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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Mar 16. 2023

어쩌면 가장 뻔뻔한 구조와 상징

- 톰과 제리(2021) -



    이 영화는 2021년에 나왔고, 실사 배경과 배우들 위에 톰과 제리를 2d로 입혔다. 이런 독특한 실사화 컨셉과 톰과 제리라는 타이틀 덕에 꽤 기대를 받았던 영화다. 하지만 영화 스토리는 질 낮은 아동용 수준에 그치며, 가장 큰 미덕인 실사와 그림의 조합도 텍스처를 잘못 입혀 잘 맞물리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톰과 제리 시리즈 팬들이 원했던 유쾌한 폭력성도 시대가 변한 탓에 충분한 강도가 아니었다. 기존 시리즈를 오마주한 장면이 많아서 반가웠지만, 이것도 좋게 말해 오마주지 답습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확실히 톰과  제리(2021)는 못 만든 상업영화다. 하지만 영화 속에 숨은 구조를 발견할 수 있었고, 이는 모퉁이 영화관이라는 매거진의 의의와 완벽히 상통하기 때문에 다루기로 했다.



1. 기존의 톰과 제리



    톰과 제리는 톰과 제리가 싸우는 모습으로 관객을 웃기는 시트콤이다. 그래서 톰과 제리는 무조건 싸워야 하고, 주변 등장인물들은 큰 낭패를 겪어야 한다. 이는 tv프로그램에서 깔끔한 흥행 공식이었지만 영화에서는 반대였다. 이 둘을 배트맨 대 슈퍼맨 급으로 억지스럽지만 나름 진지한 대치로 몰고 가지 않는 이상, 스토리 전개를 위해서는 둘이 단합을 하고 행동을 같이 해야 하는 지점이 반드시 생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둘이 다시 싸워 수미상관을 만족시켜 줘야 하니 애니메이션 영화가 아니라 실사 영화로 기획하기엔 난이도가 어마어마한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수미상관 자체는 그럭저럭 달성해 주었지만 동물들의 서사 만으로는 플레이 타임을 채우기 힘들어 인간 캐릭터들의 힘을 과하게 빌렸고, 그 과정에서 개연성 있는 플롯을 구축하지 못했다. 드론, 힙합, sns 등 지금 시대의 일상들을 톰과 제리와 곁들인 시도는 새로웠지만 피상적인 요소에 그칠 뿐이었다.



2. 현실과 이상의 대립



    이 영화를 보면서 찾은 숨은 메시지와 은유들이 생각보다 일관적이어서 놀랐다. 이 작품은 완성도 있는 좋은 영화가 되는 것은 실패했지만 톰과 제리 이상의 것을 톰과 제리 안에 담는 데 성공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창작자들의 호소를 담았다. 가장 큰 단서는 톰이 겨우겨우 호텔 방에 들어가 제리와 싸울 때 tv에서 나온 프랑켄슈타인의 한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박사는 생명이 깃들어 달라고 간절히 원하고 있었고, 박사의 괴물은 눈을 뜨기 직전이었다. 이 점을 영화 전체에 대입해 보면, 톰과 제리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고 창작자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이며, 생명이 깃들길 바라는 마음은 그의 창작욕, 대중에의 기대를 상징한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본질이 그릇되고 역겨운 것이다. 감독은 이 부분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조를 기저에 깔아 둔 것이다.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상업영화라는 넋두리다.


    감독은 여러 장면들과 연계하여 자신의, 즉 창작자의 고충과 시대의 억압을 호소했다. 서사의 도입이 되는 신랑 카메른의 오지랖은 자신의 팔로워들의 눈치 때문에 행한 무리수였고, 이는 감독을 포함한 이름이 공개된 사람들, 크게 말하면 인플루엔서들이 대중의 눈치를 보고 있는 시대를 상징한다. 재미는 없지만 여러 개그 장면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불편함도 토로했다. 제리 성별 논란, 동물 학대 논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두 주연에게 꽤 묵직한 관념을 심었다.


