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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숙 Nov 19. 2021

욕하는 고객보다 말리는 콜센터 직원이 더 밉다.

콜센터 10년 차 만년 대리 이야기

10여 년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지만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이 있다.
생각보다 나와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
나와 어울리지 않아도 좋으니 뒤에서 욕하거나 배신만 안 해도 참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다.




 

어느 회사나 다 비슷하겠지만 콜센터는 특히나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정말 소중하다. 내가 언제까지 욕을 먹어야 하나 자괴감이 들 땐 동료들에게 하소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질 때가 있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이야기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콜센터 직원의 마음을 100% 이해 못 할뿐더러 고객 정보니까 조심해야 한다.






 

콜센터에 다니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오지랖 넓은 성격 덕분인지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퇴사하고도 꾸준히 연락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분들을 생각하면 여기에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감사하다.







사람을 잘 믿고 따르는 내 성격 덕분에 좋은 분들이 많이 만났지만 그렇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다. 욕하는 고객이 더 착하게 보일 정도로 이 세상 악(惡)은 다 갖고 있는 나쁜 직원이었다.
그를 X라고 두 자. 절대 욕하고 싶어서 X라고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X한테 가스 라이팅을 당했다. 요즘 가스 라이팅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이는데 볼 때마다 속이 쓰린다. 가스 라이팅이란 내 상황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다. X는 나에게 본인은 엄청 대단한 사람이며, 회사 간부들과도 친하니 자신한테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나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에 대한 욕을 수시로 했다. 내가 그 사람들이 미워져서 친하게 지내지 않을 때까지 악마의 속삭임은 계속되었다.








 물론 X가 했던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욕은 다 거짓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X가 시키는 일은 뭐든 다 했고 무조건 X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X에 대한 칭찬을 많이 했었는데 다들 내 말에 동의하지 않고 고개를 갸웃했었다. 이미 X는 회사 내에서 어마어마한 XX였기 때문에 다들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던 것이다. 왜 나는 그때 X의 본모습을 알지 못했을까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을 멍청하게 X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었다. 인사이동으로 인해 X와 함께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팀이 되었고 그곳에서 구세주를 만났다. X보다 나이가 많은 A였다. 나는 예의를 1순위로 생각하기 때문에 A에게 깍듯이 대했고 X는 이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항상 존중받고 대접받아야 하는 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X였기 때문이다. X는 이제 팀원들에게 있지도 않았던 일을 꾸며 내 욕을 하고 다녔다. 나를 피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도 아무 이유 없다고만 답할 뿐이었다. 드디어 정신을 차렸을 때는 X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콜센터를 10년간 다니면서 쌓아온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X가 가스 라이팅 하는 것에 함께 대항해 준 사람들이 있어서 내 자존감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평소에 이미지도 안 좋고 근속연수도 나보다 훨씬 적었던 X는 주변에 남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자 요즘엔 조용히 회사 다닌다.






 

내 이야기는 콜센터 직원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에 근무하시는 분들, 가족, 친구, 연인 등등 나와 가깝다고 느낀 사람에게 당할 수 있다. 제발 나처럼 오래 상처 받지 말고 빨리 빠져나오면 좋겠다.

이번 글은 유난히 X가 많아 욕같이 보이지만 내 마음을 가득 담은 글이다.

작가의 이전글 옆 사람 덕분에 오늘도 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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