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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히 Nov 10. 2020

Peach pit 밴드 리뷰

세상 힙한 감성 너드들의 웃지도 울지도 못할 블랙코미디


오늘 소개할 밴드는 2016년에 EP Sweet FA를 발매하면서 공식적으로 밴드 활동을 시작한, 캐나다 밴쿠버 출신 Peach pit입니다. 사근사근한 보컬과 유려하고 독특한 락 베이스의 기타 리프가 인상적인 밴드인데요. Peach pit의 가장 돋보이는 매력은 노래를 한 편의 블랙코미디처럼 위트 있게 풀어내는 차분한 목소리일 겁니다. 밴드에서 작곡과 보컬을 맡고 있는 Neil Smith는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음악을 '씹다만 풍선껌 팝'이라고 했으니, 이 말만 들어도 이 밴드가 어떤 밴드인지 대략 감이 오지 않나요?

Peach pit의 멤버들은 1집 being so normal을 낸 후 그들의 첫 번째 투어를 하기 전까지 다들 각양각색의 직업을 갖고 있었습니다. 보컬의 Neil Smith와 리드 기타의 Christopher Vanderkooy는 아마존 택배기사로 일했었고, 베이스의 Peter Wilton은 양조장에서 일했고, 드럼의 Mikey Pascuzzi는 목수로 일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렇게 다른 세계에서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음악으로 모여 밴드를 하게 됐는지 궁금해져,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흥미로운 밴드인 것 같습니다.

이런 무궁무진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Peach pit하면 제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차분하고 부드러운 보컬이나 위트 넘치는 가사가 아닙니다. 정말 웃기게도 기타리스트 Chris의 앙증맞은 콧수염과 그의 빨간색 목 폴라티입니다. Peach pit은 1집 수록곡 alrightly aphrodite의 뮤비를 찍을 때 멤버들과 다 함께 옷을 한 벌씩 싹 맞춰 입었는데, 그 옷을 1집 활동하는 내내 입고 다녔다고 합니다. (ㅋㅋㅋ 진짜 왜 그러는 건데 ㅠㅠ. 심지어 같은 옷 여러 벌도 아니고 딱 그거 하나 입고 월드투어 다녔대요.) 그래서 유튜브에 콘서트 영상을 검색해보면 하나 같이 옷이 다 똑같습니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산발 난 장발과 앙증맞은 콧수염에 12살 꼬마가 입고 다닐 법한 쨍한 톤의 스웨터만 입고 다니니, 그들의 첫인상이 너드 같아 보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더 좋은 걸지도...)

If I’d known you sold on maybe
I’d a let you waste another guy
Well Alrighty Aphrodite
Go whip that red for other eyes

만약 네가 그런 생각인 걸 알았더라면
네가 또 한 사람 놓치게 뒀을지도
좋아 훌륭하신 아프로디테님
그 빨간 머리 남들에게 흔들어주라고

- alrightly aphrodite 중 -


그들의 노래에는 대부분 상대를 미묘하게 비꼬는 투의 가사와, 자신을 향한 자조가 섞여있습니다. Smith는 자신의 노래에 아무리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어도, 딱히 무겁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저 한 편의 블랙코미디처럼 낄낄 비웃어주면서, 평범한 일상에 찾아온 우울과 좌절을 덤덤히 넘어갈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덤덤하고 차분한 태도는 곡의 멜로디, 기타 리프, 보컬의 말투에 스며들어서, 리스너가 가사를 몰라도 그들의 냉소적이지만 유쾌한 감정선에 공명하도록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Though we didn't talk much how'd your evening go
You barely spoke a word to me besides that slurred hello
But I happened to see without even tryin'
how she laughed with you,
just like I used to

우리가 별로 얘기는 못했지만 너 저녁에 어땠어
네가 혀 꼬여서 인사했던 거 빼고는 별로 말을 못 했네
어쩌다 우연히 보게 됐는데 그 여자랑 너랑 웃고 있더라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 tommy's party 중 -


이 노래는 갓 성인이 된 smith가 파티에 가서 진탕 취할 때까지 마신 후, 다음 날 아침 숙취에 절은 토미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시선에서 쓰인 노래라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제 주변의 이야기, 또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슴을 울리는 기타 리프에 얹어서 노래를 만듭니다.

Peach pit의 앨범에는 종종 사람 이름이 들어가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tommy's party 이외에도 brian's movie, camila i'm at home처럼 smith의 실제 친구들이 카메오로, 때론 주인공으로 음악에 등장하곤 합니다. 그래서 Peach pit의 음악은 더 일상적이고 개인적이면서, 그래서 우리들의 피부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삶의 어려움은 때론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말보다는 있는 그대로 풀어낼 수 있을 때 더 가벼워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Peach pit의 음악은 그들의 삶과 함께 나이를 먹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부딪히고 상처 받아야 했던 20살의 기억이 만든 tommy's party와 똑같은 노래를 지금의 그들은 만들지 못합니다. 만들 필요도 없고, 만들 생각도 없을 겁니다. 그저 지금 자신의 감정과 삶을 부단히 기록하고 음악으로 풀어나가는 Peach pit에게, 지금의 자신과 똑 닮은 노래만이 허물처럼 제 뒤에 널브러져 있을 뿐이겠죠.

세상 사람들의 보통의 일상은 멀리서 보면 희극도 못 되는 재미없는 모노드라마일지 모르지만, 가까이서 보면 차마 웃지도 울지도 못할 블랙코미디가 아닐까요. Peach pit의 음악을 들으며 우리 삶에 부딪힌 어두운 날들을 코미디로 웃어넘길 여유를 얻어가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있는 노래의 링크와 개인적인 추천곡을 함께 올려두겠습니다. 언제나 좋은 음악이 함께 하길.



https://youtu.be/ICNtZKmQGMw

Alrightly aphrodite

https://youtu.be/iMUbmiXlHww

Tommy's party

https://youtu.be/3SWXKmi30XY

Being so nor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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