어져 있지. 어차피 살아 나가야 하지 않나? 죽을 수는 없으니까. 개나 동물들 자세히 살펴봐. 그들도 자기 시간을 소화하며 잘 살고 있잖아. 인도에 갔을 때 만난 개와 소는 정말 행복하게 보이더라고. 분명 먹을 것도 부족하고 인간으로 치면 찌들게 가난한데 말이야. 왜 인간은 행복하지 못할까? 스님 말씀은 욕심 때문이래. 왜 인간은 동물이 가지지 못한 욕망이 있는 걸까? 소위 말하는 농업혁명 이후로 큰 집단 속에서 우리는 발버둥 쳤기 때문 일거야. 불평등 사회 속에서 피해의식이 커져갔고 욕심과 걱정이 생겨났지. 그것이 유전을 거듭하며 다원의 자연선택 제1번 항목이 된 거지. 거대한 시간 속에서의 유전적 습관. 그것을 벗어날 수가 없는 거지. 그것이 동물과 다른 인간 속성이야. 동물은 그냥 편안한데, 인간은 불편하고 불행하지. 그 욕심이 뭔지 알아? 돈이야. 모든 것이 가능한 전지의 능력. 모든 즐거움이 바로 돈의 추구라고 끝없이 우리를 현혹하고 있어. 돈이 적은 우리는 불행한 거라고 계속 속이고 있지.
행복 찾는 오징어 게임을 할 거야
난 불행하지 않아. 오히려 즐거워. 아침에 일어나 새 시간을 움켜쥐는 시간이 너무 좋아. 무릎 꿇고 하나님과 마주하는 30분이 너무 좋아. 정신이 일어나는 기분을 느낄 때도 있어. 격일로 하는 운동은 최고 즐거움이야. 땀방울이 맺힌 신체는 나를 살리는 기분이야. 걸어 올라가는 등굣길도 좋고, 지하철 나만의 시간은 행복하지. 영어 공부 어려워도 계속 노력하는 내가 자랑스러워. 새로운 것이니 쉬울 수가 없지. 그냥 하는 것이 좋아. 책 읽기 즐겁고, 글쓰기는 내 마음을 씻어 내는 것 같아. 난 모든 시간을 즐기고 싶어. 소중하게 아껴가며 그것을 흘려보낼 거야. 스님이 말했듯이, 그냥 시간을 보낼 거야. 즐겁게 말이야. 문제는 반복하는 실천인 것 같아. 습관 말이야. 좋은 습관으로 잘못된 과거를 끊어 내야 돼. 그것은 이론이나 말로 절대 안 되지. 그것이 평등한 거야. 배움과 깨달음이 아니라 실천 말이야. 해야 습관이 되니까. 행복한 습관, 감사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해. 별일 없어도 습관처럼 즐거운 상태. 그것이 되게 살아야 해. 그래. 돈을 향한 오징어 게임을 해서는 안돼. 시간이 주는 오징어 게임을 해야 하는 거지. 마음속 행복을 찾아 나서는 즐거운 오징어 게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