    톰과 제리는 각각 현실과 이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제리는 예술에 별 관심 없는 살기 급급한 마음이고, 톰은 예술을 통해 자기실현을 꿈꾸는 부푼 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톰은 음악가가 되고 싶어서 뉴욕에 왔고, 갖가지 영화 속 시퀀스를 겪으면서도 결국 음악을 향했고, 제리가 호텔에 자리 잡은 이유는 완벽한 새집을 찾았기 때문이다. 톰과 제리가 처음으로 카일라에게 자기 이름을 알려줄 때도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는데, 톰은 자신의 손가락을 늘리고 묶어서 예술적으로 'tom'을 보여줬고, 제리는 자기 이름 'jerry'가 박힌 작은 명함을 건넸다. 마지막에 톰과 제리가 또 싸운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톰이 투츠에게 피아노 연주를 하며 작업을 거는데, 제리는 순수하게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자기도 건반 위로 올라간다. 덕분에 음은 엉터리가 되었고, 톰은 손가락으로 제리를 밀어 내동댕이 쳤다. 그것 때문에 다시 주먹다짐을 시작한다. 이는 제리가 현실이기 때문에 예술(이상)을 하나도 몰라 톰을 도와주고 싶어도 결국 방해하게 되는 씁쓸함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이 논리로 기존의 톰과 제리의 관계를 살펴보면 늘 제리가 우세에 있는 것도 실제 세상의 법칙을 담은 것이다. 아무리 예술에의 의지가 강해도 현실의 여건이 이를 방해하고, 웃돌기 때문이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동물과 인간의 이분법이다. 이 영화 속에는 어떠한 동물도 3d로 연출되지 않는다. 톰과 제리와 다른 조연들은 물론이고, 오마주 캐릭터들과 톰이 먹는 죽은 생선에 박물관에서 본 모형 스밀로돈까지 모두 2d로 나온다. 앞서 설명한 메시지들과 조합해 볼 때, 동물은 수단화되는 예술을 상징한다. 3d가 2d보다 높은 차원에 있으며, 그 벽은 절대적인데, 오프닝 시퀀스를 보면 웬 비둘기가 노래를 부르며 날아다니고, 오프닝 크레딧이 한 줄씩 영상에 나온다. 이때 톰이 바닥에 있는 크레딧들을 점프하며 걷는다. 즉 이 크레딧은 우리 눈에만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물리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2d와 3d를 엄격히 구분하겠다는 힌트임과 동시에 결국 영상에서 두 영역을 융합해서 연출하겠다는 의도를 전달한다. 실제로 톰이 제리를 찾으려 코를 킁킁댈 때 톰의 코가 앵글에 가까워지는데, 이때 김이 서린 것처럼 화면 주변 주변에 하얀색 마스킹이 생겼고, 스파이크가 앵글을 보며 짖을 때 튄 침이 화면에 방울지기도 했다.


    케일라가 테렌스에게, 어항 속 금붕어를 보며 얘는 어항 매니저냐고 농담을 했는데, 테렌스는 얘는 금붕어지 직책이 어디 있냐며 정색을 한다. 이 장면도 예술에 대한 모진 처우를 의미한다. 파투 난 결혼식 장면을 되짚어보면, 마지막에 톰과 제리와 스파이크, 공작과 호랑이에 코끼리까지 뒤엉켜 동물 토네이도가 만들어진다. 난장판이 벌어지고, 나중에 결혼식장을 빠져나간 코끼리들이 도로를 뛰어 앵글 밖으로 나갈 때, 몇 초 동안 행진곡이 작게 울려 퍼졌다. 상업적인 강제성을 포함한 여러 제약들에서, 창작자로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담은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감독은 자신과 영화 속 동물들을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괴물에 대입하여, 피땀 흘려 만든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하는 창작자의 마음을 구조적으로 영화에 새겼다.



3. 가당키나 한 이야기인가?



    2번에서 한 이야기들이 설득력 있고, 납득 가능한 이야기일까? 다른 동물들도 톰과 제리처럼 2d로 연출된 이유는 단순히 통일성 때문일 수도 있고, 애초에 시트콤 만화를 뒤늦게 영화화해 쉽게 돈 벌려는 작품인데 이야깃거리가 뭐가 있겠는가 헛짓했다고 놀림받을 수도 있다. 이 영화의 감독인 팀 스토리는 판타스틱 4 두 편을 감독하긴 했지만, 필모의 평균 로튼토마토 지수는 50도 못 넘는다. 분명 예술적으로 입지가 있는, 시네필들이 좋아하는 감독이 전혀 아니다. 되려 기피하는 쪽이지.


    그런데, 감독이 얼마나 한심한 필모를 쌓았든 상술한 시야를 일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좋아하는 감독이 없다. 일부러 안 정했다. 그래야 작품 단위로 작품을 보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명감독도 망작을 찍을 수 있고, 아무리 스펙이 구린 감독도 갑작스러운 명작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상업영화라 할지라도 우리는 비슷한 렌즈로 영화를 봐야 한다. 상업영화라고 무조건 뇌를 비우고 편하게 앉아 있는 것은 글자 그대로 킬링타임이다. 애초에 상업성이라는 기준도 정말 애매한 기준이니까. 전부 그 이분법으로 나눠버리면, 예술성 판단에 끼지도 못하는 장르가 수두룩하다. 평판과 예상은 어쩔 수 없겠지만 영화 매니아의 가장 기본적인 미덕은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톰이 내린 빨간 커튼 위에 'the end'가 좌우 반전되어 쓰여 있는데, 이는 감독이 제발 뒤집어서 다시 생각해봐 달라는 간절한 부탁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렇게 주장해도 내가 발견한 구조들이 충분히 그럴듯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툼과 제리의 위상이 확실히 강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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