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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히 Sep 23. 2023

1. 처음 만든 노래 ‘정전’

내가 노래를 만들었다고? 맙소사...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어떻게든 꾸역꾸역 곡을 만들다보니 벌써 다섯번째 노래를 완성했다. 매번 작업이 끝나면 약간의 고양감과 탈력감, 그리고 조바심과 기대감 같은 것들이 온 마음을 뒤집어 놓아서 작업 후엔 반강제로 휴식 같지 않은 휴식을 가지게 된다. 머릿속은 복잡하고 가슴은 들뜨고 손에 잡히는 것은 없고 애꿎은 핸드폰만 보다가 시간을 낭비하거나 잠만 퍼지게 자다가 돌연 더욱 찌뿌둥해진 몸을 마주하게 된다. 이것이 휴식인지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찝찝하고 텁텁하다. 차라리 빨리 다음 곡을 작업하거나 음악공부에 몰두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진이 다 빠지게 해놓고 기운이 차기도 전에 돌아가려하는 거다.


그만큼 휴식이 휴식 같지가 않다. 어쩌면 난 어떻게 쉬는지를 까먹어버린지도 모른다. 철저한 몰입 아니면 방만한 생활을 했으니, 그 사이에 휴식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지도.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 복잡한 마음을 정갈하게 갈무리하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도록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그러니 지난 작업을 하면서 느낀 점을 적어보면서 이 들뜨고 산만한 마음을 천천히 가라앉혀보려고 한다.


처음 곡을 만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를 돌이켜 생각하면 정말 내 인생에서 손꼽을 정도로 신기하고 떨리는 순간인데 정작 당시에 나는 엄청 담담하고 별 생각이 없었다. 7월 중순 날씨가 극한으로 덥고 선풍기와 에어컨이 있어도 버틸 수 없는 날이었다. 평소처럼 알바를 마치고 집에 와서 기타를 연습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 스탠다드 재즈 코드를 따라가며 그에 맞는 코드톤과 스케일을 중심으로 끊기지 않고 솔로를 이어가는 것이 내가 하던 연습이었다.


그런데 몇 분 하다가 아무 생각없이 EM7을 쳤다. 개인적으로 탑노트가 7도에 오는 코드가 굉장히 이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코드를 치면 하아 소리 예쁘다 히히 하면서 혼자 좋아하곤 했었다. 아마 그래서 그때도 그냥 쳤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 그냥 손가락을 아무렇게 잡아서 한 번 더 쳤다. 그런데 이게 왠걸 EM7뒤에 오는 이 코드 너무 찰떡쿵떡이 아닌가. 2개의 흐름이 완성된 순간 그냥 다음 탑노트는 내려가야 될 것 같았다. ‘가나’ 다음엔 당연히 ‘초콜릿’이 와야 하듯이 그 두개의 코드 뒤엔 그냥 그게 와야 할 것 같았다. 탑노트가 정해지니 그 자리에서 코드를 하나씩 짚어가며 내가 봤던 장면을 가장 잘 묘사하는 코드를 찾았다.


그렇게 3개의 흐름이 완성되고 마지막 흐름은 너무나도 당연히 그냥 그렇게 쳐야할 것 같아서 바로 그렇게 쳤다. 그게 다이아토닉에 맞는진 모르겠고 그 4개의 흐름이 너무 아름답게 이어졌다. 그땐 그게 노래가 될지 몰랐다. 그냥 이쁘고 아름다운 4개의 소리가 이어지는 게 참 좋았다.  그때 당시엔 내가 노래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노래는 나 같은 아마추어가 끼적거린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게 음악이 아니라 그냥 잠시 지나가는 이벤트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번 쳐보고 나서 이제 됐다 싶어서 다시 원래 기타연습을 하려는데 갑자기 그 코드들 이름이라도 적어 놓자 싶어서 공책에 코드를 적었다. 그런데 다이아토닉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대충 친 코드들이 다 다이아토닉에 들어맞고 그 중 하나는 다른 스케일에서 코드를 끌어다쓰는 m6 코드였던 것이다. 헐 세상에. 내가 이걸 어떻게 쳤지 싶었다. 그냥 좋아서 친 건데 그 코드가 공부할 때 가끔 나와서 내 골머리를 썩게 만들었던 m6 였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왜냐면 난 그 코드가 아직도 이해가 다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녹음을 해봤다. 그리고 녹음을 하는데 몇번 들으니까 질리더라. 그럼 그냥 베이스나 넣어보자 해서 기타 6번줄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몇번 쳐봤다. 그런데 기타 선생님이 솔로를 할 때는 첫 박이 아니라 둘째 박이나 넷째 박에 시작하는 연습을 해야지 다양한 리듬을 칠 수 있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그냥 대충 만지작 만지작거려봤다. 그렇게 내 생에 처음으로 노래의 인트로를 만들게 된다. 그땐 그게 인트로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뭔가 좋았다. 베이스가 고래의 울음처럼 느껴졌다. 마치 칠흑처럼 어두운 밤하늘이 내는 소리처럼 아득했다.


