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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Mar 13. 2023

황홀한 예술적 자살기도

- 멜랑콜리아(2011) -

    

    라스 폰 트리에는 덴마크의 영화감독이다. 특유의 스토리와 연출 스타일로 끝까지 보기 힘든 영화들만 골라 만들기로 유명하다. 어떤 영화가 어렵다고 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스토리 구조가 비선형적이면서 숨겨 놓은 상징이 많아서 난해한 경우와 영상의 내용과 관련된 메시지가 너무 잔혹해서 견디기 힘든 경우. 라스 폰 트리에는 후자의 영역에서 나름 독보적인 위치를 쌓은 감독이다.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어서 더 강하게 스타일을 고집하기도 한다. 살인마 잭의 집(2018)은 자신에 대한 대중 또는 평론가들의 반론에 대한 타협 없는 소신을 엮은 메타픽션이었다. 살인마 주인공을 다뤘지만, 그걸 감안해도 여러 금기를 깼고, 앵글을 돌리거나 화면 전환을 하지 않고 살인장면과 시체 장난을 있는 그대로 화면에 담았다. 멜랑콜리아(2011)는 살인마 잭의 집이나 안티 크라이스트(2009)처럼 잔인하고 충격적인 장면이 노골적이진 않지만 구조 자체에서 특유의 비애를 느낄 수 있었다. 


 

1. 우울에 대한 가장 단정적인 스키마



    우울은 그 관념 자체의 해석은 엇갈리지 않지만, 그 대응이 상이하게 갈린다. 그것 때문에 우울증 환자에 대한 시선도 다양한 것이다. 마음이 강하건 약하건 대부분 인정하는 사실은, 우울증은 환자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멸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라스 폰 트리에는 더 근원적이고 자폐적인 우울 서사를 갖고 왔다. 


    구조를 먼저 연결 지어 보면,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은 우울증 그 자체를 상징하며, 한 개인에게 있어서 재해에 가깝다. 그런 거시적인 시련이다. 그러면 지구는 이 영화의 감독인 라스 폰 트리에를 의미하며 작중 인물들은 라스 폰 트리에의 자아들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정확히는 우울에 깊이 빠진 한 인물의 복잡한 내면이다. 이 구조가 가장 단정적인 이유는 우울증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결정지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를 피하려 하는 모든 행위는 촌극이 되어 버리고, 관객들은 숭고한 패배주의에 빠지게 된다. 



2. 삐걱대며 공존하는 두 자아



    가장 중요한 두 자아는 저스틴과 클레어다. 저스틴은 우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고, 클레어는 우울하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저스틴은 자신을 처음부터 이해하지는 못했고, 그래도 노력했기 때문에 되려 다른 등장인물들이 고생하고 만다. 뻔히 언니 집의 차도를 아는데 리무진을 타고 오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시비 걸게 뻔한 어머니를 부른다는 등 저스틴은 무의식적인 패배주의를 이겨내지 못하고 미련하게 표출해 버렸다. 아무리 하객들을 상대로 웃는 상판을 깔아도, 안 쪽에서부터 갈라지는 저스틴의 심리의 종착점은 바꿀 수 없었다. 저스틴은 멜랑콜리아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인식한 이후로는 전보다 더 편안해진다. 그것이 자신이 원하던 것임을 깨달았고, 비로소 가까워지고 있음에 기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울 자체와 동화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마지막에 나뭇가지 몇 개로 만든 움막에 저스틴, 클레어, 레오와 종말을 기다리면서, 저스틴도 끝내 눈물지었기 때문이다. 결국 저스틴의 우울 친화적인 태도는 자조에 가깝고, 인류 전체를 싸잡아 죽어도 마땅하다는 주장은 자기 방어적인 방책에 불과하다. 


    클레어는 우울하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저스틴을 성심성의껏 도와주려 한다. 그게 결국 안 될 것이란 걸 어렴풋이 안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둘 모두 한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에, 저스틴을 어찌하지는 못한다. 가끔 죽을 정도로 밉다고 울먹이는 것에 그치고 죽이지는 못하지 않았는가? 클레어는 한 번도 저스틴에게 윽박지르며 싸움을 걸지 않았다. 남은 두 자아는 레오와 마이클인데, 레오는 미래를 기대하고 있는 마음으로 해석 가능하다. 가능성을 갖고 있는, 아직 단정되지 않았고, 여유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자아. 반면 마이클은 이성성을 상징한다. 그런 마이클에게 우울증은 곧 극복 가능한 얄팍한 예정조화에 지나지 않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스틴을 레오에게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성성은 딱딱하고, 타협할 줄을 모른다. 그래서 기어코 목도한 거대한 우울 앞에서 먼저 자살하고 만다. 사람의 내면으로 치면 이성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자아는 거시적인 우울 앞에서 소멸하고 만다. 이는 정신적인 고투를 포기한 한 인간의 자살을 의미한다. 따뜻한 낙관성이 될 수 있었던 레오는 마지막 순간 저스틴과 클레어 중 어느 쪽에 더 닮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결국 둘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3. 왜 우울증인가? 우울이 아니고  


    멜랑콜리아는 우울증을 뜻한다. 우울이 아니라. 왜 영화 제목이 더 관념적이고 원론적인 우울이 아니라 우울증일까? 우울증은 우울의 표출이며, 구현이다. 발현된 우울증을 통해 비로소 그 사람은 우울증 환자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행성의 이름이 멜랑콜리아다. 막연히 두려워하는 ‘감정’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맞닥뜨려 버린 ‘상태’. 인간과 우울은 같이 춤을 추지만, 결국 우울이 승리하며 파멸해 버리는 라스 폰 트리에의 예술적 자살 기도가 바로 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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