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효율적이고 돈 안 드는 취미 이야기

한가로운 이야기

by 이공사

취미와 취향이 정체성이 되는 세상이다. 최근에 회사를 퇴사하고 가뜩이나 정체성이 흐릿해지는 시기이니 딱 취향과 취미를 논하기 좋을 때다. 사회인이 되고 난 후, 회사/직장 정체성을 빼고 나니 반투명 존재가 된 기분이다. 그래도 그나마 반은 투명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건 취미와 취향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 취향이라고 하면 왠지 사주처럼 남들에게 묻는 게 더 쉬울 것 같다. 내게는 취향이라는 게 어떤 고정된 기준이 아니라 마음 가고 끌리는 것이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서 보는 나의 취향이 더 정확하겠다. 그러니 이 글에서는 취미에 집중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 취미는 독서, 일기 쓰기, 다이어리 꾸미기(라고 말하고 영수증 붙이기), 글쓰기, 배드민턴, 카페 가기다. 요가가 취미였지만 이제는 마음먹고 요가 강사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라 취미라기엔 마음가짐이 진지해서 제외하겠다. 여기에 더해 유튜브 시청도 넣겠다. 주로 영화리뷰, 토크쇼, 브이로그를 본다. 대부분 각 잡고 보기보단 설거지하거나 요리할 때 배경으로 틀어놓는 식으로 본다.


내 취미의 공통점이 있다면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취미라는 거다. 이걸 깨달은 건 배우자의 취미와 비교하면서였다. 배우자의 취미는 레코드로 음악 감상하기, 보이차, 백차 등 여러 종류의 차로 다도하기, 필름카메라로 사진 찍기다. 음향 시스템과 다양한 차, 필름 등등 배우자의 취미에는 돈이 든다. 엄청 많이 드는 건 아니라도 나의 취미와 비교하면 꽤 많이 든다.


가끔 나는 내가 돈 없는 취미만 좋아하는 건가 하고 곰곰이 생각할 때가 있었다. 돈을 내고 다른 액티비티를 한 적이 없어서 그런가 싶지만 원데이 클래스도 듣고 여러 액티비티를 해보긴 했다. 클라이밍, 킥복식, 도자기클래스, 페인팅클래스, 원예 등등. 그렇지만 결국에 내가 계속하는 취미가 되지는 못했다.


내 취미 중에서도 으뜸을 고르라면 독서다. 독서만 한 취미가 없다. 최근에는 유튜브 시청에 더 시간을 보낸다는 걸 부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내 삶에서 독서의 누적 시간이 유튜브의 누적 시간보다는 많다고 생각한다. 독서할 때, 특히 문장이 풍부하고 깊은 진국 같은 책을 만났을 때는 충만함을 느낀다. 충만함이라 하면 거차한 것 같지만 진심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호화로움을 느낀다.


최근에는 다시 다이어리 꾸미기와 일기 쓰기에 심취했다. 다이어리 꾸미기는 영수증 붙이지, 색연필로 색칠하기, 어쩌다 받은 마스킹 테이프 붙이기 정도지만 내 눈에는 더할 나위 없이 귀엽다. 요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끼는데 기록하는 순간만큼은 시간이 제 속도대로 흘러가는 기분이다.


한 때 취미로 시간을 쓰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던 때가 있었다. '생산적' 또는 '효율적'이지 않은 것을 할 때면 마음이 불안했다. 내가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효율적인 활동으로만 꽉 찬 삶은 피곤하다. 퇴근 후에 자기계발하고 공부하면서 뿌듯하긴 했지만 결국 지쳤다. 비효율적인 시간이 나다운 시간이라는 걸 간과했고, 번아웃을 몇 번 겪은 후에야 깨달았다.


취미는 생산적일 필요가 없다는 걸 인정한 후에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결과물이 없고, 있다 하더라도 누굴 보여줄 필요가 없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취미다. 시간을 음미하고 과정을 즐기는 것이 취미다. 그러니까 취미생활을 할 때는 효율적이지 않아도 시간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내가 쓰는 이 글도 취미다. 한 동안 글로 돈을 벌려고 하고 인기를 누리며 금의환향하려고 했더니 글이 써지지 않았다. 그래, 내게 글쓰기는 취미 딱 그 정도여야 하는구나 깨달았다. 글로 돈 좀 벌어보고 싶었는데, 덕업일치를 해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행위로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건 또 다른 축복일 수도 있지 않나 싶다. 한가롭게 취미생활로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