그때 예전에 써놨던 정전이라는 시를 옆에 띄워놓고 트랙을 무한반복하면서 흥얼거려봤다. 뭔가 기분이 묘해지는 멜로디가 공중에 붕붕 떠다니는 것 같았다. 그때는 마이크도 없어서 아이폰 마이크에 대고 녹음을 했다. 그리고 그걸 바로 컴퓨터에 옮겨서 기타 트랙 위에 포개어봤다. 재생 버튼을 꾹 눌렀을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손으로 노래를 만들었다는 걸 깨닳았다. 그땐 들뜨면서도 이게 뭔가 싶었다. 내가 뭘 한 거지. 이게 노래가 될 수 있을까. 노래를 이렇게 만들어도 되는 건가.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하나. 내가 잘못하는 건 아닐까. 이런 의문들이 머릿속에 흘러넘쳤다. 애꿎은 의구심과 뜨거운 고양감이 뒤죽박죽했다.


뭐 어때. 난 사실 지금 나오는 대중 음악에 불만이 많다. 난 기타 솔로가 시도 때도 없이 끼어들고 틈만나면 연주가 나오는 그런 음악이 좋다고! 그러니까 이 다음엔 반드시 기타 솔로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의구심은 사라지고 그냥 나하고 싶은 거 다 해봐야지 하는 마음에 트랙을 무한 반복하며 기타를 쳤다. 코드의 진행이 참 이쁘고 아름답게 느껴지니 내가 여기에 어떤 솔로를 해도 다 좋았다. 그렇게 빨라졌다가 느려졌다가 조금 치다가 많이 치다가 복잡하다가 간단하다가, 무수히 많은 솔로가 나왔다. 그런데 이렇게 아득한 소리를 내는 밤하늘이라면 분명 가슴을 천천히 가라앉히는 기타 소리를 낼 것 같았다. 그렇게 정전 1절의 기타솔로를 완성했다.


솔직히 1절을 만들고 나서 개좋아서 놀랐다. 슈발 이걸 내가 했다고? 말도 안된다잉~ 놀란 마음에 대충 핸드폰에 다시 녹음해서 친구한테 보내줬다. (그땐 로직에서 음원 내보내기 하는 법을 몰랐다.) 음질도 개판인데도 처음 만든 노래가 그렇게 좋게 들리더라. 근데 반응을 기다리면서 그냥 나만 좋아하는 건 아닐까, 작곡이란 건 아마추어 따위가 이렇게 대충 시도하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듣는 음악들은 모두 아름다운 빌드업과 정교한 악기 구성, 끝내주는 연주실력을 두루두루 갖춘 노래들이었다. 그에 비하면 내 노래는 고작 4개 코드 위에 멜로디와 솔로를 얹어놓은 초라한 구성의 노래였다. 연주는 한참 모자르고 노래도 엉망이었다. 모든 게 다 엉망이고 바보 같아보였다.


나 혼자 때이른 자괴감과 부끄러움에 친구에게 음악을 보낸 것을 후회하며 반응을 기다릴 때쯤에 친구에게서 답이 왔다. 개좋네 슈발 드디어 미쳐버린 것임? 이런 반응이었다. 뭐. 그때 난리났지. 이 난리나는 마음을 어떻게 풀어낼지 몰라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난 아직도 내 음악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신나야 하는지 모르겠다. 소리라도 지를까? 크게 웃어볼까? 미친 척 뛰어볼까? 아직도 모르겠는데 그때의 나는 오죽하겠나.


그렇게 2절을 작업을 시작했다. 어떻게 했더라. 그냥 흐름상 스트로크를 땅땅 치고 싶었다. 그런데 좀 높은 음은 별로고 낮은 음을 땅땅 쳐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대충 코드 짚어봤다. 엥? 이게 뭐지. 초심자의 행운 이런건가. 몇번 안 쳤는데 그냥 맘에드는 코드가 딱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멜로디를 얹었다. 이미 다 써놓은 가사를 수백번 흥얼거리면서 내가 제일 좋게 들리는 멜로디를 찾아나갔다. 그러다보니 맘에 드는 게 나왔다. 참 신기했다. 그런데 이렇게 내 마음대로 아무 생각없이 해도 되는 건가 계속 의심이 들었다. 진자 내 X대로 했기 때문이다.


