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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숙 Nov 12. 2021

옆 사람 덕분에 오늘도 콜 받습니다.

콜센터 10년 차 만년 대리 이야기

10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크게 느낀 점이 있다. 바로 직장 동료와 친구처럼 친해지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을 잘 믿고 따르는 편이라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무조건 믿고 함께 한다. 그래서 내 주변에는 오래된 연인들이 많다.







이런 성격 때문에 배신도 많이 당했지만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좋은 사람들 이야기만 하고 싶다.


내 옆에 앉은 직장 동료들은 어찌 보면 집에 있는 가족들보다 더 가까운 식구다.
하루에 8시간 이상을 함께 하고 매일 점심을 먹는다.
그에 비해 가족들과는 하루에 한 끼 먹기에도 바쁘고 퇴근하고 얼굴 잠깐 볼 수 있는 시간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은 핏줄보다 가까운 동료끼리 사이좋게 지내기가 쉽지 않다.






또 콜센터 특성상 그날 받은 콜에 대한 업무 이야기, 고객 이야기는 우리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보안 때문이라도 외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 
콜센터 일은 콜센터 직원들만 알지 가족도 친구도 공감하기 어렵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옆자리 동료가 나의 소울 메이트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인성 쓰레기 중에 쓰레기가 많은데 앞서 말했듯이 지금은 나와 친한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인복이 없는 편이다. 콜센터 10년을 다니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스 라이팅도 당해봤고 배신 아닌 배신도 당해봤다. 심장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사람들에게 크게 데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같이 다니던 동생과 남편이 없었으면 나 혼자 버텨내기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콜 받는 부서가 아닌 민원 전산처리 부서로 이동했고 정말 좋은 분들과 일하고 있어서 두 남자는 내 걱정을 내려놓고 퇴사할 수 있었다.







5년째 근무하고 있는 부서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정말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회사 출근하는 것이 즐거울 정도로 좋은 분들이다. 이분들 덕분에 월요병도 사라졌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두근거리던 가슴도 이제 더 이상 두근거리지 않는다. 벌써 2년째 매달 돈을 모아서 서로 생일도 챙겨주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닌다. 최근에는 한강 나이트 워크도 함께 다녀왔다. 







나는 우리 팀 막내다. 
나의 20대를 회사에 갈아 넣은 만큼 나이는 어린데 경력이 높은 편이다. 나이 많은 언니들 중에도 나보다 경력 낮은 분들이 계신다. 

정말 놀라운 건 나와 친한 언니들하고 나이 차이가 띠동갑 이상 난다는 것이다. 12살 이상씩 차이 나는데도 말도 잘 통하고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재밌게 웃고 떠들다가도 갑자기 나이 이야기가 나오면 새삼 놀란다. 이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줄 몰랐다고.








우리는 자칭 미녀 사총사라고 한다. 출근하면 사내 메신저 대화창을 만들어 서로 인사를 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지만 항상 잊어버리고 확인받고 싶은 업무들을 서로 공유한다. 점심 먹으러 출근하는 직장인처럼 점심 메뉴 고르는 건 업무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진지하다. 업무에 비협조적인 직원이나 고객들이 있으면 같이 화내 주고 다독여준다. 








그래서 매일이 즐겁다. 콜센터 근무 10년 만에 출근하는 즐거움을 알았다. 이제야라도 이런 좋은 인연들을 만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또 철없는 막내 챙겨주는 언니들한테 미안하고 고맙다. 

   

과연 내가 이 회사를 정년퇴직하는 2050년까지 다닐 수 있을지, 아니면 그전에 우리 팀이 없어지지는 않을지 알 수 없다. 그게 언제가 되었든 지금의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 하고 싶다.

오늘도 언니들 덕분에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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