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

by 이주희

여중, 여고, 여초대학을 내왔지만 여자가 내겐 더 어려웠다. 단순하고 뒤끝이 없는 편에 여성에게 너그러운 한국의 문화가 익숙해서 그랬던 것 같다. 어른뿐 아니라 학생들도 남학생 혼내는 것보다 여학생 혼내는 게 훨씬 조심스럽다. 여학생들은 어느 부분에서 의외로 상처를 받고 나를 미워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많이 나아졌다는 걸 오늘 스터디를 나가보고 알았다. 서른 명이나 되는 스터디원 중 남자는 단 두 분. 각자에게 2분이라는 자기소개 시간이 주어졌다. 인상 깊게 말하라는 지시가 따라왔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스터디에 들어오게 된 계기와 포부, 그간의 치적을 말했다. 듣다 보니 내가 자꾸 쪼그라들었다.

‘에잇, 이럴 바엔 재밌게 가자.’

나는 첫 시험을 보러 가는 날 꾸었던 꿈 이야기를 했다. 옷을 안 걸치고 자고 있었는데 웬 노인이 밖에서 문을 두드려 겨우 대충 걸치고 문을 열었던 내용의 꿈이다. 그 꿈은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불안함을 느끼는 거라고 해석되었다. 부장을 3년 하며 생긴 새치도 웃으며 얘기했다. 그리고 지방에서 일반직으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가, 지금은 은퇴하시고 춤 배우러 다니신다고 했더니 여기저기서 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열심히 할 마음도 있지만 제가 잘할 수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과 함께 가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진심이었다. 이렇게 장황한 나의 소개가 끝났다.




서른 명이 모두 소개를 하니 한 시간 반이 부쩍 지나갔다.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 들은 후에 마지막으로 스터디장과 회계, 간식 담당을 뽑는 시간이 돌아왔다. 어차피 집에 키울 아이도 없고 먹는 것 그리고 돈 쓰는 것도 좋아하니, 간식 담당을 혹시 아무도 자원하지 않는다면 손들까 했다.

그래서 내가 하게 되었다.


마치고 식사를 같이 하며 처음 본 선생님께서 내게 고맙다고 하셨다.

“선생님 소개가 위로가 많이 됐어요.”

아버지의 춤 부분이 재밌었다는 분도 계셨다. 그 말을 들으니 괜히 고향에 계신 아버지에게 죄송해졌다. 하지만 일단 이 정도면 스터디 분들과 눈도장 잘 찍기 성공적인가?


나를 낮추고 다른 사람이 웃는 게 기분이 좋다.

그래서 자기 전에 생각해 본다.

행복이 나에게 오는 것까지 바라지 않더라도

그저 다른 이의 환한 미소를 보는 게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 보다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