따로 레퍼런스를 딴 것도 아니고 작곡법을 참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꼴리는대로 지껄였다. 그러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제길 그냥 나 하고 싶은 거 다 해버릴라니까 아무도 못말려~!’ 하면서 마지막 부분에 곡 전반의 분위기와 상반되는 꽝꽝 시끄러운 파트를 넣었다. 난 이런 게 좋다고~ 그리고 이 정전이라는 노래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노래는 어둔 밤의 행진곡이고 밤의 보물을 찾으러 떠나기 전 밤하늘에 올리는 리츄얼이니까. 미친 듯 뛰고 미친 듯 두드리고 미친 듯 머리를 흔들어야 하는 노래니까. 이 파트를 듣고 사람들이 뭐라하든 난 이 부분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느꼈다.


이건 밤의 축제야! 곧 모험이 시작될 거고, 우린 보물을 찾아 떠나야 돼! 북을 울리고 기타를 두드리고 미친 춤을 춰야 해! 이런 느낌인데, 어떻게 사람들 눈치보느라 꽝꽝을 포기하겠나. 그런데 그렇다기에는 이 부분이 곡 전반이랑 너무 상반됐다. 하지만 이 느낌을 꼭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앞의 것들을 다 갈아엎었다. 2절 솔로는 좀 더 어둡고 날카롭게 바꾸고 코드도 좀 더 어둡고 몽환적인 느낌이 들게 바꿨다. 1절의 선선한 밤산책이 2절에서는 으슥한 곳에서 열리는 밤의 리츄얼이 되도록 노력했다. 그 노력이 잘 들어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열심히 빌드업을 했다.


그리고 정전이 완성됐다. 그리고 주변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너 노래도 해? 근데 왜 좋음? 이런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내가 음악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대뜸 25살에 생전 해본 적 없던 음악을 하겠다고 선언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사람들 앞에서 노래 한 번 제대로 불러본적 없었다. 음악 듣는 건 좋아했지만 음악과 관련된 사람과는 일말의 접점도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주변에서 흔한 조언도 구할 수 없어 그냥 외롭게 혼자 집구석에서 연습만 반복했다. 그런데 망상과 상상으로만 음악을 만들었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이렇게 다가오는구나 싶었다.


주변의 칭찬과 격려에도 내 머릿속에는 괴로운 생각과 즐거운 생각이 교차하며 날 괴롭혔다. 그냥 초심자의 행운이 아닐까. 이 노래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곡의 모든 요소가 전부 운과 노가다, 직감에 의존해서 곡을 만들었으니까. 아니 휘갈긴 것에 가까우니까. 아직 내가 가야할 길이 너무나 멀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의 칭찬에도 여전히 초라하고 궁색한 구성이 마음에 걸렸다. 정교하지 못하고 음이 나가는 솔로도 부끄러웠다. 수준 낮은 믹싱과 녹음도 날 계속 가라앉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론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그런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도 혼자 힘으로 만들어낸 ‘정전’ 안의 세계가 참 예쁘고 애착이 갔다. 그 세계의 분위기, 인물의 시선, 밤의 소리들, 그 멋진 행진과 리추얼을 상상했고, 결국 그 상상을 내 나름대로 음악 안에서 풀어냈다는 게 벅차올랐다. 내가 비록 지금은 이렇게 부족하지만 내가 상상하는 것을 음악 안에서 풀어낼 수 있다면 분명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아주 연약한 확신이 들었다. 난 아직도 그 확신이 하루에 몇번이고 부러지고 다시 주워담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아직도 꾸준히 멈추지 않고 노래를 만들고 있고, 난 여전히 풀어내고 싶은 상상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것들이 뭇내 벅차오르며 두근거리고, 동시에 불안과 조바심에 날 잠들지 못하게 만든다. 열심히 하자. 내가 보았던 그 장면을 꼭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자 다짐한다. 아마 정전을 다 만들고 나서도 다짐했을 거다. 이제 나는 노래를 만든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그 시작을 정전으로 했다는 게 참 신기하고 좋다.



https://on.soundcloud.com/A2evZBUqVQ7Lmv8s8 ​


노래가 궁금하시면 사클들려주세요. 사실 안들어도 괜찮아요. 아마추어의 투박함에 내성이 있으시면 들어도 좋습니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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