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차 뒷자리에서 내 머리를 만지며 물었다. 타고나기를 곱슬곱슬하고 푸석하게 물려받기도 했고, 석 달에 한 번 매직 스트레이트를 해야 사람다워지는 머리인 터라 손상을 받아 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내 별명은 6년 내내 '옥수수'였다. 내 머릿결의 유구한 역사를 일곱 살 아이에게 한 번 풀어봐 줄까 하다가 그냥,
"어. 그게 엄마 트레이드 마크야."
라며 넘어갔다. 뭐, 크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딸들에게든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든 예쁜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은 늘 있는터라 일을 마치고 미용실에 들렀다. 이 동네로 이사오며 늘 가는 그곳이다. 거기 원장님은 내가 이혼한 것도 알고, 아이가 있는 것도 알고, 평소의 모습과 피곤할 때의 모습 같은 걸 자주 봐서 안다. 작년에는 한 번 원장님의 대학원 영어 시험을 도와주어서 내가 영어를 곧잘 한다는 사실 또한 안다.
그 옆에서 늘 도와주시는 선생님 한 분은 이 미용실에서 스태프로 시작하셨는데 얼마 전 디자이너로 승급을 했다. 그분이 거의 처음 미용을 시작했을 때부터의 성장을 쭉 봐 온 한 고객으로서 너무 흐뭇해 지난번에는 선물로 와인을 한 병 드렸다. 우리는 서비스를 해주는 미용사와 고객이라는 관계지만, 얘기를 나눌 때는 정말 친한 친구 같을 때도 종종 있다.
오늘은 어쩌다 대학 때 캠퍼스 커플을 한 원장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원장님은 남자분인데, 미용대학에서는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거기서 두 번 캠퍼스 커플을 하느라고 미팅 같은 건 한 번도 못해보셨다고 했다.
"누가 먼저 고백했어요?"
라는 내 질문에
"늘 저는 "네가 싫지는 않아."라고 대답했는데, 어느 순간 여자애들 사이에서 사귀는 게 되어있더라고요."
라고 말해 우리를 웃겼다.
늘 그렇듯 옆에서 보조를해주시던 다른 선생님은
"저도 대학에 가 보고 싶어요."
라고 했는데 그분은 직업 군인 출신이라 대학에는 가시지 않고 바로 미용을 시작했나 보았다.
그래서 나도 나름대로 내 대학 시절을 떠올려보았다. 거의 이십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공부하느라 힘들고 학점 때문에 속상한 적도 많았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교대 우리 과에는 전국의 전교 1등들이 모여있었다. 하지만 그게 결코 내 대학 시절을 대표하는 테마는 아니다. 왜냐하면 힘들기도, 또 중간중간 좋기도 했던 대학 생활은 3학년 말부터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따뜻한기운이 많이 가미되었기 때문이다.
"저는 캠퍼스 커플은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교대 남자는 어딘가 부족해 보여서 캠퍼스 커플이 부럽지 않았었다. 그러다 딱 한 번 부러운 때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4학년이 되어임용고시를준비할 때였다. 열심히 공부하는 교대생 중 다수가 학교 도서관에 많이 자리를 잡았었는데, 경쟁이 치열해서 새벽부터 줄을 서곤 했다. 자리가 인원에 비해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캠퍼스 커플은 서로의 자리를 맡아주었는데, 바로 그 모습에서 나는 교대 생활 처음으로 캠퍼스 커플이 부러워졌다.
그렇게 얘기를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의 '쓸모'를 높이 평가하고, 그로 인해 여전히 그 시절을 좋게 평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당시 남자친구를 많이 좋아했던 마음적인 부분을 설명하는데도 이런 실용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여 말을 하는 건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간에 나는 꽤 실용적이고, 그런 맥락에서 사람에게마저도 쓸모를 따지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제 생일 때 하필 남자친구가 한 달짜리 훈련을 논산으로 갔는데, 미리 이벤트 업체에 얘기해서 강의실로 어떤 사람이 꽃을 들고 노래하면서 왔지 뭐예요? 그래서 동기들 다 같이 손뼉 치고 축하해 주고 그랬어요."
그래, 세상 행복한 한때였다. 아무도 부럽지 않은.
이십 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지금,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아직도 대학 다닐 때만큼 무언가의 용도를 재는 건 아닌지, 혹시 사람과의 관계를 설명할 때도 그렇게 하는 습관이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얼마 전 가만 되돌아보니 나는 이성을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 하고 좋아했던 적이 거의 손에 꼽았다. 고백하자면 나는 어떤 사람이든 그의 단점이 먼저 보이고 잘 보인다. 이성의 경우에는 콩깍지가 씌어있다가도그게 풀리고 난 뒤에는 안 좋은 점이 아주 크게 다가올때가 많고, 처음부터 현실적인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멀어지기도 잘한다. 그렇게 꽂혀버린 안 좋은 점이 너무 커 보여서,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계산도 잘해서 서운한 일이 생기면 차곡차곡 적립해 두었다가 나중에 꼭 그 상대방에게 써먹는다. 나름의 핑계겠지만 '그때 네가 이랬으니까'라는 정당화를 하며말이다.
이제 계산은 접어두고, 할머니가 아픈 손자 배 만져주듯 누군가에게서보이는 안 좋은 점도 잘쓰다듬어 줄 수 있는쪽의 사람이 된다면 좋겠다. 뾰족 튀어나온 내 모서리에는 '페르소나'라는 따뜻한 천을 급한 대로 씌워주며 '나란 사람의 쓸모'는 뭘까 질문해 본다. 상대의 단점까지, 그리고 그 단점을 보는 나 자신까지 안고 과연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지 나도 궁금하다. 나 또한 단점 투성이인 한 인간임을 깨달으매, 왠지 나의 쓸모는 그렇게 가만가만 세상 모든 이의 단점에 약을 발라 주려고 세상에 온 건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