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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Mar 12. 2023

넥스트 라운드

- 어나더 라운드(2020) -

    

    어나더 라운드(2020)는 덴마크의 영화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가 중후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매즈 미켈슨과 다시 합을 맞춘 영화다.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람한 청춘을 위한 앨범(2021)이란 아르헨티나 영화와 양극단으로 비교됐다. 그 영화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한 커플의 이야기였다. 음악을 하는 여성과 극본을 쓰는 남성의 일상을 담았는데, 그 일상들이 전혀 매력적이지도 극적이지도 않고, 그저 존재로써만 가치를 가지는 것들이었다. 본디 일상은 그런 것이지만, 우리는 두 캐릭터의 지인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관객이다. 사건도 갈등도 불충분한 이야기에 왜 우리가 시간을 할애해야 할까? 그런 일상이라면 차라리 영화보다 자신의 일상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낫다. 몇몇 평론가는 그 영화를 고평가 하며 이야기 중독에 대해 언급했다. 하지만 그건 자극적이고, 편향적으로 극적인 이야기만 찾는 사람들에게나 일러줄 말이지, 국제영화제까지 방문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영화 제작진들은 서사가 없는 것을 청춘 본연의 가치라며 자신들의 포장 실력만 과시했다. 잘 만든 영화는 제작진들의 강렬한 의도를 내비친다. 그리고 못 만든 영화는 제작진들의 저의를 숨기지 못한다. 그 영화는 청춘을 잃어버린 어른들이, 노력과 고민 없이 청춘을 탐하고자 하는 어리광에 불과했다. 반면 어나더 라운드는 '청춘'이라는 관념을 굉장히 진지하고 따뜻하게 다뤘다. 



1. 술은 무엇인가?



    술은 무엇일까? 아예 안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마약에 준하는 환각제, 적당히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특정한 공간과 감성을 만드는 기폭제, 많이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인 마감재, 마지막으로 알코올 중독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지독한 수면제다. 쉽게 싸잡으면 이렇게 될 것이다. 술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술은 확실하게 기호 식품이고,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어나더 라운드의 주연 네 명에게 술은 좋은 수단이다. 네 명은 인생의 권태에 빠진 흔한 아저씨들이다. 특이한 점 두 가지는 이들이 모두 선생이라는 점과 이들이 서로 잘 지낸다는 점이다. 이 두 특성으로 인해 이야기가 진행되고, 아이러니가 쌓인다. 이들의 인생에서 즐거움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건 나이로 인한 능력 부족으로 새로움을 창출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나이로 인한 경험 과다로 더 이상 새로움을 동경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이들에게는 간절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고, 인생에서 이런 손길은 없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도 자명하지만, 어느 날 그들에게 수단이 생겼다. 합법적이고 도전적이지만 실행법은 간단하기까지 하니, 그들이 음주 실험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가장 간절하고 공허한 마틴이 앞장서서 이룩하긴 했지만, 이들은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유지하며 삶의 활력을 되찾게 된다. 이 수치는 소주 한 병에 살짝 못 미치는 정도다. 이들이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아저씨들이라는 점을 짚어본다면, 딱 취하기 시작하는 정도라고 볼 수 있겠다. 이들은 예상대로 삶의 활력을 얻은 뒤, 다른 실험에 착수한다. 여기서 평상시 수치를 높이거나, 한계치 알코올 농도를 경험하는 일.


    이 대목부터 영화는 회전하며 아이러니를 구축하는데, 첫 번째 추가 실험부터 생각해 보자. 본디 이들에게 음주로 인한 활력은 구원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 수치를 높이는 것은 독립변인을 추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얻은 활력을 더 많이 얻고 싶다는 뜻이다. 당연히 이 행위는 과음이 되는데, 그들의 감정선이 하향식인 구원에서 상향식인 욕심으로 넘어갔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마신 술의 양보다 더 확실한 기준으로 술의 안 좋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들이 이를 실험이라는 명분으로 인해 더 동기를 얻은 것이 진풍경이다. 


    두 번째 추가 실험부터는 사실 실험도 아니다. 막말로 그냥 죽을 때까지 먹는 것이고, 이들은 아저씨들이라 고등학생들과는 달리 이를 적지 않게 경험해 본 사람들이다. 이 차례부터 욕심은 방자함이 돼 버리고 만다. 결국 이들은 이 시도로 각자 소중한 것을 잃게 되고, 인생은 활력을 찾기 이전으로, 혹은 더 악화된 상황으로 변하고 만다. 실험과 논문도 말끔하게 멈추고 말이다. 종결짓는 모양새까지 인간이 주재할 수 없는 '기적'이라는 단어와 딱 들어맞고, 그만큼 주연들이 지금까지 느낀 삶의 무료함을 체감할 수 있었다. 



2. 텍스트가 담고 있는 것들



    이 영화는 극단적인 흑색 배경을 뒤로한 흰 텍스트가 종종 나오는데, 영화 처음의 격언과 알코올 수치, 그리고 마틴과 아내가 주고받는 문자 내용이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생각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행동 이전의 생각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행동보다 시간적으로 선행되는 특성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하는 기준을 의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따지면 첫 격언 “젊음은 무엇인가? 꿈이다, 사랑은 무엇인가? 꿈의 내용이다.” 은 이 영화가 강조하고 있는 메시지이자 캐릭터들이 지녀야 할 가치관을 의미한다. 혈중 알코올 수치는 그들의 행동 직전의 심적 선택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마틴과 아내가 주고받는 텍스트는 인생의 전환점인 관계 변화의 촉매를 의미한다. 카누를 타고 가자는 대화와 아직 보고 싶다는 대화 모두 마틴과 아내의 관계 변화의 중요한 독립변인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영화가 인생을 논하는 만큼, 플레이되는 인생 직전의 소프트웨어 혹은 소프트웨어 기능을 하는 하드웨어를 깔끔하게 화면에 담았다고 생각한다.   



3. 결국에 남은 것



    이 영화는 권태에 빠진 주인공들을 권태와 가장 먼 단어로 자극한다. 그건 ‘경험’이고, 특히 젊음이 느껴지는 것들에 집중되어 있다. '어나더 라운드'의 의미는 앞으로의 인생과 조우함을 뜻하고, 다음 라운드를 포기한 톰뮈의 죽음은 쓰디쓴 비극이다. 편안함을 얻은 마틴이 마지막에 추는 춤은 음주 여부와 관계없이 마틴이 진짜 자신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영화에서 술은 경험을 상징한다. 그래서 그들이 툼뮈의 죽음 이후에도 술을 입에 대는 것이다. 젊은 덴마크의 고등학생들이 술에 환장하며 이상한 게임을 하고, 수갑을 채우며 권력에 대항 비슷한 반항을 하는 장면들은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로써 더할 나위 없었다. 결말에서 마틴이 고등학교 졸업생들 앞에서 멋진 음주가무를 펼치며, 바다로 뛰어 몰에 빠지기 직전에 카메라가 멈춘 것은, 인생의 흐름을 예찬함과 동시에 앞날을 굳이 알려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시각화한 것이다. 마틴이 분명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고,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이 당황할 것을 우리가 앎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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