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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인트의 책 이야기 Mar 30. 2016

가족이 힘이다 [금요일에 읽는 가족의 시]






【 금요일에  읽는 가족의 시 】  김태훈  /  아르테(21세기북스)     


왜 금요일인가?  지은이는  이렇게 답한다.  “제게  금요일은 바빴던 한 주를 정리하고 휴일에 대한 기대로 마음 부자가 되는 날입니다.  모두의  마음이 넉넉해지는 이 날,  저녁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에게 일주일 내내 바쁘다는 핑계로 전하지 못했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은 시 한 편씩 읽어주면  어떨까요?”     



물론 금요일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불금이란  단어는 나하고 전혀 관계없는 어느 별나라 언어이다.  요일이야  아무렴 어떤가.  요즘  시(詩)가  살아나고 있다.  한동안  시인들조차도 다른 시인의 시를 읽는 일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말도 나돈 적이 있다.  조금  너그럽게,  시는  시인들끼리 주고받는 메시지라는 견해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시들이 생명력을 얻고 있다.  아직은  교과서에서 만나던 시와 시인들 위주인 듯 하지만,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윤동주,  김소월,  백석  시인 등의 시들이 교과서 밖으로 나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속에 다시 자리를 잡아간다는 일은 대단한 일이다.     



이 책의 지은이 김태훈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오랜 기자생활을 했다.  경력의  대부분을 문화부에서 출판과 문학 담당으로 근무했다.  기획한  책으로는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가  있다.     


지은이는 이 책을 가족을 테마로 한  시 50편에  해설을 붙인 에세이집으로 엮었다.       


연탄장수 아저씨와 그의 두 딸이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빠,  이  집은 백 장이지?  금방이겠다,  머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그 아이들이  연탄을 날라다 쌓고 있다. 

아빠처럼 얼굴에 껌정칠도 한 채  명랑하게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딸을 낳으면 이 얘기를  해주리라. 

니들은 두 장씩  날러. 

연탄장수 아저씨가 네 장씩 나르면서  얘기했다.  

_김영승  「반성  100」  전문   



지은이는 이 시를 옮기며 떠오르는  단상을 적었지만,  나는  이 시를 대하는 순간 어렸을 적 기억이 바로 어제 일처럼 되살아났다.  나  어렸을 적 산동네에 살았다.  달동네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이다.  그  시절 연탄은 난방과 취사를 위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조금  형편이 나은 집은 석유난로로 취사를 했다.  연탄은  겨울이 되면 상전 대접을 받는다.  난방으로  몸을 때워주다가 다 타버린 몸은 겨울 눈길과 빙판길을 덮어주는 직무까지 충실히 수행했다.  평지에서  집까지 연탄을 나른다.  새끼줄의  한 쪽을 매듭지어 가운데 구멍에 넣은 연탄을 양 손에 하나씩 들고 산길을 오른다.  시간을  재본 적은 없었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한 20~30분은  걸었던 것 같다.  물론  수도 없이 쉬었다 가야했다.  손에  쥐는 새끼줄이 여유로우면 손에 한 번 감고 날랐지만,  인색한  연탄가게는 새끼줄이 짧아서 그러지도 못했다.  “김영승  시인은 「반성」연작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를 보면 도무지 무얼 반성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가난을  반성하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오히려  자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이 시는 행복할 수 있는데도 그걸 모른 채 남을 부러워하고 가족을 원망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미 개가 다섯 마리의 강아지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서서 젖을 물리고 있다 

강아지들 몸이 제법 굵다 젖이 마를 때이다 그러나 서서 

젖을 물리고 있다 

마른 젖을 물리고 있는지 모른다 

처음으로 정을 뗄 때가 되었다 

저 풍경 바깥으로 나오면  

저 풍경 속으로는  

누구도 다시 들어갈 수 없다 

_문태준  「젖  물리는 개」  전문      



서서 젖을 물리고 있는 어미 개를 본  적이 있다.  어미젖이  여덟 개던가?  열  개던가?  암튼  그 젖에 그만큼의 강아지들이 필사적으로 매달려 젖을 빨고 있었다.  어미  개는 그 시간,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인(道人)이  아닌,  도견(道犬)을  보는 듯 했다.  젖이  빨리는 고통을 참기 위해 딴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그  때 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고통을 참고 있었을까?  줄  수 있는 젖이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을까?  “문태준  시인은 세상 어느 자녀도 영원히 부모 곁에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도 부모의 품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이  시에 담았습니다.  시를  읽으며 아련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그때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젖을  뗀다고 해서 정까지 떼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부모의  사랑을 받은 기억은 우리의 마음속에 고여 있다가 마중물을 만나면 샘처럼 다시 솟아날 테니까요.  그  마중물은 사랑하는 연인이거나,  우리의  아이들이겠지요.”     



내가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불가능한  일이긴 하다)  시를  읽어주는 아빠가 되고 싶다.  다른  동화책도 읽어주지만,  매일  아이가 잠들기 전에 시를 한 편씩 읽어주고 싶다.  뜻을  모르면 어쩌랴.  나도  이해 못하는 시가 있는데,  아이는  오죽하랴.  그래도  매일 고운 시의 씨앗을 어린 마음에 심어주다 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 시에 담긴 사랑과 희망과 너그러운 마음이 자라 그 그늘에서 평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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