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이화니 Feb 23. 2023

NY Phil 그리고 Yuja Wang

소리가 다르다. 내가 처음으로 듣는 최고의 소리다. 연주회장에 여러 번 갔지만, 이렇게 깨끗하고 고상하고 밝고 깊은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잡음이 조금도 없는 맑은 소리가 관악기에서 흘러나왔다.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오보, 클라리넷, 혼이 만드는 소리에 전율하듯 빨려 들어갔다. 뉴욕필의 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 첫 번째 연주, 롯시니의 Overture to Semiramide. 한 번도 들은 적 없었지만, 뉴욕필이 만드는 소리로 감탄케 했다. 관악의 소리가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물이 긴 깔때기를 통과해 깨끗한 정수가 되듯이, 관을 통해 세상을 나온 호흡의 소리가 정말 좋다. 맑고, 깊고, 모나지 않다. 금속의 소리는 없다. 천상의 소리다. 가브리엘 천사가 부는 나팔 소리다. 천국이 열리는 순간에  어떤 악기가 천국 문을 열겠나? 단연 관악기이다. 오늘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 말했다. 오케스트라의 소리는 관악이 만들어 낸다고. 우리나라 현악 수준은 엄청나게 높다. 가히 세계적이다. 여기 뉴욕필의 바이올린 파트 30 명중에 한국인이 12명이다. 2022-2023년 단원 명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무대에 앉은 머리가 검은 단원은 모두 한국인이다. 그러나 관악에서는 우리나라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여기 앉은 관악 연주자는 얼마나 대단할까? 세계에서 손꼽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고 좋았다.



Yuja Wang이 나왔다. 윤디리, 랑랑과 함께 중국이 나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다. 자타공인 최고 기교파 피아니스트다. 10대 후반부터 연주 활동을 시작해 20대에 유명해졌다 한다. 2007년 보스턴 필하모니 협연자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대타로 나와, 엄청난 기량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한다. 오늘 연주하는 곡은 Magnus LINDBERG 피아노 협주곡 3번, 2022년 작곡한 현대곡이다. LINDBERG는 세계적인 현대 작곡가이며, 뉴욕필 상임 작곡가다. Yuja Wang이 이 곡을 선택한 것은 적절하다. 그의 놀라운 테크닉을 보일 수 있는 기회니까. LINDBERG는 자기의 이곡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다.

It is almost like an opera - it's so rich in it's storytelling. It's huge. In a way, it's the biggest I've written.
 I would almost call it three concertos in one piece. I have a chart of eight different characters that I have arranged like a William Faulkner novel. There are  many stories going on at the same time - you present one, move on to the next one, then return to another one. Every time a story returns, it has something new to say.


유자왕은 피아노에 앉자마자 폭풍 같은 스피드로 건반을 찍어 내렸다. 거대한 이야기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때로는 그 이야기 속에서 빠져나와 다른 이야기를 끄집어내다가 다시 그곳에 함몰되며 새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악장의 구분도 거의 없다. 작곡가 말대로 세 개의 협주곡이 만든 하나의 곡이다.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을 보았다. 끄럽고 복잡하고 싸움 투성이 세상. 그곳엔 화려함도 갈망도 있었다. 난 그곳을 맹렬히 돌진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 느껴지는 혼자만의 세상. 외롭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곳을 떠날 수 없기에 나는 거기에 산다. 그곳을 벗어나려고 거기에 산다. 그리고 그곳에 있고 싶어 거기를 간절히 찾는다. 그러나 또다시 밀려드는 회한으로 스토리는 만들어진다. 유자왕의 소리는 그랬다. 오늘 뉴욕필과 유자왕의 만남이 나에게 주는 스토리는 그랬다. 검은 가죽 스키니에 미니 스피스를 입은 유자왕의 피아노는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특이하게 인사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가식 없는 젊은 여자의 당당함이 느껴졌다.


베토벤 2번 심포니 2악장 사랑스러운 맬로디를 입가에 읊조리고 있다. 뉴욕필을 만난 지 24시간이 넘었지만, 감동이 머물러 있다.

작가의 이전글 작은 이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